한글의 맛, 한 줄의 고통… 소설가의 창작과정 엿보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소설가 김훈이 ‘칼의 노래’를 쓰면서 참조했던 책들(왼쪽 사진)과 문학평론가 조재룡이 번역을 수차례 수정한 기록들(오른쪽). 한글박물관 제공

22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 3층 전시실, 소설가 김중혁이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영상으로 흐른다. 소설가 조정래가 대하소설 ‘아리랑’을 집필하면서 쓴 580여 개의 펜심, 김훈의 몽당연필, 김애란이 발표 전 수차례 고쳐 쓴 소설 파일은 글쓰기의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쪽에 마련된 집필 공간에선 소설가 배상민이 ‘여름’을 주제로 소설을 쓴다. 일반인들이 창작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국립한글박물관이 오는 9월 6일까지 여는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다 -소설 속 한글’전은 이처럼 소설가들의 끊임없는 고뇌 속에서 탄생하는 문장들을 살필 수 있는 자리다. 소설 속 한글의 맛과 느낌을 전한다는 목적답게 소설책보다 소설의 문장에 집중한다.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소설 중 사랑과 여름 등을 묘사한 문장, 소설의 첫 문장, 하나의 원본을 두고 다양하게 번역된 문장 등이 전시실을 가득 수놓는다.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에 등장하는 얼뺨(얼떨결에 치는 뺨), 김주영의 ‘객주’에 나오는 벗바리(뒤에서 힘이 돼주는 사람) 등 단어는 우리말의 간결함과 아름다움을 전한다.

이번 전시에는 많은 문인이 참여했다. 영상을 통해 김훈과 교열가 엄민용은 글쓰기를, 문학평론가 조재룡과 번역가 정하연은 한국어와 외국어 문장의 특징과 번역 방법을 강의한다. 작가의 손때 묻은 귀한 물품들도 나왔다. 최인호의 취재노트와 필기구를 보관하던 가방, 김승옥의 ‘무진기행’ 육필원고, 황순원의 장편 ‘신들의 주사위’ 육필원고 등을 볼 수 있다.

전시장은 소설가들에게 감동을 준 500여 권의 소설을 편안한 의자에 앉아 읽을 수 있도록 꾸몄다. 한글의 다양한 면모를 실험하는 ‘잠재문학실험실’의 소설 쓰기 체험, 소설 읽어주기, 소설 속 음악과 영화 등 다양한 즐길거리도 펼쳐진다. 국립한글박물관 관계자는 “최근 소설 독자의 감소, 표절 논란 등으로 문학계가 어렵지만 소설가들의 끊임없는 고뇌 속에서 탄생한 문장들은 한글의 가치와 진면목을 보여준다”며 “이번 전시가 완벽한 문장을 만들기 위한 소설가들의 노력을 이해하고, 이들이 만들어낸 우리글의 가치를 깨닫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전시 관람은 무료. 02-2124-6202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