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LPGA는 글로벌투어… 한국선수들 견제? 옛날 얘기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변진형 LPGA 아시아 지사장이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변진형 LPGA 아시아 지사장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을 견제한다는 건 옛날 이야기입니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LPGA 아시아 지사 사무실에서 변진형(33) 지사장을 만나자마자 그는 불쑥 이 말부터 꺼냈다. ‘코리안 여자 군단’이 올 시즌 LPGA투어 18개 대회에서 11번 우승하면서 LPGA나 미국 선수들, 현지 팬들이 한국 선수를 견제하는 ‘부작용’이 없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변 지사장은 “한국 선수들이 너무 잘해 오히려 LPGA의 인기가 떨어지는 건 아닌지, 미국 선수들이 한국 선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있다고 하는데 그건 순전히 한국에서만의 생각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물론 LPGA가 한국 선수들의 급속한 ‘유입’을 견제한 적은 있다. 신지애(27), 박인비(27) 등 ‘박세리 키즈’들이 두각을 나타내던 2008년이었다. 난데없이 외국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영어 테스트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었다. 한국 선수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 황당한 계획은 결국 무산되기는 했지만 LPGA는 당시 그만큼 긴장했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은 옛이야기가 됐다. 변 지사장은 “LPGA는 더 이상 미국프로투어가 아니라 글로벌투어”라며 “한국은 물론 중국, 태국, 대만, 유럽 등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다. LPGA에서 국적을 구분하는 건 촌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LPGA는 질적, 양적으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2010년 총상금 400억 원 규모에 대회 수는 23개였다. 올해는 총상금이 600억 원으로 늘어났고 대회 수 또한 33개 대회로 늘어났다. TV 생중계 시간도 200시간에서 400시간으로 2배로 증가했다. LPGA 중계방송은 세계 175개국 2억5000만 가구에 송출되고 있다.

변 지사장은 중학생 때 미국으로 ‘나 홀로’ 유학을 떠났다. 안 해본 아르바이트, 인턴십이 없을 정도란다.

2008년 LPGA에 입사해 불과 7년 만에, 30대 초반의 나이로 지사장에 오른 저력은 거기서 나왔다. 변 지사장은 댈러스대에서 경제금융학을 전공했다. 대학생 시절 우연히 나이키 골프 캠프에 인턴십으로 참여했고, 골프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대학원에 진학해 스포츠경영학을 전공했고 본격적으로 골프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지사장이 되고 나서 세운 눈에 띄는 실적은 두 가지다. 2014년 초 인터내셔널 크라운컵의 한국 개최를 유치했다. 2018년 열릴 예정인 인터내셔널 크라운컵은 국가별 대항전이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건 한국이 처음이다. 지난 4월에는 스윙잉 스커츠 클래식의 스폰서 발굴부터 계약 및 운영까지 모든 걸 직접 해냈다.

변 지사장은 “최근 미국 중계방송에서 한국 선수에 대해 말하는 태도를 보면 사뭇 달라진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며 “예전에는 해설자들이 한국 선수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풀 네임을 정확히 발음한다. 또 심지어 별명을 붙여 그 선수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 2승을 거둔 최나연(28)이 좋은 예다. 중계방송 해설자들은 최나연의 영문 머리글자(NYC)를 활용해 그를 ‘빅 애플’이라고 부른단다. 뉴욕시(NYC)의 애칭과 같다.

변 지사장은 “방송사에서 한국 선수들의 개성을 발견해 시청자들에게 전하려는 모습에서 달라진 위상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에게 번번이 우승을 내주고 2위에 머문 스테이시 루이스(30·미국)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도 들려줬다. 변 지사장은 “루이스의 에이전트가 한국인 강주성 씨다. 이 분은 브리트니 린시컴(30·미국)의 에이전트로도 활약하고 있다”면서 “루이스는 승부욕이 강할 뿐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은 선수”라고 소개했다.

LPGA 비회원 신분인 전인지(21)의 US여자오픈 우승도 전혀 ‘깜짝 뉴스’가 아니라고 했다. 변 지사장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에서 랭킹 1위이고 세계 랭킹이 있는 선수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것에 대해 미국 현지 매체, 골프 관계자들은 실력을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아시아 지사 입장에서는 이를 이용해 또다른 비즈니스를 찾는 걸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선수들이 LPGA를 장악하면서 달라진 점도 있단다.

변 지사장은 “한국 선수들은 이제 부모님에게 의지하는 게 아닌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대회 스폰서를 배려하는 마음가짐도 예전과는 바뀐 점”이라며 “또 미국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경기가 끝난 후에도 그린에 남아 연습을 더 한다”고 밝혔다.

LPGA 아시아 지사는 지난해 1월 미국 본사를 제외하곤 전 세계에 유일하게 설립됐다. 변 지사장은 아시아 지사를 통해 10개 대회의 스폰서를 관리하고 있다. 연간 33개 대회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본사의 전폭적인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변 지사장의 골프 실력은 평범한 수준이다. 평균 85타. 그나마 최근엔 거의 치지도 못했다. 스폰서 대회에선 골프채를 잡지 않는 걸 개인적인 불문율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변 지사장은 “LPGA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한국 유망주들이 진출할 기회도 더 늘어날 것”이라며 “보다 큰 꿈을 갖고 도전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