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상엽의 인문학 건강론>읽기,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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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정보는 통치자들에게는 권력으로, 상인들에게는 자본으로, 탐험가들에게는 신대륙으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그런 특정한 목적가치 없이도, 나와 너 사이에 오가는 소식과 안부 정도의 의미를 갖던 정보가 ‘화(化)’라는 어미 하나를 붙이고 지구촌 전체 새로운 천년의 화두가 된 것은, ‘신호(signal)의 패턴과 배열’로 이뤄진 일상 속 정보를 통해 인간은 끊임없이 제 스스로 ‘의식-화(化)’되고, ‘신체-화(化)’되며, ‘사회-화(化)’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인체 내에서 정보는 일정한 순환체계를 통해 연산(學)되고 저장(習)된다. 동의학에서는 정보의 연산시스템을 경락(經絡)이라 하고, 저장시스템을 장부(臟腑)라고 하는데, 정보를 연산/저장이 가능한 형태로 인체가 제일 처음 감지해내는 힘은 이목(耳目)에서 파생된다.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고 듣는다. 청각신호는 밀도의 형태로 곧바로 신체화되고, 시각정보는 리듬의 형태로 곧바로 의식화된다.

이 과정은 우리가 평소 TV를 시청하는 원리와도 같다. 청각(안테나)을 통해 신체(수신기)가 스트리밍해낼 수 있는 주파수 대역(채널)이 먼저 정해지면, 시각은 해당 채널 안에서 흘러나오는 구체적인 시청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의식을 작동시킨다.

이렇게 이목을 통해 수집된 정보가 인체 내에서 연산/저장되기 시작하는 첫 동력원을 동의생리학에서는 ‘태음(太陰)’이라 하고, 이를 인문학적으로는 ‘읽기’라고 한다.

표절은 (밖에서) ‘보고 들은 것’을 (안에서) ‘읽어(연산해)내지 못한 채’ 나의 정보로 곧장 ‘써(저장해)버린 것’을 말한다. ‘읽기’ 과정이 약화됐거나 생략된 채로 섣불리 그다음 순환과정을 밟아버린 인문(人文:인간행위)의 오류를 ‘표절’이라고 한다.

읽기 과정은 아주 중요한데, 외부 정보가 체내에서 연산되기 시작한 첫 마디이자, 이를 통해 인간이 자신을 하나의 주체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첫 동력원이기 때문이다.

읽는다는 것은 자기호흡을 사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쓴다는 것은 그렇게 의식화된 호흡을 다시 신체적으로 소화하고 배설하는 과정이다.

갓 태어난 아이들은 왕성한 두뇌 활동을 통해 성인에 비해 수십 배 이상의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제 호흡이 내분비계를 통해 조금씩 안정화돼 스스로 언어를 배우고 익히기 전까지는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는 자신의 위장(배가 고프다/아프다)과 대장(변이 마렵다/변을 지렸다)이 반응하는 정보들뿐이다.

학생들의 수업과제에서부터 유명 문학가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 사회에 표절이 만연하게 된 것은 정보화시대가 불러온 새로운 도덕불감증이기 이전에 인간의 읽기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됐기 때문이다.

읽기는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과정이다. 읽기가 정확하게 훈련되지 않으면 스스로 신뢰할 수 없다. 우리가 한 번도 직접 만나보지 못한 사람을 상대의 이야기만 듣고 섣불리 신뢰할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도 자신의 내면을 직접 만나본 경험이 없으니 자신을 신뢰하지도 못하고 스스로를 표현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카페방하 디렉터 lee_sy@egone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