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장애, 친구의 자살, 노년의 위기… 인생 모든 순간에… 책이 있었다

  • 문화일보
  • 입력 2015-07-3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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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시대의 유행이 읽기에서 보기로 넘어간 지 이미 오래 됐지만 아직은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한 자기만의 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 작가이자 일본 평화헌법을 수호하는 ‘9조 회’를 이끌고 있는 지식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80)에게 묻는다면 그는 아마 ‘읽기는 내 인생 자체였다’고 답하지 않을까 한다. 그는 책에서 또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소설가라는 ‘쓰는 인간’에 앞서 책을 통해 인생을 헤쳐 온 ‘읽는 인간’이라고 밝혀 왔다.

읽는인간 /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위즈덤하우스

책 ‘읽는 인간’은 오에가 2006년 준쿠도(ジュンク堂)서점에서 ‘내 인생의 책’을 주제로 가진 여섯 차례 강연과 ‘읽는다는 것, 배운다는 것 그리고 경험’이라는 한 번의 강연(2011)을 옮긴 것으로 일본에선 2007년에 출간됐다. 광속의 시대에 8년이라는 시간은 모든 것을 낡게 만들고도 남는다.

책에서 들려주는 지적장애를 지닌 장남 히카리(光)의 출생과 그로 인한 작품세계의 대전환, 친구이자 처남인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伊丹十三)의 자살,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교류 등은 오에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대부분 알 만한 이야기다. T S 엘리엇을 필사하고 도스토옙스키와 사르트르, 카뮈를 탐독하며 깊은 사상을 추구한 독서가로서의 면모도 잘 알려져 있다. 얼마 전엔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절필’을 선언했으니 시간 속에 그의 사정도 변했고, 책에서 말한 미래는 이미 과거가 됐다.

하지만 이 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삶의 마지막 국면에 도달했다는 노작가가 삶을 돌아보며 풀어내는 책은 나에게 무엇이었고, 내 삶을 어떻게 이끌었고, 어떻게 나를 작가로 단련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감동적이다. 오히려 온갖 정보가 폭발하는 이 현란한 시대에 이제 더 이상 책으로 모든 것을 배운 오에 같은 ‘읽는 인간’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 아마도 그가 ‘읽는 인간’의 마지막 증인이 될 것이라는 예감은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상실감을 실감하게 한다. 그래서 책은 처음 출간된 2007년보다 지금 더 극적인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오에는 책 인생을 돌아보게 된 계기를 소설 ‘책이여 안녕!’으로 설명한다. “‘책이여 안녕!’은 나보코프의 대표작 ‘선물’에서 인용한 구절입니다. 정녕 제 인생은 책으로 인해 향방이 정해졌음을,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른 지금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독서가 인생의 절반을 차지한 인간은 제가 읽어온 책에게도 마음을 다해 ‘안녕’이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제 인생의 책과 이별하는, 그러면서 가능하면 여러분께 그 책을 건네는 의식을 치러 보고자 합니다.”

오에는 유년으로 돌아가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책과 사람에 대한 기억을 풀어낸다. 그를 ‘읽는 인간’으로 만든 첫 책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시코쿠(四國) 깊은 산골의 아홉 살 소년은 어머니가 사준 두 권짜리 책을 읽고 또 읽으며 한 장면에 사로잡힌다. 미시시피강을 따라 여행하며 흑인 노예 짐에게 우정을 느낀 헉이 짐의 주인인 노부인에게 쓴 편지를 찢어버리는 장면이다. 노예는 주인의 재산이고, 교회에서 남의 재산을 훔치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배웠던 헉은 “그래 좋아. 나는 지옥에 가겠어(All right, then, I’ll go to hell)”라고 외친다. 오에는 그때 이후 줄곧 “좋다! 나는 지옥에 가겠다”를 삶의 원칙으로 삼아왔다고 한다. 원칙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세상이 뭐라고 하든 자기만의 길을 가겠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이렇게 책에 사로잡힌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평생 스승이 된 와타나베 가즈오(渡和郞)의 ‘프랑스 르네상스의 사람들’을 읽고 그가 교수로 있는 도쿄(東京)대 불문과에 진학하기로 결심하고, 대학교 3학년 방학 때 고향에서 사르트르의 ‘보들레르’를 읽고 첫 단편 ‘기묘한 일’을 쓴다. 스물여덟, 히카리가 기형으로 태어난 뒤 블레이크 시를 읽으며 고통과 슬픔을 버텨냈고, 아이를 끌어안고 살아가기로 결심한 과정을 소설 ‘개인적 체험’에 담아낸다. 마흔여덟부터 쉰 살까지 3년 동안 단테의 ‘신곡’만 읽은 뒤 쉰 살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장편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에 쓴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에게 책은 삶과 분리할 수 없는, 원인이자 결과였고, 수단이자 목표였으며 과정이자 최종 목적지였다. 이 읽기와 쓰기의 여정은 50대에 만난 만년의 정신적 동지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우정, 그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말년의 작업’이라는 화두로 이어진다.

“사이드가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 쓴 말년의 양식, 즉 후기 스타일은 생애 후반에 죽음이 멀지 않은 예술가가 지금껏 해온 작업이나 시대의 관습과는 전혀 다른, 기묘하기까지 한 작품과 삶의 방식으로 마지막까지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표현입니다. 불확실한 자리에 서서 곤란을 극복하기 위해 한 번 더 힘을 내 도전하는 것. 후기 스타일로 작업하는 것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사이드의 착상에 강렬한 감명을 받았습니다. (중략) 사람들은 특이한 노인이 위험하고 기괴한 행동을 저지른다고 생각할 겁니다. 저는 저야말로 바로 그 노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시대와 적극적으로 불화하겠다는 ‘말년의 양식’은 시간을 다시 거슬러가 아홉 살 오에가 외친 “좋다! 나는 지옥에 가겠다”로 이어진다. 삶을 관통한 완고한 철학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책을 읽으며 당도한 책에 대한 철학과 실용 가이드도 들려준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다시 쓰고 읽으며 평생 책의 세계에서 살면서도 자기 삶과 세상에 적극적으로 맞서 행동해온 ‘읽는 인간’이 책에 바치는 헌사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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