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하지만 치열한 생명력… 나무에서 배운 삶의 지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나무 철학 / 강판권 지음 / 글항아리

저자 강판권(54·사학·사진) 계명대 교수의 나무 사랑은 지극하다. 사학자지만, 나무를 화두 삼아 ‘수학(樹學)’이라는 자신만의 학문체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나무 철학’을 비롯해 그가 쓴 나무 관련 저서만 15권에 이른다. 그는 자신에게 ‘쥐똥나무’라는 별칭도 지어 줬다. 울타리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쥐똥나무가 타인의 고통과 어려움을 보호하면서도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닮고 싶은 마음에서다.

강 교수가 나무에 관심을 가지게 된 때는 마흔쯤이다. 당시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심한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큰키나무와 작은키나무가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숲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존감을 얻었다. 이후 차나무, 뽕나무, 은행나무 등 다양한 나무의 특성을 공부하고, 이를 인간과 사회와 연결해 인문학적 관점으로 톺아보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이번 책은 그가 나무로부터 배운 28가지 인생 철학이다. 나이테, 단풍, 낙엽, 연리지, 매화, 뿌리 등에서 얻은 삶의 혜안을 따라가는 길이 유쾌하면서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행복, 존재, 소신, 여락, 경청 등 가치를 나무로부터 ‘뽑아내는’ 그의 관찰력이 놀랍다. 책을 읽는 동안 나무라는 생명체에 대한 이해를 얻는 것은 덤이다.

저자는 나무에는 삶과 죽음이 철저히 공존한다고 말한다. 나이테가 그 흔적이다. 나무의 나이테에서 바깥쪽은 물관세포가 살아 있는 변재(邊材)고, 안쪽은 죽어 있는 심재(心材)다. 나무는 죽은 것으로 안쪽을 빈틈없이 채우면서 삶을 유지한다. 죽음을 끌어안고야 살 수 있기 때문에 나무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적다. 반면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사는 동안 죽음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지혜를 얻어야 삶은 더 풍성해질 수 있다.

그는 아까시나무에 대한 오해도 푼다. 아까시나무는 일본인이 소나무의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 심었다는 뜬소문 때문에 한국에서 특히 천시받는 식물이다. 하지만 아까시나무가 지천에 널린 이유는 단지 강한 생존력 때문이다. 아까시나무는 과거 소나무 대신 땔감으로 쓰이면서 역설적으로 소나무의 생존을 도왔다. 또 쓸모없다는 편견과 달리 벌이 꿀을 만드는 것을 돕고, 유럽에서는 고급 가구재로 활용된다. 아까시나무의 ‘치열한 삶’은 결코 욕된 것이 아니며, 묵묵히 살아가는 이 나무로부터도 충분히 배울 점이 있다.

뿌리 이야기는 위기에 대처하는 지혜를 넌지시 알려 준다. 나의 뿌리는 위기의 정도에 비례한다. 심한 위기를 겪은 나무일수록 뿌리가 굵다. 뿌리가 땅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나무는 이 순간부터 넘어지지 않기 위해 뿌리를 횡으로 감싸는 또 다른 뿌리를 만든다. 동식물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자기수용성 감각’이라 부른다. 저자는 이를 통해 균형 잡힌 사고와 판단이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덕목이라고 말한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