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상엽의 인문학 건강론>자신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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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체험하는 가장 극적인 사건은 바로 죽음이며, 죽음을 앞두고 자연스레 연상되는 것 중 하나가 유언이다. 유언이 없는 죽음은 한 인간이 평생 맺어온 사회적 관계를 온전히 매듭짓지 못하고 갑자기 잘려져 버린 느낌이 들게 한다.

다른 생명체와 달리 인간은 제 육신의 완전한 소멸 앞에서도 끝까지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한다. 유품의 처리, 재산의 상속에서부터 인생의 후회, 억울함의 호소에 이르기까지 유언의 내용과 형식은 죽음의 원인만큼이나 다양하다. 인간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제 육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순간부터 더욱 커지고 구체화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생존 욕구를 넘어서는 인간 생명활동의 본질에 대해 시사한다. 자연적 생존력에 바탕 하여 그 힘으로 스스로 ‘사회성을 담금질’(socio-connectome)해 나가는 그 끊이지 않는 운동성이 인간생명활동의 본질인 것이다.

인간 또한 자연에 존재하는 하나의 소재(素材)다. 모든 소재는 주변과의 관계방식을 독립적/자율적으로 지속시키고자 하는 구심력을 그 바탕에 가지고 있는데, ‘대학(大學)’의 첫 장은 인간이라는 소재에서 그 중심이 되는 힘이 파생되는 ‘신호 메커니즘(大學之道)’을 규명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흔히 ‘대학의 3강령’이라 불리는 그 첫 구절이 “大學之道(대학지도)는 在明明德(재명명덕)하며 在親民(재친민)하며 在止於至善(재지어지선)이니라”이다. 물리학의 강령에 빗댄다면 ‘관성력, 가속도, 작용-반작용’의 법칙과도 같은 것인데, 인간 소재의 첫 번째 힘의 원천은 바로 ‘스스로 분명하게 얻은 바(明德)’를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에 있다(在明)’는 것이다.

신체 메커니즘도 들숨(吸)-날숨(呼)과 먹고(入) 배출하는 것(出)이 있는 것처럼, 생각 또한 내면에서 사유 된 것이 있으면 외형으로 표현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적절하게 표현되지 않은 수많은 관념이 적체되는 것으로부터 인간의 불행은 시작된다. 매일 밤, 잠이 들기 전 일기를 쓰는 습관을 유지해온 사람이 평소 생활이 규칙적이고 상대적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한다는 사실은 흔한 상식이 되었다. ‘내 몸이 체득한 바를 분명하게 아는 것(太陰)’ 이상으로,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陽明)’하는 문제가 ‘세상과 어울림(在親民)’이라는 그다음 생명 순환 리듬을 밟아나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매듭이다.

한 번 생각을 확정했으면(明德) 그것을 반드시 끝마침으로써 생성/저장되는 인체에너지원을 동의학에서는 정(精)이라고 한다. 이 정(精)을 바탕으로 ‘오롯하다(誠)’는 행위가 성립되는데, 우리가 흔히 ‘정성(精誠)스럽다’고 하는 표현이 그 내면의 생각과 외형의 행동을 일치시키려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다.

오늘날 인간의 죽음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갈수록 초라해져 가는 그 이면에는, 인간 소재가 지속할 수 있는 제1의 물리원칙인 ‘정성스러운 삶’의 실종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정(精)은 생존을 위한 생식능력이기 이전에 일상에서 만들어지는 보람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자꾸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일상 속 대소사를 확실히 마무리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 ‘보람됨의 체험’을 꾸준히 쌓아가는 것이 신체가 저 스스로 인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유언일 것이다.

카페방하 디렉터 lee_sy@egone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