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승계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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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 논설위원

국내 종자(種子) 업계 1위 농우바이오를 창업한 고희선 회장이 2년 전 폐암으로 갑자기 타계했다. 고 회장 지분에 대한 상속세는 1000억 원이 넘었다. 유족들은 고민 끝에 주식을 매각, 경영권을 농협에 넘겼다. 가업(家業)을 이어가기엔 거액의 세금이 너무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세계 1위 손톱깎이 업체였던 쓰리세븐 창업주 김형규 회장이 2008년 돌연 유명을 달리했을 때도 유족은 사업 포기를 선택했다. 두 기업인은 발군의 경영으로 한 분야를 호령했지만,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했다. 바로 승계다.

미국 포천지(誌)가 지난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의 19%는 가족 경영회사다. 유럽의 증시에 상장된 대기업들 중 가족기업 비율은 40%로 더 높다. 통념과 달리 가족기업의 실적은 평균보다 높고, 더 오래 지속한다. 단기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위기 대처능력이 강하며, 임직원의 충성심이 높다는 등의 장점이 있다. 단, 가족기업이 명문 장수기업이 되려면 ‘승계 리스크’를 슬기롭게 돌파해야 한다.

첫째, 자질과 능력이 검증된 후계자를 세우는 일이다. 한 달 전 방한한 독일 프리미엄 가전사 밀레의 라인하르트 친칸 공동회장은 “피보다 능력”이라고 했다. 1899년 창업한 밀레는 치열한 내부 경합을 거쳐 후보를 선정하고, 4년 이상 외부 회사에서 경영 실무를 쌓게 한 뒤 최종 면접을 치른다. 승계는 부(富)가 아닌 책임의 대물림이다. 후계작업의 부실이 기업의 위기로 이어진 사건이 ‘땅콩 회항’이다.

둘째, 가족 내 분쟁 소지를 미리 차단하는 것이다. 어느 경영학자는 “창업주가 골퍼라면, 후세대는 농구선수”라고 했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했던 것과 달리,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치밀한 장기 로드맵이 필요하지만 한국에선 창업주가 자식들이 못 미더워 승계를 마냥 미루는 경우가 적잖다. 골육상쟁이 벌어진 롯데그룹의 신격호 총괄회장은 93세, 자식은 60대다.

셋째, 상속세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농우바이오·쓰리세븐처럼 세금폭탄을 맞으면 가업 포기가 합리적 선택이 된다. 독일은 기업 유지 의사가 있으면 상속·증여세를 사실상 면제한다. 기업 이전에 국가가 해결할 리스크다. 승계는 제2 창업이다. 기업 미래, 양질의 일자리가 여기에 달렸다. 기업의 혁신 에너지를 계승하는 것, 한국경제의 절박한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