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野, 수권정당에서 더 멀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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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직 / 편집국 부국장

집권여당을 대체할 수 있는 수권(受權)야당은 그 존재만으로 건강한 정치 시스템을 유지하는 자극제가 된다. 유권자 입장에서 믿고 찍어줄 만한 대안정당이 없다는 건 큰 불행이다. 집권여당이 아무리 헛발질을 하고 형편없이 굴어도 그 여당을 대신해 나라 운명을 믿고 맡길 만한 야당이 없어, 최악(最惡)을 피해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마음으로 또다시 그 형편없는 여당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심정은 참담하다. 한국 정치 현실이 꼭 그렇다. 많은 국민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대표되는 야당에 선뜻 나라 운명을 맡기길 주저하게 하는 주된 요인 중 하나는 국가안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과연 그들의 손에 ‘한국경제’를 들려줘도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일명 ‘원샷법’이란 게 있다. 기업들의 자발적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지원하기 위해 최근 발의된 이 법안은 정부가 올 하반기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법안 중 하나다. 이 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들은 최근 긴장 속에 중소업계와의 접촉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관련 상임위 소속 야당 의원들이 이 법을 ‘대기업 특혜법’으로 규정하고 반대할 움직임을 보이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산업부의 한 간부는 “이 법안이 대기업보다는 중소·중견기업에 더욱 절실한 법이라는 점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당의 ‘대기업 특혜’ 프레임에 걸려든 법안은 국회 통과를 포기해야 한다”는 경제부처 안팎의 불문율이 얼마나 무겁게 현실을 짓누르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그 정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현재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6개의 경제활성화 법안도 대부분 야당으로부터 ‘대기업 특혜’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들이다. 최근 엘리엇매니지먼트 사태를 계기로 경영권 방어 수단을 허용하는 상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이 역시 국회 통과가 불투명하다. 새정치연합 측이 대기업 특혜법이라며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라는 딱지만 붙으면 일절 타협을 거부하는 이 같은 행태를 놓고 새정치연합 측은 “대기업 중심 성장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그 속내를 뜯어보면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경제 문제를 ‘1(대기업) 대 99(중소기업)’의 대립 구도로 짜놓고, 1%의 대기업을 두들겨 99%의 표심(票心)을 얻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충분히 남는 장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을 수권정당·대안정당으로 인정하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중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현장에서 대한민국의 얼굴 역할을 하고, 국내 근로자의 24%를 고용하면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의 원천 역할을 하는 삼성·현대차 등 대기업을 모두 적으로 몰아세워 놓고 중소·중견기업만 데리고 한국경제를 잘 이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최근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몇몇 의미 있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이 중심이 돼 여당의 전유물이었던 성장과 경쟁 담론을 꺼내고 대기업 연구원들을 초청해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의 시도가 그것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인사는 “대기업을 악으로 보고 선악 구도로 접근해선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롯데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에서 대기업을 향한 집단 린치가 또다시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지배구조 개선과 기업 투명성 강화를 위해 애써온 많은 대기업의 땀과 노력이 한순간에 부정되고 “한통속”이라며 집단 매도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새정치연합이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박근혜정부가 호소하고 있는 ‘노동개혁’에 ‘재벌개혁’으로 맞불을 놓을 태세다. 정부 정책 발목잡기식 행태에서 벗어나 대기업까지 아우르며 대안을 모색해 보자는 야권 내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기업을 또다시 ‘공공의 적’으로 몰아세우고, 대기업을 향한 분노와 투쟁을 독려하는 행태가 지속된다면 제1야당의 선명성은 과시할지 몰라도 대안정당·수권정당의 길은 그만큼 더 멀어질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집권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편가르기식 분노의 표출을 넘어선 다른 대안을 제시해줘야 한다. 과연 기대해볼 수 있을까. 무능한 여당을 대신해 나라 운명을 맡길 만한 야당을 가져보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