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야 힐링?… 가까워도 ★ 볼일 많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여름밤, 남한산성 서문 일대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 반짝거리는 도시의 불빛이 거대한 바다를 이루고 있다.

잠 못 드는 열대야… 수도권 야경 명소 3選

휴가는 이미 끝났어도, 무더위는 아직 기세등등하다.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야경 나들이는 어떨까. 사실 도시야경은 대기가 맑아지는 가을이나 겨울에 더 선명하다. 하지만 잠 못 드는 밤에, 한결 서늘해진 대기 속에 즐기는 여름밤의 산책과 야경 감상도 즐겁다. 서울과 수도권에는 해가 지고 한낮 더위가 수그러들 무렵, 찾아가 볼 만한 야경 명소가 곳곳에 있다.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를 찾아가 불빛들이 그려내는 숨 막힐 듯한 경관을 만날 수 있는 곳들이다.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소 3곳을 골라 봤다.

# 불빛의 바다, 그리고 진짜 바다… 삼성산

다른 두 곳의 야경 명소보다 발품을 좀 더 팔아야 하는 곳이다. 여기를 먼저 말하는 건 그만큼 경관이 웅장하고 빼어나기 때문이다. 삼성산이라고 했지만, 특급 야경 조망 장소는 산 정상이 아니라 ‘돌산 국기봉’이다. 주택가 골목에서 시작해 30분 정도 산길을 올라야 하는데 그만한 수고로 만나는 야경이 황송할 정도다. 길은 유순한 편. 등산이라기에는 좀 뭣하고, 땀이 좀 나는 산책코스 정도로 보면 된다. 들머리는 서울 신림동 신우초등학교를 찾으면 쉽다. 학교 정문 옆으로 난 주택가 골목을 따라 부드러운 능선에 붙어서 20분쯤 걸으면 보덕사를 지나 성주암 갈림길에 닿는다. 여기서 8시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10분 정도만 더 오르면 돌산 국기봉이다. 서울대 입구 만남의 광장 쪽에서 삼막사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10분쯤 더 걸린다.

국기가 꽂혀있는 돌산은 전방을 향해 270도 정도의 시야가 확보된다. 왼쪽으로 서해와 김포평야, 오른쪽으로는 한강 상류 양평 일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잘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시계가 좋은 날에는 왼편으로 인천 앞바다와 그 바다에 떠 있는 배까지 보인다. 실제로 본 적이 여러 번이다.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어둠이 내린 도시 너머로 서해 고깃배의 불빛이나 비행기의 궤적을 보는 것도 좋지만, 여기가 가장 훌륭한 경관으로 빛날 때는 해질 무렵이다.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저무는 해가 도시를 온통 붉게 물들이며 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해질 무렵에 올라가 낙조부터 시작해서 야경까지 다 보고 오는 게 좋겠다.

사실 여기는 신림동 일대 고시원에 머무는 고시생들이 한여름 밤에 주로 찾아가는 단골 산책 장소이기도 하다. 고시생들은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오르지만 아무래도 산길이니 운동화를 갖춰 신어야 한다. 길이 순해 굳이 등산화를 신을 필요까지는 없다.



# 5분걸으면 최고의 야경 만난다… 남한산성 서문

남한산성은 한때 ‘닭백숙’으로 대표되던 낡은 여행지였지만, 지금은 명품 걷기코스로 이름이 높은 곳이다. 12㎞에 이르는 산성 석축을 끼고 산책로 겸 등산로가 곳곳에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가장 대중적인 탐방 코스가 산성 동문에서 시작해 서문과 수어장대를 거쳐 원점으로 회귀하는 3시간 30분짜리 성벽 순환 코스. 이게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영월정에서 서문을 지나 국청사 방면으로 내려오는 1시간짜리 짧은 코스를 걷기도 한다.

남한산성에서 가장 빼어난 야경명소라면 두말할 것 없이 산성 서문 일대다. 하지만 아무리 좋다고 해도 야경 하나 보겠다고 산성을 짚어가며 1시간 이상 걷는다는 건 적잖이 부담스러운 일이다. 살짝 귀띔하자면, 서문까지 가장 짧게 오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먼저 차를 타고 서문 바로 아래 성벽 안쪽의 절집 국청사까지 간다. 중부면사무소 쪽에서 산성역으로 이어지는 342번 지방도로 산성로터리에서 국청사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산성로터리를 지나서 국청사까지는 좁고 가파른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려야 한다. 운전에 특히 신경 쓰이는 구간이다. 이쪽에는 차댈 곳이 적으니 주말이나 휴일보다 평일을 택해서 가는 게 좋겠다. 차를 세워두고 딱 5분 정도만 걸으면 서문 성벽을 만나게 된다.

서문 성벽 바깥쪽의 오솔길에 나무덱과 벤치가 놓인 전망대가 있는데 거기가 서울을 굽어보는 최고 명당이다. 불빛 반짝이는 서울 거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스케일부터가 다르다. 왼편으로는 청계산과 관악산의 산줄기가, 오른쪽으로는 북한산과 도봉산의 연봉이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남산과 한강이 보인다. 성벽에서 정면으로 해가 넘어가니 낙조풍경도 좋은 편이다.

야경의 불빛이 좀 멀어 디테일한 경관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 남한산성 일대의 숲이 깊어서 서문 일대로 밤이면 서늘하다. 가벼운 덧옷 하나쯤 챙겨 가자.



# 가깝게 보는 도시의 야경… 응봉산

한강을 끼고 있는 서울 응봉동의 응봉산은 야경의 명성보다 봄날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개나리 군락으로 알려진 곳이다. 해마다 봄이면 개나리꽃으로 뒤덮인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가들이 몰려든다. 응봉산은 이름만 ‘산’일뿐이지 해발고도는 94m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기에 오르면 서울 동부 지역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한강과 서울숲, 뚝섬, 잠실운동장 일대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응봉산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다 볼 수 있어 새해 첫날에는 해맞이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여름은 밤 시간에 동네 주민이나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의 발길이 잦아진다. 응봉산공원에서 보는 서울 야경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응봉산공원을 찾아가는 건 간명하다. 서울지하철 1호선 응봉역 1번 출구 뒤쪽에 주택가를 지나서 계단을 걸어 오르면 공원에 닿는다. 길거나 거칠지 않지만, 경사가 좀 가파른 편이다. 그래 봐야 숨 몇 번 고르고 나면 금방 공원이니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다.

이곳 야경 경관의 특징이라면 다른 곳보다 불빛과 훨씬 가깝다는 것이다. 불 밝힌 빌딩의 층수를 셀 수 있고, 퇴근길 자동차들이 그려내는 불빛들의 흐름도 다 내려다보인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동호대교, 성수대교와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일대의 경관이 손에 잡힐 듯하다. 초록빛 조명을 받은 서울숲의 나무들이 어둠 속에 또렷하게 떠오르는 광경도 볼만하다. 광장의 팔각정이 조망 시선이 가장 높지만, 팔각정 주변에는 시야를 가리는 나무가 많다. 광장 아래 따로 만들어놓은 전망대 쪽의 시야가 훨씬 시원하다. 기념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려면 전망대를 찾는 게 낫겠다. 흠이 있다면 모기가 좀 많다는 것 정도. 긴 바지와 모기 기피제 등을 챙겨가길 권한다.

글·사진 =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