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씩 한 도시 살기… 1년 ‘12번의 인생 체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호텔 옥상 수영장에서 쉬고 있는 저자의 두 발(왼쪽 사진). 런던 과학박물관에서는 ‘바퀴벌레 투어’(오른쪽)에도 참여했다. 북라이프 제공

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 / 마이케 빈네무트 지음, 배명자 옮김 / 북라이프

현지에서 엽서 쓰기는 여행의 낭만 중 하나다. 그것도 아주 고전적인. 낯선 장소에 대한 설렘, 유명 관광지가 별로 인상 깊지 않았던 일, 그날 아침에 먹은 메뉴, 숙소에서 알게 된 다른 나라 여행자…. 말미에는 떠나온 곳(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묻어났을 게다.

책은 그렇게 시시콜콜하다. 언젠가 한 번 띄워 봤을 법한 엽서처럼. 그러나 친구, 부모님, 헤어진 옛 애인, 지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보낸 저자의 시시콜콜한 편지는 약간 특별하다. 관광이 아니라 생활이 담겨 있기 때문. 독일의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될 것인가’에서 우승상금 50만 유로(약 6억6500만 원)를 탄 저자는 참가 공약대로 ‘한 달에 한 도시 살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1년 동안 12개의 도시에서 12번의 인생을 살았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적 유연함을 활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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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부에노스아이레스, 뭄바이, 상하이(上海), 호놀룰루, 샌프란시스코, 런던, 코펜하겐, 바르셀로나, 텔아비브, 아디스아바바, 아바나. 누구나 한번 가보고 싶은 곳들. 12통의 편지는 저자가 머문 도시의 순서대로다. 2011년 1월 1일, 첫 도시를 만난 떨림부터 적응이 힘든 도시에서의 혼돈, 머물러 살고 싶은 도시를 만난 감회 등 변화무쌍한 심리 상태도 느낄 수 있다.

첫 번째 도시는 호주 시드니다. 저자는 “신발을 신기 편하게 해주는 구둣주걱 같은 곳”이라고 극찬한다. 책은 도시를 포장하지 않는다. “○○를 가면 참 좋다”는 권유는 없다. “잔디 위로 걸으세요” “나무를 안아 보세요”라는 식물원의 안내판을 통해 시드니의 ‘훈훈함’을 전하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엄청 시끄럽고 엄청 재미있어”라고, 그러다 3월에 만난 인도 뭄바이에선 적응이 힘들어 “제발 절 좀 여기서 꺼내 줘요”라며 절망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4월엔 일본 도쿄(東京)로 떠나려다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로 혼돈에 빠진다. 급선회한 중국 상하이에서 저자는 뭄바이에서의 고통(?)을 잊고 차츰 평정심을 찾는다. “매달 다른 곳에 사는 건 멋진 일이다”는 고백도 이때 처음 나온다.

저자의 편지가 가장 행복하게 느껴지는 건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다. 21세 때 당시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한 곳으로, 6주 동안 붙어 다니다 격하게 싸우고 독일로 먼저 돌아갔던 추억(?)도 있다.

저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우연히 칼 제라시(1923~2015·피임약을 개발한 세계적인 화학자이자 소설가) 스탠퍼드대 교수의 아파트에 세 들어 살게 된다. 친한 언니에게 보낸 편지 속 “하얀 곱슬머리에 냉철해 보이는 맑은 눈을 가진 아주 매력적인 키 작은 남자가 나를 맞았어”라고 제라시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후에 제라시는 런던 여행 편지의 수신자가 된다.

저자는 여행이 절반 정도 진행된 샌프란시스코에서 “여행을 접고 여기서 계속 살고 싶다”며 정착에 대한 갈망도 솔직하게 드러낸다. 또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한 중간 점검을 통해 저널리스트 다운 면모를 드러낸다. “복합성과 모순성을 모두 고려해 한 도시를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도시가 너무 크기 때문에 각자의 버전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거지. 그것이 또한 도시를 아주 매력적으로 만들고. 그래서 모두가 저마다의 버전과 해석이 옳다고 느끼는 거고. (중략) 그러니 어떤 장소를 ‘완전히’ 안다고 말하는 건 착각이야.”(167쪽)

도시를 이해하는 데 정답이 없다는 말은 저자가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8월 덴마크 코펜하겐에 이르러 자신의 어린 시절로 편지를 띄운 저자는 따뜻하게 조언한다. “답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지 마. 같은 질문이라도 언제 묻느냐에 따라 너는 아주 다양한 대답을 하게 될 거야. 그래도 괜찮아. 너에겐 계속해서 새로운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어.”(219쪽)

한국 독자는 독일 아마존 68주 베스트셀러인 이 책에 서울이 없다는 게 아쉬울 수도 있다. 저자는 이미 서울과 인연이 있다. 현재 50세인 저자는 20대 초반(1980년대 초·중반), 장거리 연애(샌프란시스코에서의 그 남자친구다)를 하며 한국에서 석 달을 지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시 찾기엔 별로 흥미가 없었던 걸까.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