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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5년 08월 21일(金)
왜 어떤 일은 기억하고 어떤 일은 쉽게 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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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 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 이미옥 옮김 / 에코리브르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표절사건이 일어난 후, 소설가 신경숙이 그 일을 사실상 시인하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표현의 모호함 탓에 대중의 더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일상에서 무척 자주 일어난다.

1970년 영국에서 유사한 표절사건이 벌어졌다. 고발된 사람은 조지 해리슨. 비틀스의 멤버다. 그가 솔로로 발표한 곡 ‘나의 자비로운 신(My Sweet Lord)’이 여성 그룹 치폰스의 히트곡 ‘그 사람은 너무 멋있어(He’s so fine)’를 표절했다는 것이다. 두 곡은 멜로디가 아주 비슷했다. ‘그 사람은 너무 멋있어’를 반주로 틀어놓고 ‘나의 자비로운 신’을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신경숙과 마찬가지로 해리슨 역시 크게 반발했다. 긴 법정 소송이 벌어졌고, 5년이 지나서야 판결이 나왔다. 해리슨이 무의식적 기억에 있는 것을 의도치 않게 베낀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이 사건 탓에 해리슨은 좌절에 빠졌다. 배상금만 50만 달러에 이르렀지만, 돈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가 문제였다.

다우어 드라이스마 교수의 신작 ‘망각’에 나오는 이 에피소드는 기억에 대한 것이면서 동시에 망각에 대한 것이다.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등 기억을 소재로 삼은 일련의 저작들로 국내 독자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기억의 쌍생아인 ‘망각’을 다룬다. 인간이 왜 어떤 일은 기억하고, 어떤 일은 망각할까.

신경숙이나 해리슨의 경우에서 보듯이, 기억과 망각은 서로 붙어 다닌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거나 그의 글을 읽었는데, 내 머릿속에 떠오른 그와 똑같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현상”을 “잠복기억”이라고 한다. 잠복기억은 말 그대로 “잊어버린 기억”이다. 기억과 망각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 현상은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한 일에 속한다.

잠복기억 문제를 비롯해 이 책은 망각과 관련된 수많은 문제를 집약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아기 시절은 왜 좀처럼 기억나지 않을까, 꿈을 기억하는 것은 왜 그토록 어려울까, 기억상실에 걸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심리적 억압은 정말로 우리가 겪은 끔찍한 일을 잊어버리게 만들까,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일은 사라지지 않고 뇌 속 어딘가에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저장돼 있지는 않을까 등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온갖 망각 현상들을 각종 실험에 흥미로운 일화를 더해 가면서 훌륭한 솜씨로 풀어 나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서전적 기억’이다. 우리는 모두 최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서너 살 때 기억이지만, 어떤 이는 그보다 빠를 수 있고, 어떤 이는 늦을 수 있다. 이 기억은 정말 우리가 겪은 일일까, 혹시 누군가 들려준 이야기이거나 우리가 안타까움에서 조작한 것은 아닐까. 저자는 “기억은 체험의 반복이 아니라 재구성”이라고 말한다. 무엇은 망각하고 무엇은 기억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간다. 최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누구나 그 전후로 놓인 거대한 공백 때문에 깜짝 놀랄 것이다. 이처럼 삭제와 배제와 선택을 통해 체험은 서로 엮이면서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이 이야기는 심지어 고정되지도 않아서, 지금 이 순간의 삶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되고 재창조된다. 따라서 우리가 기억하고 망각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 준다.

말년의 칸트는 치매에 시달리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한 이야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그는 친구와 나눈 이야기를 빠짐없이 메모했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자기 삶을 온전히 장악하기 위해 그가 벌인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다가오는 망각의 공포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몸부림치는 노철학자의 분투는 마음에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노력이 그를 망각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기억을 가꿀 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사랑과 기억하고자 쏟는 헌신이다.”

장은수<출판평론가·순천향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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