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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5년 08월 28일(金)
내가 살아야할 곳은 野生이 아니었다
친해졌던 메이블이 공격한 순간 깨달음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메이블 이야기 /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매는 슬퍼하지도 않고 상처를 입지도 않는다. 그저 사냥하고 죽일 뿐이다. 스코틀랜드 부둣가의 어느 눅눅한 아침. 한 낯선 남자가 겁에 질려 퍼덕거리는 검은 발톱과 부드러운 은색 눈빛의 매 한 마리를 상자에서 꺼내 나에게 보여 주었다. 나는 매에게 메이블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고. 케임브리지로 데려와 매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2014년에 출간돼 논픽션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새뮤얼 존슨 상을 받은 ‘메이블 이야기’는 상실과 슬픔, 이를 견디고 다시 제자리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경이로운 책이다. 시인이며, 역사가이고, 동물학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 헬렌 맥도널드의 면모들이 제각각 장점을 드러내기에 책은 시적이고 인문적인 동시에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묘사가 촘촘한 텍스트, 그래서 아무리 시간이 촉박해도 슬픔을 넘어 다시 삶을 향해 가는 그의 어려운 걸음에 맞춰 천천히 읽어갈 수밖에 없다.

시작은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런던 언론사의 사진 저널리스트였던 아버지가 어느 날 길거리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친구이자, 스승이었고, 세상을 향한 탐험을 함께했던 존재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그리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슬픔은 헬렌의 삶 전체를 흔든다. 그는 “비행기들은 여전히 착륙하고, 자동차들은 여전히 달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쇼핑을 하고 수다를 떨고 일하는” 변함없는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역사와 철학을 가르치는 지적 작가답게 그녀는 애도와 상실을 다룬 책들을 사들였고, 온 힘을 다해 책이 말하는 부정-분노-수용으로 이어지는 애도 과정을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슬픔은 더 깊어졌고, 그는 집 안에 처박혀버렸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그는 매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매는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 맹금류가 가장 훌륭한 생물체라고 믿었던 여섯 살 헬렌은 양팔을 날개처럼 등 뒤로 접고 잤고, 여덟 살 때부턴 매에 대한 온갖 책을 사들였다. 어쩌면 아버지가 존재했던 어린 시절, 그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무엇이든 붙잡아야 했던 그는 야생 참매를 길들여 보기로 한다. 그는 스코틀랜드 부둣가에서 야생 참매를 800파운드에 사서 케임브리지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사랑스럽고 귀엽다는 뜻의 메이블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매잡이 사이에서 매의 능력은 이름의 포악함과 반비례한다는 미신이 있었다.

이어 책은 저자가 본격적으로 참매를 길들이는 과정으로 들어간다. 메이블은 좀처럼 마음을 내주지 않고 제법 길들였다고 생각하는 순간 헬렌을 공격하며 야생성을 드러낸다. 먹이를 주며 접근하고, 횃대에서 내려오게 하고, 어깨에 올려 도심 공원으로 산책을 간다. 이어 줄을 달아서 조금씩 더 멀리 날리고, 결국 줄 없이 자유롭게 날게 한다. 참매를 훈련시키며 저자는 야성 그 자체인 참매에게서 자신의 분노와 슬픔을 본다. 매를 기르는 일은 곧 자신의 슬픔을 길들이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메이블을 하늘로 날려보내며 아픔과 상처도 자연스럽게 놓아버린다.

여기에서 그쳤다면 ‘메이블’은 상실을 겪은 한 인간이 대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돼 슬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담은 여러 작품 중 하나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치유의 과정 끝에 메이블과 자신은 각각의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 각성의 순간은 꽤 오랜 훈련 끝에 가까워진 메이블이 헬렌을 공격해 이마에 상처를 낸 날이었다.

평소라면 “메이블이 왜 나를 공격할까”라고 불안해했을 그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현실에서 도망쳐 매가 되려 했지만 아무리 나 자신을 깎아내도 나는 매가 아니었다. 아무리 여러 차례 나뭇잎 더미 속에서, 들판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려도 매가 될 수 없었다. 나는 밤이 내릴 때 나무 밑에서 매가 돌아오기를 인내하며 기다리는 인간이었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는 그 뒤 메이블을 부르지 않고, 한동안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날아다니게 해준다. 그는 메이블이 날아다니며 만드는 자신의 영역이 다름 아닌 자신과 함께했던 기억의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삶을 공유할 순 있지만 매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는 다르다는 것, 결국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매를 내 세계에 데려왔고, 그러다가 내가 매의 세계에 사는 체했다. 이제는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는 분리된 채 행복하게 각각의 삶을 공유한다. 나는 손을 내려다본다. 손에 흉터들이 있다. 하나는 메이블이 허기져 화를 낼 때 발톱으로 긁은 상처이다. 메이블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찾아다니다가 블랙손(야생자두나무)에 찢긴 상처도 있다. 다른 흉터들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메이블이 만든 게 아니라 아물도록 도와준 상처들이다.”

자연에 기대 슬픔을 잊고 무뎌지는 방식이 아니라 상실과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돌파한 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긴 여정이다. 살아가면서 각자의 매를 하늘로 띄워 날려보내야 하는 상실을 겪은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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