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식 기자의 버디 & 보기>신데렐라의 저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활동하던 장타자 이지영이 28일 개막된 요코하마 타이어 클래식을 마지막으로 은퇴합니다. 올해 30세인 이지영은 12월 결혼해 가정을 꾸립니다. 이지영은 지난 2005년 한국에서 열린 유일한 LPGA투어대회 CJ 나인브릿지 클래식(현 KEB·하나은행챔피언십)에서 비회원 신분으로 우승하며 ‘신데렐라’가 됐습니다. 이지영은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2006년부터 지금까지 만 10년을 꼭 채웠지만 정작 미국에선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이지영은 우승을 못했을 뿐, 10년 동안 시드를 지켜올 만큼 꾸준한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준우승만 9차례나 했을 만큼 지독히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지영 외에 한국에서 열린 LPGA투어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는 3명이 더 있습니다. 안시현(2003년), 홍진주(2006년), 그리고 백규정(2014년)입니다. 국내 최고기량을 갖춘 선수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신데렐라가 된 순간 독배도 함께 들었다는 점입니다. 이지영 등 4명은 약속이나 한 듯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정작 우승컵은 한 번도 들어 올리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신데렐라의 저주’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원조 신데렐라 안시현은 LPGA에 데뷔했던 2004년 신인상을 받았지만 우승 없이 미국생활을 접고 쓸쓸히 2013년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174㎝의 키에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던 홍진주 역시 2007년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2010년 결혼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고 엄마가 됐으면서도 현역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국산 신데렐라들이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준비 부족’입니다. 갑작스러운 우승 후 한두 달 만에 미국으로 건너갔기에 코스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또 영어 구사마저 어렵다 보니 이국생활은 힘에 부쳤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한국 최고라는 거품을 일찌감치 걷어내지 못한 것도 실패를 자초한 원인이 됐다는 선수도 있습니다. 몇 년에 걸쳐 차분하게 미국 진출을 준비해온 다른 선수들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올해도 오는 10월이면 한국에서 LPGA투어 KEB·하나은행챔피언십이 어김없이 열립니다. 또 다른 신데렐라 탄생과 함께 한국산 신데렐라의 쓸쓸한 퇴장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 백규정이 하루빨리 미국에서 우승 소식을 전해 저주의 사슬을 끊기를 기대합니다. 한국산 신데렐라의 손에 독배가 아닌 ‘축배’가 쥐어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