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자동차산업>쏘나타-BMW 배기량 같다고 자동차稅도 동일 ‘역차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배기량 대신 차 값을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서울 서초구의 한 수입차 매장 앞에 차량들이 서 있다. 연합뉴스

차 값 아닌 배기량 기준 부과
가격은 2.8배나 비싼 수입차
오히려 세금 1000원 적게 내

수입차에 사실상 ‘세금 혜택’
정치권 “불합리” 法개정 추진
美선 차 값 기준 재산세 매겨

지난해 2000만 원대 국산 중형차를 산 직장인 A(37) 씨는 최근 비슷한 시기에 6000만 원대 수입차를 산 대학 동기가 비슷한 액수의 자동차세를 낸다는 사실을 알고 분통이 터졌다. 자동차세가 배기량에 따라 매겨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3배 가까이 비싼 차를 몰면서도 배기량이 같다는 이유로 똑같이 세금을 낸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 씨는 “비싼 차를 구입해 끌고 다니는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는 게 좀 더 형평성이 맞을 것 같다”고 꼬집었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50년 전 만들어진 현행 자동차세 과세표준은 가격과 상관없이 배기량 기준으로만 세금을 매기고 있어 수입차 등 고가 차량에 대해 사실상 세금 혜택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행 자동차세(비영업용 승용차 기준)는 배기량에 따라 세율을 3단계로 차등화해 매기는데 1000㏄ 이하 승용차는 ㏄당 104원(이하 지방교육세 30% 포함), 1000∼1600㏄는 ㏄당 182원, 1600㏄ 초과는 260원의 세금이 매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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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엔진 다운사이징(소형화) 등으로 배기량이 작지만 더 높은 출력과 비싼 가격의 차가 쏟아지면서 고가 차량 소유자가 오히려 자동차세를 적게 내는 조세 부담의 역진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6390만 원짜리 BMW 520d를 구입한 경우 이후 1년간 자동차세가 51만8700원이지만 가격이 3분의 1인 2245만 원짜리 현대차 쏘나타 CVVL은 오히려 조금 더 많은 51만9740원의 세금을 낸다. 520d의 배기량이 1995㏄로 쏘나타(1999㏄)보다 약간 작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1600㏄를 초과할 경우 모든 차가 ㏄당 세율이 똑같기 때문에 억대를 훌쩍 넘는 고가 수입차 보유자와 국산 중형차 보유자가 ㏄당 같은 세율을 적용받게 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재산세를 집값이 아닌 평수(넓이)에 따라 부과하는 것과 같아 부유층일수록 유리한 조세 제도”라고 말했다.

반면 차를 재산 개념으로 보는 미국의 경우 전체 50개 주 가운데 31개 주가 차 값(중고차는 잔존가치)을 기준으로 보유하는 동안 매년 재산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 결과 비싼 차를 보유한 부유층의 경우 세금을 더 내고 저렴한 차를 가진 서민들의 경우 세금을 덜 내도록 되어 있어 합리적 과세가 가능하다.

이에 따라 배기량 대신 차 값을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정치권에서 추진되고 있다. 지난 21일 심재철(새누리당) 의원은 자동차세를 배기량이 아닌 자동차 가액 기준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지방세법 개정안을 국회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1500만 원 이하는 차 값의 0.8%, 1500만∼3000만 원은 12만 원+1500만 원 초과액의 14분의 1, 3000만 원 초과 시에는 33만 원+3000만 원 초과액의 20분의 1을 자동차세로 납부토록 했다.

대기업 임원이나 개인사업자가 주로 사적 용도로 쓰는 수입차 등 고가 차량을 업무용으로 등록하면 경비로 인정해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 역시 고소득자에게 혜택을 주는 대표적인 제도로 꼽힌다. 아무리 비싼 업무용 차량이라도 기름값 등 전액 경비로 간주해 세금을 깎아주는데 대해 비판 여론이 일자 정부는 지난 6일 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차 값이나 경비 처리에 상한선을 두지 않은 데다 제도상 허점이 많아 여전히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억 원대 스포츠카 등 실제 업무에 쓰이지 않는 차량이라도 전용보험에만 가입하면 차량 구입 및 유지비의 50%를 경비로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싼 차라도 차 값에 관계없이 구입·유지비를 동일한 비율로 경비 처리를 해줘 비싼 차를 살수록 오히려 세제 혜택 규모가 커지게 된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지난 7월 이후 국회에는 업무용 차량의 구입 및 운영비를 경비 처리해주는 상한선을 3000만∼5000만 원으로 제한한 법안이 4건이나 올라와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차량 구입비에 상한선을 두고 유지비 부문 역시 업무용 운행 여부에 대한 검증을 철저히 해 고가 차량의 탈세를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남석 기자 namdo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