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한솥밥’ 한 스승 제자서 견원지간된 택견 1·2인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04년 10월 한국전통택견협회 김구익(가운데) 회장과 정경화 택견예능보유자(오른쪽), 박만엽 당시 택견총전수관장이 화합을 선언한 뒤 서로 손을 잡고 있다.

예능보유자 정경화-전수조교 박만엽 씨 ‘예능 보유자’ 자리 놓고 충돌

“40년 동안 쌓여온 애증과 경쟁 관계가 결국 폭발했다.”

지난 1일 불거진 전통무술 택견(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 1인자와 2인자 간의 전면적인 충돌은 이해관계에 따라 복잡하게 얽힌 택견계의 난맥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택견 예능보유자 정경화(61) 씨와 전수교육조교 박만엽(55) 씨는 40여년을 한 스승 밑에서 한솥밥을 먹어 온 동문이지만, 그런 인연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날카롭게 맞서 있다.

박 씨는 정 씨가 재정 비리 등 부정을 일삼고, 자신이 충청북도 예능보유자로 지정되는 것을 막으려고 명예훼손은 물론 폭행까지 행사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이에 맞서 정 씨는 박 씨가 개인 욕심을 채우려고 택견계 반대를 무릅쓰고 예능보유자가 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몽니를 부린다는 입장이다.

보유자-전수교육조교-이수자 체계로 돼 있는 현 무형문화재 제도에서는 인간문화재라 할 수 있는 보유자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보유자가 되면 전통문화 확산과 세대 간 전승 의무와 함께 각종 지원 혜택도 주어진다.

그만큼 보유자 자리 차지를 향한 욕망이 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보유자 선정이 두 사람 갈등의 단초된 이유다.

정 씨와 박 씨의 인연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이는 정 씨가 여러 살 많지만 택견 입문은 박 씨가 먼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씨는 1975년, 정 씨는 1976년부터 택견 초대 예능보유자인 고 신한승(1928~1987) 선생의 문하에서 함께 택견을 익히면서 서로 경쟁의식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택견계에서는 박 씨가 자신이 택견 입문 선배이고 기량도 더 뛰어난데도 늘 정 씨의 그늘에 가려져 왔다는 피해 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박 씨는 “택견이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듬해인 1984년 스승께서 ‘박만엽은 택견을 잘하니 실기를 맡는 지도사범을, 정경화는 글을 잘 쓰니 행정 담당 사범을 맡으라’고 역할 분담을 해주셨다”고 주장한다.

정 씨가 스승을 이어 1995년 택견 예능보유자에 오르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이런 갈등으로 충주 지역 택견계는 정 씨를 중심으로 한 택견원형보존회와 박 씨를 중심으로 한 한국전통택견회로 상당 기간 갈라져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정 씨가 한때 충주를 떠나 있기도 했다.

둘은 2004년과 2009년 화합을 선언하는 등 화해 노력도 벌였지만 오랜 경쟁관계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올들어 박 씨가 충청북도 지정 예능보유자 신청을 내자 둘 사이의 해묵은 갈등이 또다시 폭발했다.

정 씨가 충북도의 요청에 따라 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택견이 무분별한 법인체 난립으로 분열과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도 차원의 예능보유자를 별도 지정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박 씨의 개인적 문제점을 지적한 게 도화선이 됐다.

충주시 관계자는 “박 씨는 자신이 나이는 어리지만 택견 입문도 먼저 하고 기량도 뛰어난데 스승이 돌아가신 뒤 전세가 역전됐다고 생각하고, 정 씨는 택견계 분열을 막아야 한다며 박 씨를 견제하면서 끊임없이 갈등이 빚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꼬일대로 꼬인 두 사람의 관계는 박 씨가 정 씨를 검찰에 고소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관계 개선이 회복 불능이라는 관측까지 나오면서 택견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택견계의 한 관계자는 “전통무예인 택견의 안정적인 전승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