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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5년 09월 16일(水)
우측통행? 좌측통행? ‘무법자’ 있으면 통행 더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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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위로 걷는 보행자는 만약 앞칸에 다른 사람이 있다면 오른쪽, 왼쪽 옆칸으로 각각 확률 q와 1-q로 이동한다. q=1인 경우가 바로 연구에서 사용한 우측통행 보행 규칙에 해당.
▲  그림 2. 길 안 막힘 확률 φ를 우측 통행규칙 준수자 비율 p에 따라 그린 그래프다. 보행자 밀도가 클 때(파란색 그래프), 적절한 정도의 무법 보행자가 있는 경우에 오히려 통행이 원활함을 보여준다.
김범준의 과학 이야기 - 5. 보행자 흐름

지하철역에서 내려 많은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통로를 지나간다. 마주쳐 오는 사람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면 어떻게 할까. 내가 나의 오른쪽으로 살짝 피할 때 마주쳐 오는 사람도 자기의 오른쪽으로 살짝 움직인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 사람이 자기의 왼쪽으로 움직이면 다시 나와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지하철역의 환승 통로나 사무실 밖 복도에서나 누구나 겪어본 일이다. 어떨 때는 같은 방향으로 두세 번 이상 마주치기도 한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상대방이 피해 가겠거니 하고 가만히 서니 마침 상대방도 같은 생각인지 쑥스럽게 웃으면서 내 얼굴만 쳐다본다.

비슷한 상황이 영화관에서도 있다. 내가 앉은 좌석의 팔걸이에는 음료수가 든 용기를 둘 수 있는 구멍이 양쪽 모두에 있다. 내 콜라는 왼쪽에 두어야 하는 걸까 오른쪽에 두어야 하는 걸까. 식당 식탁 위에 나란히 놓인 수저 중 내가 쓸 것은 아마도 내 오른손에 가까운 것이겠지. 그럼 앞에 있는 물컵 중 내 컵은 왼쪽 것일까 오른쪽 것일까. 이런 상황의 공통점은 규칙만 정해진다면 그 규칙이 무엇이어도 사실 큰 문제가 없다는 거다. 우측통행이든 좌측통행이든, 오른쪽 물컵이든 왼쪽 물컵이든, 둘 중 하나로 사회적인 규약이 정해지고 모든 사람이 그 약속을 지키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

많은 사람이 넓고 긴 통로를 걸어가고 있다 하자. 동서 방향의 이 통로의 동쪽 끝과 서쪽 끝에서 계속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걸어갈 때 사용하는 전략(전략이라고 하기도 쑥스러울 정도로 간단한 일종의 규칙)은 아마도 무척 단순할 것이다. 동쪽에서 통로에 진입해서 서쪽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일단 똑바로 서쪽으로 걸어갈 텐데, 자신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바로 앞에 사람이 있다면 살짝 옆으로 피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왼쪽으로 피할까 오른쪽으로 피할까. 이런 연구도 심각하게 진행해서 논문을 쓰는 물리학자들이 제법 있다. 필자도 그중 하나.

몇 해 전 출판한 논문(연구 결과는 부경대 백승기 교수가 주로 얻었고, 논문의 공동저자로 스웨덴의 페터 민하겐 교수와 세바스찬 베른하르드손 박사, 그리고 당시의 경기과학고 학생 최권이 함께했다)에서 다룬 내용이 바로 이런 보행자 문제였다. 사실 처음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지하철 환승 통로에서의 필자의 경험이었다. 우측통행을 정확히 하기가 곤란한 상황이었는지 양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많은 사람이 뒤엉키듯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조금 걷다 보니 마주쳐 오는 사람들과 거의 마주치지 않고 어렵지 않게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 사람이 그냥 자기 앞에 걸어가는 사람의 등만 보고 쫓아가는 상황. 이처럼 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와 넓고 긴 통로를 양쪽 방향으로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의 길이 생긴다. 내 앞에 가는 사람 등 뒤를 따라가지 않고 옆으로 발걸음을 내디디면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마주하게 되어 걷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연구에 사용한 모형(그림 1 참조)에서는 편의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어깨 폭을 유지한 채 몸을 옆으로 돌리지 않고 똑바로 걸어간다고 가정했다. 사람들의 걷는 속도는 또 누구나 같아 한 번에 한 발짝씩 자신의 어깨 폭과 같은 보폭으로 앞으로 이동한다. 동쪽에서 출발한 사람은 서쪽으로, 서쪽에서 출발한 사람은 동쪽으로 걸어가게 했고, 폭이 넓고 긴 길은 마치 바둑판처럼 정사각형 격자로 이뤄진 것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은 이 바둑판 모양으로 가로세로 줄이 있는 길 위에서 마치 바둑알처럼 한 칸씩을 차지하고 한 번에 한 칸씩 앞으로 이동한다. 만약 앞칸을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어서 앞으로 갈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이 보행자는 진행방향의 우측을 선호하도록 해서, 먼저 오른쪽 옆으로 이동하게 했다(그림 1에서 q=1인 상황). 그곳을 만약 다른 보행자가 차지하고 있으면 왼쪽 옆으로, 그곳도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있다면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모형의 보행자 수가 많으면(더 정확히는 보행자의 밀도가 어떤 문턱 값보다 크면) 마치 자동차가 도로 위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생긴다.

사실 실제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으로 꽉 차 있는 길이라고 해도 이런 꽉 막힌 상황은 사실 잘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사이를 자동차와는 달리 몸을 옆으로 돌리는 등의 방법으로 어느 정도는 지나갈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어떤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모형을 상정할 때 가능하면 가장 단순한 모형을 이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손에서 떨어뜨린 물체가 중력에 의해 바닥에 떨어지는 상황을 기술하는 물리학적인 모형도 사실은 전혀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물체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작으니 특수상대론적인 효과를 무시하고, 물체의 높이가 변하니 엄밀히 이야기하면 물체의 중력가속도도 계속 변하지만 이것도 무시하고, 공기 중에서 떨어지니 물론 공기의 저항력이 있지만 이것도 무시하고… 물리학자는 계산을 통해 정확한 숫자로 결과를 잘 주는 사람이 아니라,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의 어림(혹은 근사·approximation)을 잘 생각해 내는 사람이다.

오늘의 주제 보행자 문제를 이해하려는 물리학자들의 모형도 마찬가지다. 물리학자도 물론 사람이 바둑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을 한 번에 한 칸씩 움직이는 바둑알처럼 기술해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 있으면 일단은 사람을 바둑알로 놓자는 거다. 이러한 방법론상의 단순함의 이점은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현상을 만들어 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쉽다는 데 있다.

일단 모형이 설정되면 이제 컴퓨터를 이용한 시늉 내기(simulation)를 해 볼 차례다. 이 연구에 사용한 컴퓨터 프로그램은 백승기 교수가 작성했다. 시늉 내기의 결과로는 먼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듯이,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길이 자연적으로 형성된다는 거였다. 필자가 얻고자 했던 결과를 얻었으니 일단 성공. 이는 또 연구에 사용한 바둑판의 바둑알 같은 보행자의 단순한 모형이 어느 정도는 현실 상황을 흉내 낼 수 있다는 것도 의미한다.

이 성공에 힘입어 다음에 살펴본 주제는, “만약 보행규칙을 정확히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였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전체 보행자 중 일정 비율 p만큼의 사람들은 우측 보행규칙을 잘 따르는 사람으로, 나머지 사람들은 무법 보행자로 가정했다. 무법 보행자들은 규칙을 전혀 따르지 않아서 걸어가는 방향의 앞칸을 누군가가 차지하고 있어 옆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 왼쪽과 오른쪽을 그때그때 마구잡이로 기분 내키는 대로 택하도록 했다. 만약 p가 0%라면 모든 사람이 무법 보행자인 경우고, 만약 p가 100%라면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이 우측통행의 보행규칙을 잘 지키는 상황에 해당한다. 연구에서는 주어진 p값과 보행자의 밀도 ρ의 값에 대해서 1000번씩 컴퓨터 계산을 해서 그중 몇 번의 계산에서 길이 안 막히는지를 구했다.

그림 2는 우측통행자 비율 p를 변화시키면서 이렇게 구한 길 안 막힘 확률φ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여러 보행자 밀도 ρ에 대해 구한 결과이다. 보행자 밀도가 그리 크지 않은 경우(ρ=0.20과 0.22)에 해당하는 그래프를 보면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을수록(즉 p가 커질수록) 길이 안 막힌다(즉 φ가 큰 값을 갖는다)는 결론을 얻는데, 이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결과이다. 즉 60% 정도의 사람들만이라도 우측 보행규칙을 잘 따른다면 길이 거의 안 막힌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 결과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보행자 밀도가 상대적으로 클 때(ρ=0.24)의 그래프였다. 이 그래프를 보면 우측 보행자가 많아질수록 처음에는(p가 60% 정도까지) 길이 더 잘 통하다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규칙을 따르면 (p가 60% 이상) 오히려 길이 막힌다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그런 결과를 얻게 되었다. 즉, 오히려 무법 보행자가 어느 정도 있는 상황이 모든 사람이 우측 보행규칙을 따를 때보다도 길이 더 잘 통하게 된다는 결과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상식에 반하는 이 결과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우측통행자들의 집단이 길의 가운데에서 만나게 되기 때문이었다. 즉 동에서 서로 걸어가는 우측통행자가 길의 남쪽에 있었다면 북쪽으로 조금씩 이동하게 되고, 또 반대로 서에서 동으로 걸어가는 우측통행자 중 길의 북쪽에 있는 사람들은 남쪽으로 조금씩 이동하게 된다. 이런 일이 생기면 동에서 서로 가는 우측통행자와 서에서 동으로 가는 우측통행자가 길의 중간 부분에서 만나게 되고 이 부분의 보행자 밀도가 국소적으로 높아지게 되어서, 길이 막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약간의 무법자의 존재가 오히려 전체 상황을 좋게 해 줄 수 있다”는 상식에 반하는 결과가 재미있었는지 국내외 언론에 이 논문이 소개되기도 했다. 사실 이 연구의 결과는 오로지 보행자들의 우측통행 준수에 대한, 현실과는 많이 다른 정말로 단순화된 모형의 결과일 뿐, 실제의 현실 상황에 곧바로 일반화해서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믿는다. 비록 모형의 사람이 바둑알이라고 우길지라도, 물리학자도 사람이다. 세상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 세상을 본다. 딱딱한 투로 써야 하는 학술논문에는 못 적는 이야기지만 오늘 소개한 연구를 마무리할 때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사람들이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두 집단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는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연구 결과가 어느 정도의 함의는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세상 사람들은 ‘모 아니면 도’처럼 하나같이 검은색과 흰색으로 나눌 수 있는 바둑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선택을 강요해서 없어지는 중간 회색 영역이 사실은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면 어쩌면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사실 검은색이나 흰색은 당연히 아니고 회색도 아닌, 연속적인 빛의 띠로 이뤄진 예쁜 무지개여야 하지 않을까.(문화일보 8월 19일자 24면 4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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