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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5년 09월 18일(金)
‘연애’ 위해 필수적인 ‘데이트’ 美 하층민 거주지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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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7년 1월 ‘노스웨스턴 대학 매거진’에 실린 삽화. 20세기 초 데이트가 젊은이들이 만나는 보편적 관습으로 자리 잡으면서 대학 파티 등에서 애정행위를 벌이는 남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앨피 제공
데이트의 탄생 / 베스 L. 베일리 지음, 백준걸 옮김 / 앨피

청춘 남녀의 만남을 상징하는 ‘데이트’의 역사는 길지 않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된 19세기 말∼20세기 초 생겨난 것이다. 이전 남녀의 만남은 주로 ‘방문’을 통해 이뤄졌다. 남자가 여자의 집을 찾는 형식이었다. 어머니 또는 보호자가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젊은이를 집에 데려왔다. 여성이 나이가 들어 자율성을 얻게 되면 댄스파티 등 가벼운 여흥 모임에서 안면을 튼 미혼 남성을 초대하기도 했다.

집에서의 만남은 수많은 규칙들의 향연이었다. 초대와 방문 사이의 시간 간격, 다과의 종류, 보호인의 동반 여부, 대화의 주제, 귀가 시간 등에 따라 해석이 갈렸다. 이는 서로의 예법, 가정교육 수준, 사회적 배경 등을 알아보는 시험대와 같은 절차였다. 가족들이 알게 모르게 그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연애는 지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데이트의 탄생’은 베스 베일리 미국 템플대 역사학과 교수가 1920∼1960년 미국사회에 급격히 확산된 데이트제도의 유래와 연원, 변천사를 풀어낸 연구서다. 이 시기 발행 부수가 높은 29개의 대중잡지와 80권가량의 행동·예정 지침서, 대중문화에 영향을 끼친 학술서 등이 재료로 쓰였다. 미국에서 데이트가 보편적인 관습으로 정착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한국의 현실과 닮거나 다른 부분을 찾는 일은 꽤 흥미롭다.

데이트는 본래 도시 하층민들의 것이었다. 19세기 말 일을 찾아 도시를 찾아왔지만, 이들을 위한 주거 공간이 넉넉지 않았다. 집은 하나같이 좁고 어둡고 누추했다.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초대나 방문은 언감생심이었다. 대신 도시에는 오락거리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댄스홀, 극장, 영화관, 레스토랑 등이 성황을 이뤘고, 하층민들은 자연스럽게 이 유흥공간에서 만남을 가졌다. 데이트의 탄생이다. 당시 한편에서는 ‘데이트’란 용어가 매매춘의 직접적·경제적 교환을 은유하는 단어로 쓰였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데이트 문화는 중산층으로까지 번졌다. 물론 초반에는 이 ‘바깥 만남’이 자유롭게 허용되지는 않았다. 1900년 발행 부수가 100만 부에 달한 중산층 계급의 대표 잡지 ‘레이디스 홈 저널’은 남자가 집에 데리러 오기 전까지 여자는 밖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칼럼을 자주 실었다. 데이트는 1920년대 들어서야 명실상부한 만남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보수적인 미국 중부지역에서도 데이트를 상류층의 반항이나 도시 하층계급과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았고, 미혼 여성이 남자와 단둘이 저녁을 같이 먹거나 극장을 출입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이처럼 연애의 장소가 사적 공간에서 공적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연애의 권력은 여성에게서 남성에게로 옮겨졌다. 데이트를 위해 쓰는 돈을 주로 남자가 부담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방문을 허가하는 여성이 주도권을 쥐었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부모님의 통제를 벗어난 자유로운 공간에서 남성은 돈을 통해 데이트의 장소, 먹을 음식, 이동 수단 등을 정하며 여성을 이끌었다. 여성은 남성이 돈을 써서 구매하는 상품처럼 여겨졌다. 그렇다고 남성이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남성 또한 여성에게 상품을 사다 주는 또 다른 ‘상품’이 됐다. 데이트를 통해 연애는 자본주의적인 상호교환의 모습을 띠게 됐다.

자본주의의 핵심 작동 기제가 경쟁인 만큼 데이트의 양상도 경쟁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초기에는 일부 대학에서 ‘데이트 평가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여성은 데이트를 한 후 남성에 A∼E까지 점수를 줬다. 남성은 많은 돈을 써야 인기가 많았고, 여성은 데이트 신청을 많이 받아야 매력적인 여성으로 평가받았다. 많은 남성들과 데이트하는 여성을 ‘어장관리녀’로 부르며 분개하는 현재와 달리, 당시 미국 여대생들은 다른 남성에게 자신이 데이트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한 명의 상대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데이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나타났다. 많은 남성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고, 남자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불안한 시기였기에 젊은이들은 안정적인 관계를 원했다. 하지만 이런 오래 사귀기 관행에 대해 부모 세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혼전 성관계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 자식, 특히 딸을 가진 부모의 걱정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됐던 셈이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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