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07년 울산과학기술대(UNIST) 초대 총장으로 취임한 뒤 UNIST를 과학특성화 명문대학 반열에 올려놓고 최근 퇴임한 조무제 전 총장이 지난 24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UNIST의 성장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정하종 기자 maloo@
조무제 前 울산과기대(現 울산과기원) 총장
“8년 전 토지보상비 인상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나부끼는 허허벌판 가설 무대에서 울산과학기술대(UNIST) 기공식 겸 총장 취임식을 했습니다. 당시 취임사를 통해 ‘UNIST를 한국의 매사추세츠공대(MIT)로 만들겠다’고 하자 모두가 비웃었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선언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확신합니다. UNIST의 2차전지분야 경쟁력은 MIT, 스탠퍼드대와 함께 이미 글로벌 톱3, 화학 및 신소재 분야는 글로벌 톱20에 속한다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입니다. 2009년 3월 1일 학생들을 처음 뽑았는데 이후 지금까지 6년 반 동안 대학이 성장한 모습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15년 뒤인 2030년까지 세계 10위권 대학이 되겠다는 UNIST의 목표는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 아닙니까.”
2007년 UNIST 초대 총장으로 취임한 뒤 연임하며 UNIST를 과학특성화 명문대학 반열에 올려놓은 조무제(71) 전 총장. 8년간 온 힘을 쏟아 부었던 UNIST 총장직에서 최근 물러난 그는 UNIST가 MIT 등 세계적인 명문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 꿈이 아닌 현실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훤칠한 키에 자연스러운 은발이 멋들어진 조무제 전 UNIST 총장을 지난 24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사에서 만나 UNIST의 성장 과정과 UNIST만의 교육방식 그리고 한국과학기술계의 문제점과 미래까지 짚어 보았다. 조 전 총장은 UNIST를 떠났지만 인터뷰 내내 UNIST를 ‘우리 대학’ ‘우리 학교’라고 표현하며 여전히 UNIST에 대한 진한 사랑을 드러냈다.
―재임 8년 동안 이룬 업적과 성과를 말씀하신다면.
“국내·외에서 UNIST의 발전을 기적이라고 평가합니다. 총장 임기를 시작하고 첫 삽을 뜬지는 8년이 지났지만 학생을 선발해서 개교한 지는 6년째입니다. 개교한 지 6년 된 대학이 각 연구단에 연간 100억 원씩 10년간 1000억 원을 지원하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 3개를 유치했습니다. 3개 이상 연구단을 유치한 대학은 UNIST를 포함해서 카이스트, 포스텍, 서울대 등 4개 대학밖에 없습니다. 2차전지용 신소재를 개발해 64억 원에 기술을 이전했으며 이전된 기술의 양산공장이 오는 10월 말 준공되면 연간 1000억 원 이상의 수입 대체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창조경제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는 것입니다. 화학 및 신소재분야 연구경쟁력도 글로벌 20위권이라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 강좌를 100% 영어로 진행하면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몽골, 가나, 베트남 등 저개발자원부국 31개국에서 상위 0.5% 이내의 우수학생 300여 명을 학부에 유치해 미래의 자원외교 교두보로 육성하고 있는 점도 UNIST의 자랑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 전 총장은 특히 UNIST가 100% 영어강의를 하는 국내 유일의 대학임을 강조하며 영어강의는 UNIST의 대표 브랜드라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는 가장 큰 무기”라며 “학생들도 100% 영어강의에 대해 불편함보다는 얻는 게 훨씬 많다는 인식을 하며 적극 호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UNIST 캠퍼스에는 9개의 이름없는 다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학교 출신 노벨수상자의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라는데,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보시는지.
“UNIST에는 9개의 무명의 다리뿐만 아니라 노벨동산이 있습니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초청하여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학생들의 이동이 가장 많은 곳에 기념식수를 하게 합니다. 학생들이 지나다니면서 노벨상에 대한 꿈을 갖고 도전해보라는 의미에서입니다. 노벨상은 UNIST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계의 숙원입니다. 정부가 미래의 노벨상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IBS사업단을 개교 6년 만에 3개나 유치하여 UNIST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상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꿈은 꾸어야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과학기술계의 거물로서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나라가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내는 데에 과학기술계가 기여한 공로에 대해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웃나라 일본이 노벨상을 19명이나 배출했는데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뭘 하느냐는 질타 아닌 질타를 받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일본과 사정이 다릅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현대과학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가 노벨상을 기대하기엔 아직 시기가 빠르다는 얘기입니다. 오늘의 한국을 만드는 전략은 시장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 잡는 패스트 팔로어(Fast-Follower)전략이었지만 앞으로는 기업이든 과학기술이든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mover)로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부 정책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참아줘야 합니다. 연구비 지원하고 1∼2년 뒤 성과를 기대하면 획기적 기술이 나오겠습니까. 독창적이고, 모험적인 기술이 나오려면 투자한 뒤 7∼8년은 기다릴 줄 아는 문화가 조성돼야 합니다.”
―홀대받았던 이공계 학과가 최근 각광받고 있는데요.
“그동안 우리나라는 여전히 남아있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식 때문에 이공계의 중요성이 간과되어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공무원 조직 특히 사무관급 이상 고급 공무원의 적어도 절반은 이공계 출신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두 개 부처를 제외하고는 이공계 출신은 극소수입니다. 지금 기업은 생태계가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인더스트리 4.0, 스마트팩토리 등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 시장 점유율은 삼성이 애플을 앞서지만 순이익은 애플이 90%인데 반해 삼성은 2%에 불과합니다. 기업은 기업의 필요에 의해 이공계 출신들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대학은 수요자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학들이 시설투자가 필요없는 인문·사회계, 경영·경제계 학과 등을 많이 늘려 이들 학과의 학생 수가 대학 전체정원의 절반을 넘고 있습니다. 지금 교육부에서 인문사회계 학생을 이공계로 전환시키기 위한 정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올바른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중공업, 화학 기업 등 국내 산업의 근간 되었던 기업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글로벌 현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특히 우리나라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 플랜트 등이 더욱 어려운 것은 취약한 기술경쟁력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외국의 많은 기업들은 어려울 때일수록 연구·개발(R&D)에 투자합니다. 특히 조선업의 경우 주 설계 등 고부가가치 핵심 기술은 대부분 외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 3사들의 R&D투자가 매출액의 1% 미만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민간 R&D투자 비율이 4% 내외로 볼 때 보다 과감한 R&D 투자가 절실합니다. 또 노조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합니다. 울산에 있으면서 피부로 느꼈습니다. 자동차, 조선 파업행태는 지나칩니다. 임금이 일본 토요타는 물론 미국 애틀랜타 공장 노동자보다 20%가량 더 높습니다. 하지만 생산성은 70∼80% 정도로 낮습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노조는 계속 더 달라고 파업을 합니다. 과감한 R&D 투자와 노조의 의식이 개선돼야 기업이 살아난다고 봅니다.”
―한국 과학기술계의 미래를 전망한다면.
“과학기술 발전의 평가 지표로 ‘네이처(Nature)’, ‘사이언스(Science)’ 등 세계적인 학술지에 발표하는 논문 비율과 발표된 논문들의 인용빈도를 지표로 자주 활용합니다. 최근 우리나라도 이들 지표들이 꾸준히 높아져 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과학기술도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경제발전 속도와 비례해서 과학기술 경쟁력도 빠른 속도로 증가되기를 기대합니다. 과학기술 경쟁력은 투자한 뒤 곧바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소 시간이 걸립니다. 노벨상이 언제쯤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앞으로 20년 내엔 나올 수 있다는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인터뷰 = 김도연 차장 (전국부) kdych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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