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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게재 일자 : 2015년 10월 07일(水)
핀란드 외교관과 조선인 東京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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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타미사리섬에 위치한 구스타프 존 람스테트(1873~1950) 교수의 기념비. 람스테트 교수는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다.
장동희 / 駐핀란드 대사

구스타프 존 람스테트(1873~1950) 교수와 수애 류진걸 선생. 많은 사람에게는 생소한 이름일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한국어는 알타이어계에 속한다”라는 말은 우리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익히 배운 터라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 람스테트 교수이며, 교수가 한국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도운 인사가 류진걸 선생이다.

람스테트 교수의 한국어와의 인연은 1919년 교수가 초대 극동 주재 핀란드 대사대리로 일본 도쿄(東京)에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평소 몽골어 등 알타이어 계통 언어에 조예가 깊었던 교수는 자연스레 한국어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1924년 도쿄에 유학 중이던 조선인 청년 류진걸을 만나게 되면서 한국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두 분의 연구 작업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진행됐다고 전해진다. 특히 람스테트 교수는 일본 재직 중 일본어보다 한국어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사실에서 그의 한국어에 대한 열의와 집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보아 람스테트 교수는 1928년 ‘한국어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게 됐고, 이를 통해 한국어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게 됐다.

람스테트 교수는 핀란드로 귀국한 이후에도 서신 교환을 통해 류진걸 선생과의 우정을 계속 이어 나갔으며, 한국어에 대한 연구도 계속하여 ‘한국어 문법’(1939), ‘한국어 어원연구’(1949)를 지속적으로 저술하였다. 이 저서들은 당시 서양에서 한국어 연구를 위한 거의 유일한 자료였으며, 특히 ‘한국어 문법(A Korean Grammar)’은 영어로 쓰인 최초의 한국어 입문서로서, 6·25 전쟁 당시 파견된 유엔군 병사들의 한국어 기본교육 교재로 활용되었다고 하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최근 람스테트 교수를 되새기는 매우 뜻깊은 기회를 가졌다. 지난 5월 헬싱키에서 서쪽으로 약 100㎞ 떨어진 타미사리섬에 위치한 람스테트 교수의 고향 라세보리(Raseborg)시가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을 한다며 필자를 초대하였기 때문이다.

사각 기둥으로 된 람스테트 교수의 기념비에는 한국어를 비롯, 핀란드어, 스웨덴어, 일본어로 교수의 업적을 기록하여 놓았는데, 한국어판에는 람스테트 교수가 강의하는 모습 밑에 “…알타이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고 적혀 있다. 축사를 부탁받고는 람스테트 교수와 류진걸 선생의 깊은 우정과 두 분의 우정과 협력의 결과로 탄생한 ‘한국어 문법’ 책이 한국어를 서양에 소개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음을 이야기해 주며, 한국과 핀란드 간의 우정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님을 강조하였다. 왜 한국어판 비문이 있는지 다소 의아해하던 참석자들은 필자의 말을 듣고서는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양국 간 교류사에 있어 새로운 발견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행사가 끝나고 유족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 하여 따라가 보았다. 그것은 라세보리 시립박물관 한쪽에 마련된 람스테트 코너에 유품과 함께 소중히 전시되어 있는 우리 정부가 수여한 훈장(국민훈장 모란장)이었다. 유족들은 지난 1982년 우리 정부가 수여한 이 훈장을 보여주며, 고인이 된 할아버지를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1500년대부터 조성된 예쁜 목조건물들로 이루어진 골목길의 고즈넉함에 더하여 람스테트 교수의 발자취를 좇아 라세보리를 찾는 한국인들의 발걸음도 더욱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서로를 멀게만 생각했던 핀란드와 한국, 하지만 이제는 더욱 가까워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인천과 헬싱키 간 직항 노선이 매일 운항되고 있으며,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갈 경우, 처음 만나게 되는 유럽 도시가 헬싱키이기 때문이다. 약 100여 년 전 람스테트 교수와 수애 류진걸 선생은 양 국민이 이렇게 가까워질 수 있음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일까? 또 다른 아름다운 우정 스토리를 재현해 낼 양국 청년들 간의 활발한 교류를 기대해 본다.

◇장동희(59) △제11회 외무고시 합격 △외교부 조약국 국제협약과장 △주오스트리아 참사관 △조약국 심의관 △주벨기에·구주연합 공사 △외교안보연구원 경력교수 △주제네바대표부 차석대사 △주리비아 대사 △국제표기명칭 대사 △주핀란드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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