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팀장의 북레터>한글의 ‘제맛’ 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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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를 꾸리다 보면 특별한 날이나 기념일엔 관련 책을 찾아 지면을 만들게 됩니다. 새해엔 아무래도 새로운 계획이나 희망과 관련된 책을 고르게 되고 5월엔 가족에 대한 책들을, 3·1절이나 광복절엔 독립운동이나 한·일 관계에 대한 책을 선택합니다. 기념일이 가까워지면 (특히 광복 70주년인 올해 광복절의 경우) 관련 뉴스가 쏟아지기 때문에, 북리뷰까지 또 이 주제를 선택해야 하나 고민될 때도 있고, 5월 초 어김없이 가족 책을 북리뷰 1면 톱으로 올리면서 스스로 다소 지겹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에서도 기념일은 기념하고 기념해 주는 것이 정답이듯, 특정한 날엔 책으로 그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한글날 이야기를 하려다 서론이 좀 길었습니다.

9일은 한글날입니다. 한글과 관련된 신간들을 살피다 회사 책상 위, 책 더미 위에 쌓아두고 심심하면 꺼내 읽는 ‘동사의 맛’(유유·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글 관련 책은 재미있기가 쉽지 않은데 ‘동사의 맛’은 재미있습니다. 20년 넘게 잡지와 단행본 문장을 다듬어온 교정전문가 김정선 씨가 가르다·가리다, 지치다·짓치다, 헤집다·헤치다 등 헷갈리는 동사, 제대로 쓰면 감칠맛 나는 동사를 둘씩 짝지어 풀어내는데, 설명 방식이 이전 한글 용법 책들과 다릅니다.

‘설레다／에다’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떠서 두근거리는 것은 설레는 것이지 설레이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은 가슴을 에는 일이지 에이는 일이 아니다. 그 때문에 뭘 해야 좋을지 몰라 정처를 잃은 것은 헤매는 것이지 헤매이는 것은 아니다. 마음 한쪽이 아픈 것은 누군가 발길질이라도 한 것처럼 걷어차인 것 같기 때문이지 걷어채인 것 같기 때문은 아니다. 아픈 마음이 마치 후벼 파인 듯한 것 또한 파인 마음 때문이니 패인 마음 때문은 아니다. 설레는 것은 당할 수도 없고 시킬 수도 없는 일이다. 이것마저 당하고 시킨다면 돌아가 기댈 마음이 어디에도 없으리라.” 동사 용법들을 쉽게 알려주면서도 편안하게 일상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지막하게 들려줍니다. 기분이 나쁠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관련된 단어를 찾아 읽으면 저자의 풀이를 따라 가며 상황을 정리하게 되고,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저자는 “우리 말에서 동사는 음식으로 치면 육수나 양념에 해당한다. 제 몸을 풀어헤쳐 문장 전체에 스며들어 글맛을 내기 때문이다. 육수나 양념과 마찬가지로 잘 쓰면 감칠맛까지 낼 수 있지만 잘못 쓰면 맛은커녕 허기를 채우기도 어려워진다”고 했습니다. 책은 따뜻한 국물 같습니다. 이 따뜻함 때문에 책은 입소문이 나면서 5개월 만에 3쇄를 찍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것을 알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 그것이 모국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