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치들의 ‘탐욕’ 아예 싹부터 잘라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1세기 자본’의 토마 피케티(오른쪽 사진)는 심화되는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정책을 만들어 점진적으로 꾸준히 추진해나가자고 제안한다.

피케티의 신자본론 / 토마 피케티 지음, 박상은·노만수 옮김 / 글항아리

살아 있는 마르크스, 피케티가 한국에 되돌아왔다.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득 불평등의 실체를 폭로해서 거대한 사회적 충격을 주었던 ‘21세기 자본’이 출간된 지 한 해 만이다.

‘21세기 자본’에 나오는 피케티의 주장은 사실 누구나 이미 체감하는 것이고, 이를 자료를 집적해서 숫자로 보여 주었을 뿐이다. 돈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자본수익률(이자, 이윤, 임대료, 배당금 등)이 경제성장률(노동 등을 통한 실제 부의 증가율)보다 높으며, 이로 인해 세계가 ‘세습자본주의’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자기 생각과 같다고 느끼는, 피부에 와 닿는 주장 덕분에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은 경제학 서적 특유의 난해함 탓인지 산 사람은 많으나 읽은 사람은 거의 없는 ‘저주받은 걸작’으로 남기도 했다.

‘21세기 자본’이 ‘이론편’이라면, ‘피케티의 신자본론’은 그 책의 실천편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2004년부터 2015년까지 피케티가 ‘리베라시옹’에 한 달에 한 번씩 연재한 칼럼을 모은 것이다. 2011년 말 프랑스에서 ‘우리가 유럽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에 그사이 쓴 4년간의 칼럼을 덧붙여 한국어판으로 나왔다. 쉽지 않은 작업을 해낸 편집진의 노고 탓에 우리 독자들은 피케티의 최근 생각까지 들여다볼 좋은 기회를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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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니 우선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의 온갖 파행을 지켜보면서도 신념을 갖춘 한 지식인이 심화되는 불평등을 ‘현실에서’ 개선하려는 치열한 일관성을 담았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불평등의 축소’라는 한 가지 측면에서만 ‘당파적’이다. 이 때문에 그는 우파인 사르코지와는 당연히 불화하며, 좌파인 올랑드 등과도 그다지 친하지 못하다. 이론의 선명함이란 늘 현실의 모호함과 미적댐을 혐오하니까 말이다.

조금 거칠게 요약하면 피케티는 급여, 보너스, 부동산, 이자, 투자, 배당, 상속 등 모든 종류의 재산에 대해 전 지구적으로 어떤 상한도 없는 누진적 세금(여기엔 건강보험, 국민연금, 실업급여 등을 위한 공적 분담금도 포함된다)을 일률적으로 적용해서 불평등을 완화하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현실적 수단으로 글로벌 공조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조세피난처나 조세덤핑 구역을 제거해 자산가들이 도피할 수 없게 하고, 돈이 돈을 벌지 못하도록 “스스로 수익을 창출해 내는 대규모 재산에 대해서는 세율을 높게 책정”하며, 부모 재산에 의지해 빈둥거리며 살아가지 못하도록 상속세를 강화하자고 제안한다. 이른바 “세금폭탄”을 통한 부의 공정한 재분배를 통해서만 오늘날의 암울한 세계를 희망찬 세상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현실을 무시한 채, 모든 것을, 한순간에, 즉시, 처리해 버리자는 주장은 아니다. 정책을 만들어, 방향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꾸준히, 운동해 가자고 이야기하면서 그 근거를 경제학적으로 제시할 뿐이다.

프랑스의 정치 경제적 상황을 배경으로 쓰였지만, 이 책에 나오는 몇몇 제안은 한국에서도 적극적으로 고민해 볼 강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경제위기 이후,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정책 등을 동원하는데 이는 저소득층 등의 잠재적 구매력을 떨어뜨려 오히려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 미국에서 1930년대 이후 반세기동안 증명됐듯이 최고소득에 적용하는 세율을 70% 이상 설정해도 경제의 정상 운영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 투자 유치를 위해 외국 자본에 면세 혜택을 주는 등 조세덤핑을 통한 국가발전 전략은 사실상 재앙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아일랜드 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등은 오늘날 한국에서도 충분히 숙고하고 토론할 만하다.

한편 소득에 따른 교육 불평등을 해소해 기회의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는 주장도 주목할 만하다. 사교육을 할 수 없는 저소득층 지역 학교에 더 많은 선생님을 배정해서 질 높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면 나중에 눈에 띌 정도로 뚜렷한 효과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사교육 공화국’ 한국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하나의 중요한 논점을 제공한다. 가령, 강남 3구 등 사교육 지역에 교육예산을 역비례로 배분하는 강력한 공교육 활성화 대책을 시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피케티의 신자본론’은 한 지식인이 현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는 데 머리를 보태는 과정을 무척이나 선명하게 보여준다. 불평등이 심화되는 데도 적극적으로 시정하려 하지 않는 세상에 대해 저자는 일갈한다. “법은 왜 부모에게 그들의 자녀를 금리생활자로 만들도록 강요하는가.” 이 사자후에 귀 기울일 때 한국 사회도 조금은 성숙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장은수 순천향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