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가요순위 프로그램의 ‘날개없는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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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내내 순위 프로그램이 있는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한 중견 가요기획사 대표의 토로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 바쁜 스케줄을 쪼개서 소화하기 바쁘고, 공신력 역시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월요일을 제외하면 매일 방송사 가요 순위가 발표된다. 화요일 방송되는 SBS MTV ‘더 쇼’를 시작으로 MBC뮤직 ‘쇼 챔피언’, Mnet ‘엠카운트다운’이 줄을 잇고, 주말로 접어들면 KBS 2TV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연이어 편성된다. 유력 그룹이 모든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면 한 주 만에 ‘6관왕’이 되고, 상을 나눠 가지면 한 주 사이 6팀이 서로 “내가 1위”라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촌극이 빚어진다. 게다가 가요계 내부적으로 “친한 기획사 소속 가수에게 1위를 준다”는 피해 의식이 팽배해 순위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이는 전체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위상 추락으로 이어진다. 또한 해외에서 K-팝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지만 국내에서 K-팝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대중의 외면을 받고 있다. 지상파 3사의 순위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2% 안팎. 10대들이 주요 시청자지만 정작 이들은 TV를 통해 본방송을 챙겨보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 가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굳이 순위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가요계 판도가 음반에서 음원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방송사 순위보다는 유력 음원사이트의 순위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크다. 게다가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절대적 홍보 수단이었던 방송 외에도 신곡 활동을 알릴 기회가 많아지며 방송사와 가수 간 주종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YG엔터테인먼트가 선보인 신인 아이돌 그룹 아이콘(사진)과 ‘엠카운트다운’의 충돌은 이런 관계 역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이콘은 ‘엠카운트다운’에 출연하지 않았고, ‘엠카운트다운’ 측은 “방송 활동을 해야 차트에 반영된다”며 아이콘을 차트에서 제외시켰다. 하지만 아이콘과 같은 소속사에 속한 그룹 빅뱅과 밴드 버스커버스커 등이 방송 활동 없이 이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오른 적이 있어 ‘엠카운트다운’의 궁색한 변명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획사 입장에서도 방송 출연이 마냥 달가운 건 아니다. 1회 출연하며 가수들이 받는 출연료는 30만 원 안팎. 멤버 수가 많아도 출연료는 같다. 예를 들어 5인조 아이돌 그룹의 경우 한 차례 방송에 출연시킬 때마다 헤어, 메이크업, 의상, 댄서비 등으로 투입되는 비용이 500만 원이 넘어 결국 매회 적자라는 의미다.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는 “무대에 올리는 족족 손해를 보지만 홍보 효과 및 방송사와의 관계 때문에 출연시킬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요즘은 순위 프로그램을 통한 홍보 효과가 예전만 못하고, 특정 방송사에만 출연하면 타사의 항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예 모든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기도 한다”고 전했다.

순위를 둘러싼 홍역은 가요 시장의 고질병이다. 최근 수면 위로 올라온 음원 사재기 논란의 본질 역시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한 과당 경쟁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앞서 방송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끊임없이 공정성 논란에 시달리다가 2010년을 전후해 폐지됐다가 부활하기도 했다. 순위제를 부활시킬 때만 해도 각 방송사들이 배점 원칙을 제시하며 공정성을 앞세웠지만 지금의 순위제 논란은 과거와 다를 바 없다.

SBS 예능국 관계자는 “순위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계속되며 방송사 내부에서도 순위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며 “방송 채널이 많아지고 다매체 시대에 발맞춰 K-팝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루트가 생기고 있는 만큼 순위를 기반으로 획일화된 순위 프로그램보다는 차별화된 기획과 연출을 통해 가요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