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노벨상과 知力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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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수 / 논설위원

올해 노벨상 시즌이 마무리됐다. 평화상뿐 아니라 과학과 문학·경제학 분야 노벨상도 지구촌 평화와 인류 고통 극복에 직접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는 점이 올해 노벨상의 뚜렷한 특징이다. 생리의학상은 열대 풍토병 치료제 개발로 제3세계 주민 등 연간 2억 명이 실명 위협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도움을 준 미국과 일본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문학상도 치열한 기록정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과 체르노빌의 참상을 널리 알린 여성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받았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이 상을 받기까지의 고투(苦鬪) 과정은 다양하지만, 인류 역사의 난제에 도전하면서 사유의 급전환으로 낡은 이론을 전복했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없다. 한국이 광복 70년을 맞는 올해까지 노벨 과학·경제학상 수상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는 탄식이 나오는 것은 우리가 궁극의 질문에 집요하게 파고드는 고등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너무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고질적인 횡령 비리로 연구비가 줄줄 새는 것도 문제다. 2009∼2013년 5년간 한국의 논문 피인용 횟수가 4.55회로 논문이 많이 인용되는 상위 50개국 중 32위에 그친다는 사실은 참담하다. 정부·민간을 합친 총 연구투자율이 세계 1위이면서도 노벨상에 근접하는 다양한 학자군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노벨상 수상자 양성소로 불리는 교토대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연구 풍토로 유명하다. 반면 한국 대학은 획일적인 학과, 동일한 커리큘럼 등에 얽매여 있어 다양성과 자율성이 떨어진다.

“노벨상은 수상자의 장례식 티켓이다. 노벨상을 받은 뒤에 뭔가 해낸 사람은 하나도 없다.” 194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시인 T S 엘리엇이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노벨상이 내적 동기가 되지 못하고 외적 보상에 그칠 것을 우려한 독설이다. 일본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이 유년기부터 다양한 서적을 탐독해온 교양인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유기화학자 오무라 사토시는 지난 20년 동안 책을 읽다 눈에 쏙쏙 들어오는 내용을 일기장에 꼼꼼하게 기록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와 고바야시 마코토, 줄기세포 연구로 생리의학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등은 모두 다양한 서적을 섭렵하는 다독가(多讀家)로 유명하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점차 국민의 독서량이 감소하자 국회의원 286명이 소속 정당을 초월한 초당파 모임인 ‘활자문화의원연맹’을 결성했다. 이들은 2005년 독서문화 진흥을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뼈대로 한 ‘문자·활자문화 진흥법’을 제정했다. ‘출판대국’ 일본의 저력이 기초과학 강국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미국 역시 20세기 공업 기반 국가 경쟁력으로 패권을 누렸다면, 21세기에는 세계 최강의 지식 국가로서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비전을 구축했다. 미국 상위권 고등학교와 대학의 커리큘럼을 소화하려면 상당한 양의 독서가 필요하다. 아인슈타인은 “교육의 목적은 타인의 주장에서 해방되도록 하는 데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독창적인 지력은 광범위한 독서에서 나온다. 노벨 과학상을 기대하려면 지력(知力)사회의 뿌리부터 튼튼하게 다져야 한다.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