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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5년 10월 14일(水)
무심코 흘려보낸 사소한 습관, 그 안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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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하안송 기자 song@munhwa.com

김범준의 과학 이야기 - ⑥ 개인 빅데이터

컴퓨터 앞에 있다 일어나 화장실에 가 앉는다. 둘이 함께하면 더 황당하겠지만, 어쨌든 참 쓸쓸한 공간이다. 재밌는 낙서 하나 안 보이는 빈 벽만 쳐다본다. 이럴 땐 역시 게임이 제격이다. 시작하면 오래 걸려 도중에 멈추기 어려운 게임보다는 화장실에 앉은 본연의 목적에 맞게 금방 끝나는 것이 좋다. 이럴 때면 혼자서 하는 카드게임(solitaire)을 하고는 했다. 한 판 마치는 데 길어야 2∼3분, 게다가 공짜. 카드게임을 하다 보니 궁금한 것들이 생긴다. 가끔 시간 나면 하는 이 게임에서 과연 내 실력이 과거보다 좋아졌을까.

내가 주로 이 게임을 하는 시간대는 언제고, 또 혹시 집중력이 좋아 하루 중 승률이 높은 시간대가 따로 있을까. 어떨 때는 여러 판을 연달아 짧은 시간 안에 끝낸 적도 있었는데 그냥 기분 탓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때보다 실력에 불이 붙어 연속 고득점을 하는 때가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 게임을 한 시간들을 모아 보면 게임 간의 시간간격(interevent time)의 확률분포함수는 어떤 꼴일까. 방금 달성한 고득점 신기록이 다음에 더 높은 득점으로 깨질 때까지의 시간간격(record breaking time)에 대해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별 게 다 궁금한 물리학자는 일단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다. 이길 때마다 화면의 스냅 사진을 찍어 파일로 저장한다.


틈틈이 근 1년을 모은 게임 화면 파일이 1500개가 넘었다. 이겼을 때만 저장했고 전체 승률이 33% 정도니 전체 판수는 무려 4500개가 넘는다. 참 많이도 했다. 한 판을 깰 때까지 걸린 평균 시간은 130초 정도였다. 그동안 이 게임에 투자한 시간의 총합은 얼마나 될까. 독자가 계산해 보시길. 너무 길어 쑥스러워 지면에 적지도 못하겠다. 나중에 연구 주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시간만 나면 게임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변명이 될 수 있기를.

한 학생의 도움을 받아 저장된 화면 이미지 파일에서 자동으로 숫자로 표시된 정보를 읽어 오는 프로그램을 사용해 보기도 했지만 오류가 많아 가장 믿을 수 있는 방법을 이용해 화면의 정보를 컴퓨터 텍스트 파일로 변환했다. 그 방법은 바로 병렬 프로세싱(parallel processing)이 가능한 ‘대학원생들에게 부탁하기’였다. 이 자리를 빌려 궁금한 것 많은 지도교수를 둔 착한 대학원생들에게 감사. 사실 아직 마무리하지 않은 이 연구는 학계에서도 관심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의 바라바시는 2005년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한 시간 간격을 모아 분석해 보니 자연현상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보인 바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자연에서 벌어지는 마구잡이(random) 사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불안정한 상태의 원자에서 입자가 튀어나오는 방사능 붕괴(radioactive decay)다. 입자가 튀어나온 시간을 모아서 연속한 두 붕괴 사건 사이의 시간간격을 구해 보면 그 확률분포가 바로 푸아송 분포(Poisson distribution)다. 시간간격이 다 고만고만하게 평균값 주변에 몰려 있는 마구잡이 분포라고 이해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배차간격이 정해진 버스가 정말로 정류장에 매번 도착하는 시간을 모아 시간간격 분포를 구해도 푸아송 분포와 가깝다. 바라바시는 논문에서 사람 동역학(human dynamics)이라는 용어를 제안하면서, 사람들이 이메일을 받은 시간(t1)과 그 메일에 답장을 보낸 시간(t2)을 모아, 둘 사이의 시간간격 t(=t2-t1)의 확률분포를 구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방사능 붕괴나 버스 도착과는 확연히 다른 멱함수(power-law function, P(t)∼t-α)꼴이었다.

그 의미만 줄여 설명하면, 시간간격 대부분은 짧아서 우리는 그때그때 보자마자 많은 이메일에 답하지만, 어떤 이메일에는 정말로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답장을 보낸다는 뜻이다. 이처럼 사람의 동역학은 자연의 동역학과는 다르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카카오톡 같은 매체에 글을 남길 때 짧은 시간 간격으로 많은 글을 올리기도 하지만(이름하여 ‘폭풍댓글’ ‘폭풍카톡’ 등), 가끔은 아주 긴 시간 간격을 두고 글을 올린다. 이런 흥미로운 연구 결과는 실제 이용되기도 한다. 인터넷에 어떤 사용자가 글을 올린 시간을 모아 분석하면 글을 올린 사용자가 살아 숨 쉬는 실제의 사람인지, 아니면 자동화된 컴퓨터 프로그램인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필자가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 각고의 노력을 통해 모은 혼자만의 ‘나 홀로 빅데이터’ 분석에 참고한 다른 연구도 있다. 그중 하나는 팀 스포츠 경기에서 득점한 시간들을 모아서 분석한 메릿과 클로셋의 2013년 논문이다. 이 연구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해 경기에서 일어나는 득점이라는 사건이 서로 독립적인 푸아송 과정을 따른다는 것을 보였다. 미국 농구에는 소위 ‘뜨거운 손(hot hands)’이라는 말이 있다. 한번 득점을 하면 그 후에도 계속 득점을 하게 되는 상황을 ‘불붙은 손’으로 비유한 말이다. 이 논문은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던 ‘뜨거운 손’이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 언론의 주목을 끈 바 있다. 또 다른 연구주제인 ‘신기록 통계(record statistics)’는 여러 학문 분야에서도 관심이 있다. 여기서는 스포츠 경기의 기록 경신, 그리고 주식시장에서 한 주식의 사상 최고가 경신 등이 다뤄진다. 여름이면 가끔 듣는 사상 최고기온 기록 경신도 이 분야의 연구 방법을 적용하면 지구온난화에 대한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필자의 카드게임 결과를 분석해 몇 가지 결과를 얻었다. 게임을 하는 횟수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조금씩 줄어들다가 토요일에 오르기 시작해 일요일에 최고가 된다. 약간은 안심이 되는 결과다. 어쨌든 필자는 연구와 교육에 매진해야 하는 주중에는 이 게임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니까. 또 필자가 일하는 패턴은 ‘월화수목금금금’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하루 중 언제 게임을 많이 했는지도 살펴봤다. 연구실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오전 9시에서 오후 7시 사이보다는 그 이후 시간에 게임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오전 7시에서 9시 사이에도 상당한 숫자가 있다(혹시 변비?). 바라바시의 논문을 따라 시간간격 분포를 구해 보니 방사능 붕괴의 푸아송 분포와는 확연히 달랐다. 1년을 모았어도 충분하지 않아 그 분포함수의 꼴을 명확히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멱함수꼴과 많이 다르지 않아 역시 필자도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메릿과 클로셋이 살펴봤던 것처럼 필자가 게임 한 판을 깬 시간들을 모아서 시간에 따른 상관관계(autocorrelation)도 구해 봤다. 결과는 그 논문과 마찬가지로 이번 판에 얻은 점수가 바로 앞 판에 얻은 점수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즉, ‘불붙은 손’은 미국 농구뿐 아니라 필자에게도 없다. 1년의 기간 동안 필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약간의 실력 향상이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실력 향상은 앞 반년에 주로 이뤄졌고, 뒤로 갈수록 거의 없었다. 판을 깨는 데 걸리는 시간 신기록만 모아서 그래프로 그려 보니 신기록이 생기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도 볼 수 있었다(판을 깨는 데 걸린 시간 신기록은 판수에 대해서 로그함수의 꼴로 천천히 줄어든다). 이는 기존 올림픽 육상종목의 신기록 경신도 마찬가지다.

‘빅데이터’라는 말이 언론, 방송에 자주 오르내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수치화된 데이터가 발생하고 자동 수집돼 분석, 활용되고 있다. 출근길 언제 어디서 몇 번 버스를 탔으며 어디로 이동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지갑 속 교통카드로부터 끊임없이 발생하고, 손에 들고 있는 휴대전화는 위치가 파악돼 통신망에 효율적으로 연결된다. 대형마트는 과거 구입한 상품을 분석해 개인 맞춤형 할인쿠폰을 발급하고, 새로 나온 책 중 내가 관심을 가질 만한 책을 온라인 서점은 콕 집어 알려 준다. 어떨 때는 무섭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정해진 방향을 거꾸로 돌리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적정한 규제의 수준에 많은 사람의 합의를 이끌어 내고,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이용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뭐라도 잘만 많이 모이면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통계적인 결과는 점점 더 정확해진다. 한 나라의 중요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서나, 한 기업이 다음 주력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나 잘 알고 잘 쓰려면 일단 많이 모으고 볼 일이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 해본 이런 연구라도 굳이 더 생각해 보면 응용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게임을 만드는 회사는 한 판을 끝내는 적정시간을 파악해 게임 난이도의 최적화에 반영할 수 있고, 공짜 게임이라선지 자꾸 등장하는 광고의 내용을 시간대에 맞춰 변경할 수도 있다.

이런 응용 가능성이 아니라도, 어쨌든 필자는 ‘우리’를 이루는 한 개인인 ‘나’에 대해 조금은 더 잘 이해하게 됐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알아야 쓸 수도 있다. 앎이 꼭 쓰기 위해서일 필요는 없겠지만. (문화일보 9월 16일자 5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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