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풍만한 여자? 콩깍지 씌워 굴복시키는 ‘글래머’ 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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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포스트렐의 ‘글래머의 힘’ 출간

인간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감각은 무엇일까?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중에서 보자면 단연 시각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엘버트 메르비안은 ‘메르비안의 법칙’으로 설명했다. 설득의 방법으로 시각적 요소가 무려 55%를 차지했고, 목소리의 억양이나 속도 같은 청각적 요소는 38%로 조사됐다. 반면 언어적 요소는 고작 7%에 불과했다.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버지니아 포스트렐의 저서 ‘글래머의 힘’은 이 같은 시각적 중요성을 ‘글래머’라는 주제어로 살펴본다. 부제인 ‘시각적 설득의 기술’이 말해주듯이 비언어적 효과가 큰 이유는 과연 무엇이며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노력들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먼저 용어 ‘글래머’에 대한 오해부터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글래머’라고 하면 한국인은 대개 ‘가슴이 풍만한 여자’ 정도를 쉽게 떠올린다. 하지만 이 용어는 ‘풍만함’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여성’을 지칭하는 말도 아니다. 사전적으로 보면 화려함과 매력, 부티, 귀티 등을 뜻하는 중의적 단어라는 것.

저자는 이 단어가 스코틀랜드에서 ‘마법의 힘’이라는 뜻으로 예전부터 쓰여왔다고 말한다. 이를 영국에서 맨처음 사용한 사람은 19세기 초의 역사소설가 월터 스콧. 그는 풋내기를 기사로 보이게 하고 지하 감옥 벽에 늘어진 거미줄이 대저택 연회장에 걸린 벽걸이 자수처럼 보이게 하는 마법의 힘이 바로 글래머라고 규정했다는 것.

이 개념은 이후 마법과는 무관하나 비슷한 의미로 확장됐다. 1902년 간행된 웹스터 사전에는 ‘사물을 실제 모습과 달라 보이게 만드는 아지랑이 효과’, ‘어떤 대상을 실제보다 훨씬 크거나 좋아 보이게 하는 연상 작용 혹은 인공적 효과’ 등의 의미가 더해졌다.

한 마디로 글래머란 시각으로 설득하는 수사학이다. 무언의 매력으로 보는 이를 유혹하고 설득하며 굴복시키는 그야말로 일종의 마법인 셈.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인데 얼른 말하면 눈에 콩깍지가 씌이게 하는 비법이다.

글래머는 영화와 드라마, 배우와 가수, 사진과 건축, 디자인과 패션뿐 아니라 종교, 전쟁, 테러, 정치, 캠페인, 스포츠 등 온갖 분야에서 두루 활용된다. ‘뛰어난 사진작가는 뛰어난 거짓말쟁이’라는 말처럼 대상에 환상을 씌우고, 거짓을 꾸며내고, 편집된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려 하는 것.

저자는 글래머의 특징 중 하나로 비상과 변신, 도피의 꿈을 자극하고 강화함을 든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제트기, 질주하는 컨버터블 승용차, 패션쇼 무대를 활보하는 모델처럼 이상을 연결시키는 상징물에 관심을 팔게 한다는 것.

어려운 일을 쉬워 보이게 하는 것도 글래머의 특징에 속한다. 절대로 발을 조일 것 같지 않은 하이힐과 교통 정체에 결코 시달릴 것 같지 않은 스포츠카에서 보듯이 치러야 할 대가를 감쪽같이 숨기면서 대상자의 눈길을 붙잡는다.

신비감도 글래머의 마력이다. 무언가 가려졌다 싶을 때 더 주목하게 되는 효과. 예컨대 침묵 속에 선글라스를 쓰면 현실과 열망 사이의 공백이 넓어지면서 딴 인물로 변신하게 되고 궁금증과 함께 외모가 신비한 포장 속에 돋보이게 된다.

글래머가 테러나 전쟁, 선거 등 군사, 정치적 측면에서도 괴력을 발휘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테러 행위의 경우 그 원천이 분노나 증오가 아닌 상상력인 경우가 많다는 것. 종교적 순교나 지하드도 이런 글래머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영화, 음악, 패션뿐 아니라 스포츠, 관광, 주식시장에서도 종종 글래머가 마케팅 수단으로 쓰인다. 부동산 광고의 경우 ‘새 집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인생’을 연상시키는 방식 등을 이용해 고객들을 끌어들인다는 것.

그렇다고 글래머를 단순한 속임수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욕망과 변신 추구라는 인간 심리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글래머에 의지해 현재보다 더 만족스럽고 질적으로 향상된 삶을 향해 전진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만족감과 불안감 사이에서 미묘한 곡예를 하는 게 바로 글래머의 정체인 셈이다.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480쪽. 2만5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