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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5년 10월 16일(金)
닮고 싶고…갖고 싶고… ‘욕망’ 부르는 글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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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맨 같은 슈퍼 히어로, 영화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그레타 가르보(왼쪽부터) 등 스타들은 우리를 매혹시켜 굴복시키는 마법의 힘, 글래머를 지녔다. 열린책들 제공

글래머의 힘 / 버지니아 포스트렐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우리는 매일매일 많은 것들에 매혹된다. 아름다운 여성, 멋진 남성, 영웅적인 군인, 뛰어난 스포츠맨, 압도적인 풍광, 영화 속 슈퍼 히어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고층빌딩, 때로는 성능이 뛰어난 매끈한 기기에 매혹당한다. 어떤 것에, 또 누구에게 매혹되는지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순 없지만 같은 대상이라도 시대에 따라 ‘매혹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미지를 사고팔고, 생산·소비하는 시대이니 이미지에 따라 매혹의 정도도 다르다.

미국 칼럼니스트 버지니아 포스트렐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개념(사상)이든, 실제 모습이든 조작된 이미지든, 우리를 매혹시켜 설득하고 굴복시키고 때로는 행동까지 이끌어 내는 마법의 힘, ‘글래머(glamour)’에 주목한다. 그는 2004년 ‘글래머에 대해서’라는 주제로 테드 강연을 해 화제가 됐고, 그 뒤 줄곧 글래머에 대한 강의를 해온 ‘글래머’ 전문가이다.

‘글래머’라면 우리는 흔히 풍만한 성적 매력이 있는 여성을 떠올린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글래머’는 풍만한 여성과는 아무 상관 없다. 딱히 여성을 칭하는 것도 아니다. 사전에서 글래머라는 단어를 찾으면 부와 신분에 따른 화려함, 매력, 부티, 귀티로 풀이돼 있다. 정확하게 대응하는 우리말이 없어 다소 모호하게 다가오지만 이는 어떤 대상을 멋있게 보이도록 하는 매력, 아우라, 환상, 신비감, 멋진 이미지 등을 아우르는 말이다. 대상 위에 덧씌운 금칠처럼 대상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것. 이는 존재의 변치 않는 속성이 아니라 사람과 대상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며 언어가 아닌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설득하는 비언어적 수사학이다.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동경과 열망을 일으켜 행동하게 설득하는 것이 글래머의 작용 메커니즘이다. 이 메커니즘은 영화, 드라마, 건축, 디자인, 패션뿐 아니라 종교, 전쟁, 테러, 정치 캠페인, 스포츠, 테크놀로지, 관광, 구인·구직과 주식시장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발생한다.

책은 글래머 작용이 근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시작돼 1930년대 정점을 올랐다가 지금은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20세기의 대표적인 ‘글래머’ 인사라면 그레이스 켈리, 재클린 케네디이다. 이들이야 언제나 품위와 품격, 세련된 아름다움의 상징이었기에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다이애나 왕세자비, 오드리 헵번에서 앤젤리나 졸리까지 스크린 스타들도 당연한 글래머들이다.

글래머를 일으키는 요소는 대략 3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는 비상, 변신, 도피의 꿈을 일으켜야 한다. ‘공들이지 않은 듯한 품위’는 두 번째 요소다. 예를 들어 발레리나의 사진을 찍을 때, 그가 최고 자리에 이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고통의 흔적을 보여서는 안 된다. 환상을 깨트릴 수 있는 현실적 노고, 고통, 역경, 약점, 엔트로피는 숨겨야 한다. 따라서 글래머는 인위적이고 연극적인 품위이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감과 신비감도 필요하다. 익숙해지면 글래머는 공감으로 바뀌고, 대상을 알게 되면 냉소와 실망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시선이 비스듬히 위로 향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008년 대선 포스터는 유권자들에게 갈망을 일으키며 고전적 의미의 글래머를 뿜는다. 1927년 뉴욕에서 파리까지 단독 비행에 성공한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는 미국이 지향한 핵심 가치관을 구현한 인물로 환멸감에 빠져 퇴폐주의로 치닫던 재즈 시대의 우울을 상쇄하는 글래머를 발휘했다. 평범한 존재에서 특별한 존재로 변하는 슈퍼맨과 스파이더맨 등 슈퍼 히어로는 누구나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변신 욕망의 글래머를 드러낸다. 사람뿐 아니라 흡연, 선탠, 풍력발전기 등도 글래머 작용을 일으킨다. 20세기 들어 노동 공간이 실내로 들어와 하얀 피부가 노동자와 등식이 되면서 구릿빛 피부는 부의 표식이자, 자유로움의 상징이 됐기 때문이다. 제임스 딘의 담배는 반항,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담배는 유혹 그 자체로 흡연은 한동안 예술과 성적 매력이라는 기호 덩어리였다. 저자는 테러마저도 글래머로 설명한다. “자살 폭탄 테러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죽음에 대한 매혹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무의미하게 자신을 파괴하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면서도 상상력에 이끌려 영웅적 행동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는 살만 루슈디의 말을 인용하며 테러 행위의 원천도 분노나 증오가 아니라 상상력이 만든 글래머라고 풀이했다.

글래머라는 익숙지 않은 단어를 내세웠지만 이는 이미지 작용과 조작, 의미의 발생, 상대에 대한 개인과 사회적 욕망의 투사 같은 기존 분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점이라면 저자는 글래머에 대해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도화된 자본주의·상업화 시대, 넘쳐나는 조작된 이미지들의 홍수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라는 충고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글래머는 보기 싫고, 혐오스럽고, 삶의 어두운 곳을 드러내는 이미지는 모두 삭제하고 시각적으로 보기 좋고 매끄러운 이미지, 그래서 일상의 흔적마저 말끔히 지운 연출된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부정성은 삭제되고 오직 긍정성만 드러난 매혹. 상품을 팔아야 하는 기업들,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에겐 글래머 메커니즘이 도움이 되겠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 메커니즘을 비틀어 봐야 한다. 분명한 건 삶에는 기쁨과 함께 슬픔도 있다는 것. 하지만 우리는 삶의 양면성을 지우고, 오직 아름답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내세운 글래머에 오늘도 매혹되고 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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