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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5년 10월 16일(金)
힐의 ‘33년 외교인생’… 북핵 6자회담 전모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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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힐 회고록:미국 외교의 최전선 / 크리스토퍼 힐 지음, 이미숙 옮김 / 메디치

우리에게 낯익은 얼굴이자 이름인 크리스토퍼 힐. 시사에 큰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과거 ‘6자회담’ 등으로 TV에 자주 등장했던 인물임을 알 것이다.

1952년생인 힐은 한국(2004∼2005)을 비롯해 이라크 등 4개국의 대사직을 역임한 미국의 직업외교관이다.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로 있으면서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로 9·19 공동성명(2005)을 끌어낸 주역이다. 이 성과는 나중에 북한의 핵실험으로 무효가 됐지만, 북핵 문제와 관련해 가장 진전된 합의였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이 회고록은 크리스토퍼 힐의 33년 외교관 생활의 총결산이자, 세계의 조정자로서 ‘슈퍼파워’ 미국 외교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또 미국의 외교관이 어떻게 키워지고, 어떤 자질을 필요로 하는 인물인지 배울 수 있다. 보스니아 내전을 끝낸 데이턴평화협상과 북핵회담 등에서 인정받은 힐의 ‘협상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외교관의 자질일 것이다. 그는 8세 때 외교관인 아버지로부터 “무엇이 안될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으니, 그 원인을 찾아야지 힘으로 밀어붙이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실용적 해법을 찾는 협상가로 힐이 성장하는데 신조가 된 가르침이다.

관심을 끄는 것은 북핵협상 과정이다. 힐은 2005년 2월부터 북핵 이슈에 집중해 거의 4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을 40여 차례 방문했다. 평양도 몇 차례 방문하는데, 2007년 11월 방문 때 그는 부시 대통령의 서신을 전달하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자 했다. 그런데 북측인사들은 “우리 지도자 동지는 오늘 평양에 계시지 않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힐은 “더 기다리겠다”, “지도자 동지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며 버텼지만, 북한 외무상에 서신을 전달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힐은 북핵협상 진전의 상징이었던 2008년 북한의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는 자신의 아이디어였다고 적고 있다. 그는 “그 아이디어는 내가 김계관(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에게 처음 제시한 것”이라면서 김계관은 당시 조심스러워 했다고 한다. 결국, 중국 측 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에게 재차 냉각탑 폭파를 제안했고, 우다웨이가 북한을 설득하겠다고 나서며 성사될 수 있었다.

책에는 6자회담의 전모가 최초로 공개돼 외교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에 그리 도움이 안 되는 인물로 인식됐다’는 등 당시 미국 정부의 분위기를 전한다.

미 외교에서 협상파에 속한 힐은 ‘네오콘’으로 분류되는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무장관이 2004년 “한국 주둔 미군은 북한의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대남도발에 대비해 밧줄에 묶인 염소처럼 전통적인 임무를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전략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해 ‘미군이 한국인의 동의 없이 중국과 전쟁을 계획하는데 한국을 전쟁터로 삼으려는 구도 아니냐는 비판을 받게 됐다’며 럼즈펠드를 비난했다. 힐은 국무부·국방부 등의 네오콘과의 갈등도 상세하게 기록, 책이 나오자 미국에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엄주엽 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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