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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5년 10월 16일(金)
나치 狂氣는 도덕적 타락 아닌 ‘프레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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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 대량학살 등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광기는 사유의 부재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결과라고 한다. 사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문화일보 자료사진

나치의 병사들 / 죙케 나이첼·하랄트 벨처 공저, 김태희 옮김 / 민음사

철모와 방독면을 쓴 군인의 사진을 보고 좀 뜨악했다. 표지 사진 탓인지 읽기도 전에 무시무시해 보였다. 예감은 적중하여 읽는 내내 외면하고 싶은 대목들과 계속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병사들이 유대인을 학살하고 그들의 옷을 벗겨 재활용했을 뿐 아니라 시체 위에 냄새가 나지 말라고 염화석회를 뿌렸다든가 하는 등의 이야기가 날것 그대로 소개된다.

“그들은(유대인) 내의만 남기고 옷을 몽땅 벗었고, 여자들도 속옷만 빼고 옷을 벗었어요. 그다음에 게슈타포가 총질을 했어요. 탄창을 장전하고 오른쪽, 왼쪽으로 갈기면 끝이에요! 아직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는 아무 상관없어요. 어디에 맞았는지도 상관없어요. 총을 쏘면 뒤로 넘어가서 구덩이 안으로 떨어지면 되는 거죠. 그러면 다음 사람들이 재와 염화석회를 가지고 와서 저 아래 쓰러진 사람들에게 뿌리고 그 앞에 다시 서는 거죠. 그렇게 계속 진행됐어요.”(187쪽)

대체 무슨 책인가 싶을 것이다. 2001년 독일 현대사를 연구하던 나이첼은 영국 국립보전기록관에서 방대한 양의 도청 기록 문서를 찾아내고, 사회심리학자인 벨처와 함께 연구를 시작한다. 그 연구 기록이 바로 이 책 ‘나치의 병사들’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미국은 포로로 잡은 독일 병사들의 대화를 도청해 정보를 얻고자 문서로 기록했다. 나이첼과 벨처는 바로 그 기록을 토대로 독일군이 잔혹한 전쟁을 치른 이유는 무엇인지, 대학살을 가능하게 한 폭력의 실체는 무엇인지를 살핀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된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을 두고 많은 연구와 해석이 이뤄졌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후 ‘악의 평범성’이란 유명한 정의를 내렸다. 달리와 라타네는 ‘사회적 신호와 방관자 효과’라는 심리 실험을 통해 생존보다 사회적 대열이 더 중요하며 집단적 위기 상황에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나치의 병사들’은 이런 연구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독일 병사들의 가감 없는 속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훨씬 충격적이다. 또 그간의 연구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독일 병사의 광기를 ‘프레임’으로 분석한다. 심리학적 용어인 프레임은 강요당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존재하는 한계 혹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뜻한다. 불이 나서 죽을 위험에 처했으면서도 사람들은 옷을 챙겨 있고 뛰쳐나온다. 생존보다 문화적 수치심이 더 괴롭고 견디기 어렵다는 뜻이다.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이다. 말도 안 되는 듯 보이는 한계, 이것이 바로 우리 안의 프레임이다.

히틀러 집권 치하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 기간을 새롭고 좋은 때, 공동체 의식이 있었던 시기, 적어도 러시아 침공 이전까지는 호시절이었다고 기억한다. 히틀러의 이념이 단순한 선동을 넘어 독일인들에게 새로운 프레임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타자로서 유대인을 박해하고 약탈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공동체 의식이 공고했고 정의, 이웃 사랑 등 도덕성과 사회성에도 변함이 없었다. 따라서 광기의 정체는 독일인들의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도덕에 대한 프레임의 변화에 있다. 나치 독일은 한 사회의 기준선이 얼마나 쉽게 변할 수 있는지를 끔찍하리만치 정직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 역시 예외일 수 없음을 섬뜩하게 경고한다.

병사들의 대화는 당시 프레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여러 가지로 유추하도록 이끈다. 첫째는 전쟁 프레임이다. 군인이라는 프레임 안에서는 소속감과 새로운 가치가 생긴다. 하지만 독일 병사들은 폭력과 학살을 주어진 임무가 아니라 쾌감의 대상으로까지 여겼다. “폭탄 투하가 내게는 욕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말 짜릿합니다. 기분이 상쾌하지요. 총살만큼이나 기분 좋아요.”(91쪽) 한나 아렌트는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누구나 악을 저지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병사들의 육성에서 알 수 있듯 회의적이었느냐 열정적이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프레임 안에서 관객이나 방관자는 없었다.

1943년 이후 독일의 패색이 짙어졌지만 친위대 소장 쿠르트 마이어는 “이제 제국 전체가 다시 몰락하고 있지만. (히틀러) 총통은 독일에서 엄청나게 많은 걸 다시 깨워 냈지요. 독일 국민에게 다시 자신감을 준 겁니다”라고 말한다. 독일 국민은 히틀러와 국가사회주의 프로젝트를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느꼈다. 독일인들은 이런 자신의 믿음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고 히틀러에 대한 신앙은 그 실체가 드러난 후에도 좀처럼 깨질 수 없었다. 결국 패전이 분명해 보이지만 싸움은 멈출 수 없었고 미군 폭격기를 들이받아 격추하는 자살 비행까지 시도했다. 히틀러 프레임에 갇힌 것이다.

2007년 바그다드에서 미군은 위험에 처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민간인을 공격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저자들은 이를 전쟁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벌어지는 필연으로 간주한다. 인간에게 폭력은 일탈이 아니라 역할을 맡으면 수행하는 임무다. 고로 인간 공동체는 언제든 폭력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이런 프레임에 갇히지 않도록 주의하고, 비판의식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독일 병사들의 광기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며 언제 어디서든 프레임 안에서 인간은 괴물이 될 수 있다.

한미화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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