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反기업 교과서’ 시정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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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직 / 편집국 부국장

조태오. 누적관객 1300만 명을 돌파하며 질주하고 있는 영화 ‘베테랑’에 나오는 재벌 3세다. 마약 파티를 즐기며 임신시킨 여배우를 폭행하고, 1인 시위를 하는 트럭기사를 사무실로 끌고 가 흠씬 두들겨 패고는 이른바 맷값으로 수표를 쥐어 주는 ‘돈이면 뭐든 다 해결된다’고 믿는 자다. 최근 인기리에 막을 내린 TV 드라마 ‘용팔이’에 비친 재벌가 모습 역시 생명보다도 돈을 우선시한다. 이 모두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반(反)기업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이지만,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면서 언제부터인가 대중문화 콘텐츠에 등장하는 기업인의 모습은 ‘공공의 적’이 돼 버렸다.

더욱이 학교 교과서에 반영된 기업인들의 모습은 더욱 참담하다. 교과서는 앞으로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미래세대의 인식과 가치관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데다, 우리 사회가 기업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규정하는지를 가늠케 하는 바로미터란 점에서 TV·영화 등 대중문화 매체와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먼저, 고교 한국사교과서에 게재돼 있는 기업과 기업인의 모습을 들여다보자. ‘귀속재산의 불하, 원조경제의 수혜 등을 바탕으로 재벌이라 불리는 독점자본이 성장했다’(지학사) ‘정부 주도의 성장 정책과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중화학공업의 특성상 재벌에 각종 특혜가 주어졌으며, 이로 인해 정경유착의 문제가 발생했다’(천재교육) ‘대표적인 기업인들은 각종 혜택을 악용하여 횡령과 비자금 조성을 일삼고, 세금을 포탈하거나 수출 대금을 해외로 빼돌렸다’(미래엔)… 한국경제 산업화 과정에서의 기업(인) 역할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인 언급뿐이다. ‘정부 주도의 성장 정책과 기업인의 노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는 언급이 있기는 하지만, 곧이어 나오는 ‘정경유착’ ‘특혜’ ‘경제독점 ’‘빈부격차 확대’ 등의 내용에 파묻혀 버린다. 기업인 실명이 언급된 건 8종 교과서 중 5종에 언급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유일하다. 그나마 경제성장과 관련된 단원이 아니라 남북관계를 다룬 ‘소떼 방북’ 부분에 나온다.

교과서상의 기업(인) 폄훼는 한국사교과서뿐만 아니라 고교 경제교과서도 마찬가지다. 명색이 경제교과서인 데도 경제발전에 기여한 기업인 실명 언급은 일절 없다. 경제교과서 대부분은 기업을 환경오염, 독점폐해 문제를 야기하는 ‘가해자’로 묘사하면서 노동자는 보호해야 할 ‘피해자’로 대비하고 있다. 고교 한국사·경제교과서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기업(인)들이 끌고 온 한국경제가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온 게 기적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과연 그런가. 한국경제는 6·25전쟁 직후인 1953년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 국내총생산(GDP) 13억 달러에서 지난해 소득은 2만8180달러로 420배, GDP는 1조4100억 달러로 1085배 늘었다. 전쟁으로 초토화된 최빈국에서 맨주먹으로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을 일궜다. 선진국들이 200년 이상에 걸쳐 이뤄온 걸 60여 년 만에 초고속으로 해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를 ‘아시아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난 기적(Asia’s Latest Miracle)’이라고 평가했다. 그 중심에 기업인들의 땀이 있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원동력은 기업인들의 불굴의 도전이었다. 물론 폐허 위에서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기업의 그릇된 관행, 기업인의 일탈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렇더라도 기업들의 공(功)은 외면하고 과(過)는 부풀리는 건 정도가 아니다. 더욱이 교과서 집필과정에 ‘산업화 세력이 민주화 세력을 앞서는 건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의 편향까지 가세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미국 고교생들은 존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 등 전설적인 미국 기업인들이 일군 성공신화를 교과서를 통해 생생히 배우고 있다. 장기침체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가 제2의 경제 기적을 일구기 위해 절실히 요구되는 건 불굴의 기업가 정신 회복이다. 미국처럼 한국의 학생들도 정주영의 도전정신과 이병철의 성공신화를 교과서에서 배워야 한다. 교과서에 덕지덕지 끼어있는 이념적 편향을 모두 걷어내고 자랑스러운 ‘땀의 역사’도 교과서에 함께 실어야 한다. 친(親)기업은 언감생심이다. 반(反)기업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가르치자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성장과 발전을 얘기하는 건 연목구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