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中-日 ‘스파이 갈등’… 양국 침묵속 의혹 확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오른쪽)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 9월 30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인 남성 2명이 중국 당국에 구속됐다고 밝힌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뉴시스

中, 일본인 체포 ‘시한폭탄’

지난 5∼6월 사이 중국에 체류 중이던 일본인들이 스파이 혐의로 잇따라 구속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일 간에 막후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국과 일본 당국은 이 사안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어 의혹은 더욱 짙어져만 가고 있다. 해상 영유권이나 역사인식 문제 등으로 양국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전말이 오리무중인 이번 사안이 또 하나의 시한 폭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오는 11월 초 열릴 전망인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3일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 현재까지 중국 당국이 스파이 혐의로 체포, 구속한 일본인은 총 4명이다. 구속된 일본인들의 신상은 일본 내에서조차도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대략적인 나이와 거주지만 알려진 상태다. 중·일 간 민감한 현안들이 산재해 있는 가운데 ‘스파이 사태’까지 벌어질 경우 양국 관계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 사안에 대해 양국이 갈등을 표면화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관측될 뿐이다.

지난 9월 30일 일본과 중국 당국은 거의 동시에 일본인 남성 2명이 중국에서 스파이 혐의로 구속됐다고 발표했다. 일본 아이치(愛知)현 출신의 51세 남성은 중국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시의 군사시설 주변에서 5월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성은 일본 법무성 산하의 정보기관인 공안조사청의 의뢰로 중국 동향을 조사 중이었다는 혐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역시 5월에 체포된 55세 남성은 탈북자 출신으로 일본 국적을 갖고 있으며, 공안조사청의 의뢰로 활동하다 북·중 접경지대인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주변에서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두 남성의 구속 소식 이후에도 중국에서 일본인이 스파이 혐의로 구속됐다는 소식은 계속 이어졌다. 11일에는 중국 상하이(上海)에 체류 중이던 50대 일본인 여성이 지난 6월 스파이 혐의로 구속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베이징(北京)에서도 전직 항공사 직원이던 60대 남성 일본인이 같은 달 체포, 구속됐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앞서 중국 당국은 2010년 9월 일본의 한 건설회사 직원 4명을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시에서 군사관리구역에 허가 없이 침입해 불법 촬영을 한 혐의로 구속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일·중 간 교섭을 통해 구속 이후 20일 이내에 4명 모두 석방됐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이번에 구속된 사람들은 수개월에 걸쳐 구속돼 있어 중국 측이 사태를 중히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에 일본인들을 구속한 중국 기관이 치안·유지 담당인 공안이 아니라 정부의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라는 점에서 일본 언론들은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국가안전부는 지난해 11월 중국에서 시행된 ‘반(反)스파이법’에 따라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속된 4명의 일본인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일체 함구하고 있으며, ‘정부는 스파이 행위를 의뢰하거나 관여한 바가 없다’는 해명만 내놓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9월 30일 기자회견에서 “개별 사안에 대해 답하는 것은 삼가고자 한다”며 이들의 구속에 대한 구체적 사실 관계 확인을 피하면서도 “일본인의 해외에서의 안부에 대해 정부는 전력을 다해 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가 관방장관은 또 이들의 스파이 행위 여부와 정부 관련 의혹에 대해 “일본은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중국 당국도 일본인 구속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며 ‘조용히’ 처리하는 분위기다. 12일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기관이 법에 따라 관련 안건을 조사 중에 있다고 알고 있다”며 “(일본인 구속자 수 등) 상황을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자국민이 장기간 중국 당국에 의해 억류되고 있음에도 전후 사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일본 언론과 국민들은 각종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해 초 중국인 1명이 일본에서 체포된 것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산케이(産經)신문에 따르면 올해 초 오사카(大阪)에서 무역업체를 운영하는 중국인 사업가가 군용 기술을 중국군에 넘긴 혐의로 체포됐다. 따라서 중국도 반스파이법과 국가안전부를 동원해 이에 대한 보복조치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중·일 양국 정상은 오는 11월쯤 서울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조우할 예정이다. 일본의 시사잡지 슈칸아사히(週刊朝日)는 “중국이 일본 스파이를 연달아 잡아들이는 것은 중·일 관계에 있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직면한 새로운 난제”라고 지적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베이징=박세영 특파원 g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