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올 쌀농사 풍년… 수확기 수급 안정 대책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가을 추수철 쌀 풍년 소식이 들리지만 들녘 노랗게 익어가는 벼를 보는 농민의 마음은 수심이 그득하다. 소비가 크게 줄어 쌀이 남아도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당장 가격 하락을 걱정해야 하는 정부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정부, 20만 t 추가‘시장격리’… 올해 총 59만 t 매입
가공 · 주정용 37만 t → 61만 t… 사료화 추진도 고려

가을 들녘 벼가 노랗게 익어 바람에 넘실댄다. 올해 가뭄 등 불리했던 조건에도 농부의 땀방울 덕에 올해 쌀농사는 풍년이 예상된다. 1960~1970년대만 해도 추수철 풍년 소식이면 들녘 잔치라도 벌어졌을 풍경이다. 그런데 2015년 오늘을 살아가는 농부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익어가는 벼를 보며 절로 한숨이 나오는 게 농부의 마음이다. 소비가 크게 줄어 쌀이 남아도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당장 가격 하락을 걱정해야 하는 정부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쌀농사를 줄이는 것도 방안이지만 ‘식량 안보’가 문제다. 이에 수확기 쌀 수급과 가격 안정을 위해 담당 부서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6일 ‘2015년산 쌀 20만t 시장 격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수확기 쌀 수급 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격리라는 말 그대로 시장에 나오는 쌀을 줄여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일단 농심(農心)은 잡았지만 중·장기 대책은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쌀 문제를 과연 어떻게 할 것인지, 주요 문제들을 짚어 봤다.

1 올해 쌀 수급 상황은

지난 14일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쌀 예상 생산량은 426만t이다. 이는 지난해 424만t보다 2만t(0.4%) 증가한 수치다. 벼 재배 면적은 79만9000㏊로 전년 대비 2% 줄었으나, 10㏊당 생산량이 전년 대비 2.5% 증가하면서 생산량이 늘었다. 이에 비해 지난 2014년 우리나라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은 178.2g으로 전년보다 5.8g(3.2%) 줄면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제 국민 한 사람이 하루 밥 두 공기도 채 안 먹는 셈이다. ‘밥심으로 산다’는 말도 쑥 들어간 지 오래다. 2005년 221.2g이던 우리나라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은 2010년 199.6g으로 200g대가 깨진 이래 매년 최저치 기록을 새로 세우고 있다.

이에 올해 쌀 수요는 400만t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 26만t이 남는 셈이다. 올해 공급 과잉 규모는 어느 때보다 크다. 결국 시장 논리대로라면 쌀값은 폭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 쌀값 하락 원인은

15일 현재 산지 쌀값은 80㎏당 15만4132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3% 하락한 상태다. 역시 400만t에 불과한 수요량에 비해 공급량이 넘치는 게 주된 원인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밥쌀을 수입해 농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안 그래도 넘치는 쌀 공급량을 정부가 돈까지 들여 늘리고 있다는 게 일부 농민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이는 오해라는 게 정부의 견해다. 실제 수입쌀의 판매량이 극히 적기 때문이다. 현재 밥쌀용 수입쌀 판매량은 전체 쌀 공급량의 약 3% 수준에 불과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밥쌀용 수입쌀이 국내 쌀값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특히 당국은 최근 쌀 공급이 늘면서 밥쌀용 수입쌀의 시장 판매 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일정량 이상으로 불법 유통되는 것을 철저히 막겠다는 것이다.

3 밥쌀용 수입을 계속하는 이유

그래도 수입쌀 판매는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14년간 유지됐던 ‘밥쌀용 쌀 30% 의무 수입’ 조항이 삭제되면서 “반드시 수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이 같은 시각을 가진 이들의 주장이다. 수출 위주 경제구조를 지닌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을 지키기 위해 일정량의 쌀을 수입하고 있다.

과거에 우리나라는 수입 의무 조항이 있어 이를 지켜야 했다. 이 의무 규정이 지난해 관세화 협정을 맺으면서 삭제된 것이다. 밥쌀 수입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밥쌀에 대한 의무 수입 조항이 삭제됐다고 그 의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실제 관련 전문가들 역시 쌀을 전량 가공용으로 수입할 경우, 내국민대우 등 WTO 규범을 위반하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함부로 쌀 수입을 중단했다가는 우리 산업 수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4 농민 소득은 어떻게 되나

쌀값은 시장에서 작황, 소비량 및 재고량 등 수급 여건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정부는 쌀값이 떨어지더라도 농가의 실질소득은 일정 수준 유지될 수 있도록 ‘고정직불 및 변동직불제’를 운용하고 있다. 그 결과 2005년 이후 농가가 실제 받는 가격은 목표가격의 97% 이상으로 유지되고 있다. 정부는 2012년 ㏊당 70만 원이던 고정직불금 단가도 2015년 100만 원으로 올려 농가 소득을 보전해 주고 있다.

또 수확기 농가의 자금 수요를 고려해 쌀값이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을 지난해와 같은 수준인 벼 40㎏당 5만2000원씩 지급하고 있다.

5 쌀 수급 안정 대책 내용은

정부의 이번 쌀 수급안정대책의 핵심은 역시 ‘쌀 20만t의 시장 격리’다. 정부는 이와 함께 36만t을 매입해 공공비축하고 3만t은 매입해 해외에 공여할 계획이다.

시장 상황을 보며 추가 격리 조치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시장 격리와 함께 벼 매입자금 2000억 원을 추가 지원하는 등 민간 차원의 벼 매입이 늘어나도록 지원키로 했다.

수확기 동안 밥쌀용 수입쌀의 판매량·판매횟수도 줄이기로 했다. 무엇보다 쌀 수급 안정을 위해 특별 재고관리대책도 마련키로 했다.

가공용·주정용 공급을 올해 37만t에서 2016년 61만t으로 확대하고 쌀 및 쌀가공식품 수출도 적극적으로 지원키로 했다. 다양한 쌀 수요처를 개발해 쌀 소비를 근본적으로 늘린다는 것이다.

6 대책은 언제, 어떻게 시행되나

오는 11월부터 농가로부터 매입을 시작한다. 매입은 연말까지 이뤄질 계획이다. 공공비축미와 같은 방법과 우선지급금 5만2000원을 지급하고, 차액은 1월에 정산할 예정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시장 격리 20만t과 벼 매입자금 지원 등에 따른 민간의 벼 매입량이 늘면 쌀값이 어느 정도 안정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농식품부는 현지 시장 동향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쌀값 하락에 대비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농민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도 정부의 대책으로 쌀값 내림세가 진정되리라 전망하고 있다.

7 과잉 재고 대책은

정부는 연말까지 특별 재고관리대책을 수립해 추진할 예정이다. 또 오는 2017년까지 가공용 수입쌀 인하가격을 계속 적용하고 우리나라에서 과거 생산된 쌀 재고량을 가공용으로 할인해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쌀 가공식품과 쌀의 수출이 늘어날 수 있도록 지원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쌀 수출을 위한 현지 해외시장조사와 마케팅 등을 지원하고, 쌀 가공식품 수출물류비 지원 대상도 현재 6개에서 전 품목으로 확대키로 했다. 특히 올 16만t에 머물고 있는 주정용 쌀 공급량을 내년에는 최대 21만t으로 늘어날 수 있도록 지원키로 했다. 복지용 쌀 공급량도 늘리기로 했다. 복지용 쌀 수급 대상자 기준을 낮춰 혜택을 받는 이들이 늘어나도록 할 예정이다.

8 사료용 소비처 논의 어디까지

일본의 경우 2008년 미분용, 사료용, 바이오에탄올용, 수출용, 양조용 등에 대한 쌀의 신규 수요처를 개발하고 이 신규 수요되는 쌀 생산에 대한 보조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 2008년 12만4000t이었던 신규 수요 쌀의 생산은 2014년 21만5000t으로 증가했다.

이에 우리 역시 오래된 재고 쌀을 사료라도 써 없애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실 일본의 사례는 본받을 점이 많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는 다만 쌀을 사료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제도적·기술적 어려움은 없으나,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먼저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9 대북 지원·해외원조 입장은

대북지원은 국내 정치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지 정부 당국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또 해외원조의 경우 쌀의 직접원조는 현재 WTO 등의 규정상 불가능하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돈으로 해외원조를 해 현지 단체나 국가가 직접 쌀을 구매하도록 해야 국제 무역구조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게 WTO 등의 입장이다.

대북지원과 해외원조 외 국내 복지용 쌀 소비를 대폭 늘리자는 주장도 있다. 농식품부 역시 이 같은 입장에는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기준 없는 지원은 있을 수 없고, 무엇보다 무조건 쌀 지원을 늘린다고 실제 소비가 바로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는 게 농식품부 입장이다.

현재도 남아도는 쌀 소비를 위해 정부는 수급권자, 차상위계층과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하는 단체에 쌀을 일반 시중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 수급권자, 차상위계층에는 보건복지부의 ‘정부관리양곡할인지원사업’을 통해 쌀값의 50%를 지원하고 있다. 또 결식아동과 노인, 노숙자 등 극빈층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급식단체에도 쌀 20㎏당 6250원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는 정부 쌀 판매가격의 14% 수준이다.

다만 지난 연말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으로 복지용 쌀을 살 수 있는 대상자가 약 76만 명 증가할 전망이어서 정부는 이들 수요에 맞춘 복지용 쌀 공급량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10 중·장기 대책은

‘쌀 20만t 시장 격리 조치’ 등은 일단 단기적인 대책이다. 정부는 이에 연말까지 중·장기 수급안정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현재까지 쌀 적정 생산을 위해 △다른 작물 재배를 확대하는 방안 △쌀 생산유인을 낮추는 방안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방안 △다양한 쌀 가공제품 개발 등 쌀 소비를 늘리는 방안 등이 중·장기 대책을 마련하는 주요 고려점이다. 전반적으로 쌀 생산을 억제하면서 소비를 늘리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다만 쌀 공급은 가뭄 등 다른 변수로 인해 급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태도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최근 가뭄 등으로 내년도 영농여건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등 수급상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고 있어 중·장기 대책은 이 같은 변수들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호 기자 shp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