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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5년 11월 06일(金)
인류의 필사적 생존 투쟁…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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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범죄사 / 콜린 윌슨 지음 전소영 옮김 / 알마
살인 / 마틴 데일리·마고 윌슨 지음 김명주 옮김 / 어마마마


지식의 연출가답다. 문장은 화려하고 내용은 박람하다. 철학, 사회학, 심리학, 역사학, 생물학, 문학 등 지식 전 분야가 한꺼번에 끌려 나와 심문당한다. 던져지는 질문은 오직 하나뿐이다. “인간은 왜 이토록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가?”

인류사 전체를 세로로 길게 쪼개고, 다시 가로로 훑으면서 콜린 윌슨은 어둠의 역사, ‘범죄의 인류사’를 세밀히 구축한다. ‘아웃사이더’로 전 세계의 독서광을 사로잡은 르네상스적 인간이 다시 한 번 거장의 솜씨를 부려 간다. 타고난 살인자였던 최초의 인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광기에 사로잡혀 유대인 수백만 명을 학살한 히틀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는 그 자체로 끔찍한 범죄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성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려는 ‘계몽의 기획’을 발달시켜 온 인간이 어째서 야누스처럼 사악한 범죄자로 세상을 검은 피로 물들일 수밖에 없었을까. 윌슨은 심리학자 매슬로의 욕구 이론에 기대어, 인류의 범죄가 생리적 욕구를 충족하는 ‘생존형 범죄’로부터 ‘자아실현’을 충족하는 ‘인정형 범죄’로 점차 변화해 온 사실에 주목한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력 발전에 따른 물질적 풍요는 ‘생존형 범죄’를 크게 줄일 수 있으므로 우발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범죄 대부분이 사라질 수 있었는데도, 연쇄살인 같은 끔찍한 범죄가 20세기에도 만연한 까닭은 무엇일까. 인류의 ‘좌뇌 편향’, 즉 이성 과잉에 따른 균형 상실이 원인이다.

아시리아, 스파르타, 로마에서 나치에 이르기까지 ‘좌뇌인’들이 효율을 높이려고, 원하는 것을 “가서 낚아채는” 일을 서슴없이 저질렀다는 것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떠한 가치도 인정하지 않는” ‘수단적 이성’을 현대적 비극의 원인으로 간파했던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을 떠올리게 하는 주장이다. “물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고 ‘나’라고 말할 수 있었을 때, 인간은 위대함을 이룰 가능성과 동시에 범죄자가 될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중략) 범죄적 인간은 인간이 잠재성을 잘못 이해한 결과물이다. 아이가 일그러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자신이 괴물로 변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범죄자는 인류의 일그러진 상, ‘인류의 집단 악몽’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범죄라는 그 오랜 악몽에서 깨어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자의식을 만들어낸 그 능력으로 자기의 본얼굴을 알아보기만 하면 된다고 윌슨은 말한다. 이럴 때 그는 어쩐지 불교의 수행승을 닮았다. 미망(迷妄)에서 깨어나 ‘진아(眞我)’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살인’에서 동물행동학자인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 부부는 이런 주장이야말로 현실의 참모습을 가리는 미망이라고 주장한다. 책의 첫 문장이다. “적을 죽이는 것은 최종적인 갈등 해결 방법이고,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되기 오래전에 이미 그 방법을 발견했다.” 자연은 마음이 없다. 인간의 자존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잔혹하고 메스껍다. 진화심리학의 매혹은 바로 그 사실로부터 온다. 인식이 찢기는 고통 속에서 새로운 앎이 생겨나는 기쁨. 육체와 마찬가지로 정신 역시 통증 없이는 근육을 키울 수 없기에 진화심리학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을 단단히 다지곤 하지만 번번이 아득해진다. ‘살인’ 역시 그러했다.

생물학은 인간학의 메타과학이며 ‘선택’을 통해 진화해 온 생명의 메커니즘을 수용하지 않은 인간학에는 진실이 없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이 있기 이전에 ‘살해’가 있었다. 살해는 모든 생명이 겪는 나날의 생존투쟁이 낳은 산물이다. 먹을거리가 부족할 때, 새끼가 허약할 때, 자기 유전자가 아닐 때, 생명은 흔히 ‘살해’라는 선택을 통해 종을 보전했다. 인류 역시 종을 보전하기 위한 필사적 선택의 결과이므로 살인은 인류의 유전자에 각인돼 있다. 살인을 이해하려고 수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 연구를 거듭해 왔는데도, 아직 이 비인간적 인간 경험에 대해 거의 알아낸 것이 없는 이유는 많은 학자들이 ‘생물학 혐오증’에 걸려 진화론적 선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서이다.

저자들은 원주민 부족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자료에서 디트로이트 경찰국의 사건기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면서 살인의 진짜 이유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가령, 처음 본 사람들이 ‘사소한 언쟁’ 끝에 칼부림을 하거나,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신이 낳은 어린 자식을 살해하거나 하는 등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살인의 배후에 종의 생존과 보전을 둘러싼 개인적 이해의 심각한 충돌이 놓여 있음을 이 책은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이 책이 “살인에 대한 인류 최초의 답을 구했다”는 것은 단지 과장만은 아니다.

두 책 모두에서 주목할 것은 살인에 관한 한 ‘비관론’은 절대 없다는 사실이다. 흔히 사람들은 세상이 과거에 비해 훨씬 나빠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와 반대다. 살인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고 흉악성은 다소 높아졌을지 몰라도, 영아살해 등 많은 지점에서 인류는 커다란 진보를 이뤄냈다. 진화적으로 살인의 운명을 타고났을 수 있지만, 끝없는 노력을 덧붙여 가면서 인간의 세상은 조금씩 좋은 곳으로 변하고 있다. 이 사실을 확인한 일만으로도 이 책들을 읽을 가치는 충분히 있다.

장은수 순천향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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