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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5년 11월 11일(水)
지도자 귀 얇을수록 ‘합리적 선택’ 확률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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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송재우 기자 jaewoo@

▲  (그림 A) ‘까라면 까’의 계층구조(의사소통 변수 = 0). (그림 B) 계층구조에 더해 의견교환이 가능한 다양한 소통 채널이 함께 있는 구조(의사소통 변수 = 0.5).

김범준의 과학 이야기 - ⑦ 민주주의의 구조

“까라면 깐다.” 윗사람이 시키면 군말 없이 시킨 대로 한다는 뜻이다.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대를 앞선 정말로 훌륭한 현인이 한 조직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인 경우에는 평범한 사람들 모두는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말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더 좋다. ‘까라면 깐다’가 좋은 다른 경우도 있다. 적군의 총탄이 빗발치는 전투 현장에서 사병보다는 그래도 전투 경험이 조금이라도 더 있는 직속상관의 명령을 재빨리 수행하는 것이 더 좋지, 적군의 급습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책을 얻기 위해 1박 2일 토론할 시간은 없다.

하지만 결정해야 할 내용이 정말로 중요한 사안이며, 토론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허락된 경우에는 ‘까라면 깐다’는 한 집단이 올바르고 현명한 해결책을 찾는 방법이 결코 될 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은 크게 보면 비슷비슷하다. (사람들의 타고난 능력을 정량화해서 확률분포를 구하면 아마도 정규분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 해도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합리적인 토론 과정을 거쳐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해결책을 나 홀로 생각해내기는 불가능하다.

살다 보면 크든 작든 자신이 속한 사회 안에서 우리는 많은 양자택일의 상황을 만난다. 같은 회사 직원들끼리 점심을 먹으러 갈 때 짜장면을 먹으러 중국집에 갈지, 된장찌개를 먹으러 한식집에 갈지 결정하는 상황에서, 어쨌든 뭐라도 즐겁게 함께 먹으려면 모든 사람이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한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합의에 도달하는지는 흥미로운 주제다. 통계물리학자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투표자 모형(voter model)’이라는 단순화된 모형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된장찌개와 짜장면, 각각을 선호하는 의견을 각각 A와 B라 부르고 사람들 각자는 의견(opinion) A, B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편의상, 투표자 모형의 투표자들은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귀가 얇은 사람들로 보통 가정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의견을 묻고는 상대방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으로 가정한다는 뜻이다. 처음 두 의견 A, B를 가진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섞여 있는 상황에서 시작해 어떻게 전체 집단이 둘 중 하나의 의견으로 의견합일(consensus)의 상황에 이르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주된 연구 주제가 된다. 투표자 모형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에서는 양자택일 상황의 두 의견 A, B 사이에 좋고 나쁨의 우열이 전혀 없는 상황을 생각한다.

필자가 그룹의 연구원이었던 한성국, 엄재곤 박사와 했던 연구에서는 이와 달리, 둘 중 하나인 A가 B보다 약간 좋은 의견이라고 가정했다. 즉, 짜장면의 의견을 가진 사람이 된장찌개의 의견을 가진 사람과 만나면 100%의 확률로 설득돼 된장찌개로 마음을 바꾸지만, 거꾸로 된장찌개의 의견을 가진 사람이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면 100%보다 약간 낮은 확률로 짜장면으로 의견을 바꾸게 된다고 가정했다. 사람들이 서로서로 만나 활발하게 토론하다 보면, 정말로 그날 짜장면보다 된장찌개가 더 나은 선택이라고 의견의 일치에 이를 만한 어떤 객관적인 이유가 약하지만 조금은 있는 상황을 떠올려 보면 되겠다. 이처럼 된장찌개가 짜장면보다 선택될 확률이 조금 더 높은 정도를 e라는 변수로 기술했다. 즉 e=0이면 된장찌개와 짜장면이 정확히 동등한 경우고, e=1.0이 되면 사람들의 선호가 짜장면에서 된장찌개로는 바뀌지만, 거꾸로 된장찌개에서 짜장면으로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된장찌개가 확실히 더 좋은 경우로 생각하면 된다.

자, 이제 이렇게 된장찌개와 짜장면의 두 선호를 가진 한 집단 내의 구성원들이 서로 둘씩 만나 상대방의 의견을 귀담아듣는 의견교환 과정을 시작했다고 하자. 연구에서는 먼저 철저한 계층구조를 가정해 봤다. 예를 들어, 회장 아래에는 세 명의 사장이 있고, 각 사장 아래에는 세 명의 부장이, 부장 아래 세 명의 과장, 과장 아래 세 명의 사원이 있는 그런 구조를 독자가 상상해 보면 되겠다. 이 경우 계층의 수 L은 회장-사장-부장-과장-사원으로 이어지니 L=5이고, 이 집단의 크기 N은 회장 1명, 사장 3명, 부장 9명, 과장 27명, 사원 81명으로 모두 N=121이 된다. 엄격한 계층구조는 바로,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까라면 까’는 상명하복의 구조를 의미한다. 사장은 부장 얘기는 안 듣고 회장 말만 따르고, 과장은 바로 위 부장의 말은 따르지만 자신의 직속상관이 아닌 다른 부서 부장의 말은 거들떠보지 않을뿐더러 자신과 함께 일하는 아래 사원들 이야기도 전혀 듣지 않는 그런 구조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러한 완벽한 상명하복의 계층구조에서 사람들은 자기 직속상관의 말만 따르게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회장 한 명만 짜장면을 먹고 싶고, 사장을 포함한 다른 모든 사람은 된장찌개를 먹고자 한다고 해도, 아주 이른 시간 안에 모든 사람이 회장이 좋아하는 짜장면으로 의견일치에 이르게 될 것은 명약관화다. 누구도 오늘은 된장찌개가 더 좋다고 회장을 설득할 수 없는 반면, 회장은 사장을, 사장은 부장을, 부장은 과장을, 또 과장은 사원을 위에서부터 차례차례로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들은 이렇게 당연한 얘기도 일단 모형을 이용해 정량적으로 검증해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또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모형을 구현할 때는 다양한 경우로 일반화하기 쉬운 꼴이 되도록 노력한다. 필자와 공동연구원들은 상명하복의 계층구조 위에 더해 서로 다른 계층을 넘나드는 다양한 의사소통의 통로가 추가로 있는 경우를 생각해서 얼마나 다양한 경로의 의사소통이 가능한지를 p라는 변수로 조절하게 했다. 즉 p=0인 경우가 원래의 완벽한 ‘까라면 까’의 구조, 그리고 p가 점점 커지면 이제 상관도 아랫사람의 말을 듣고, 또 다른 부서의 사람들끼리도 위아래로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의사소통의 통로가 더 많아지게 된다.

‘까라면 까’의 상명하복 구조가 좋을 때는 어떤 경우일까. 만약 계층구조의 최상에 위치하는 회장이 오늘은 된장찌개가 더 좋다는 올바른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다면 사람들은 피곤한 토론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아주 빨리 사이좋게 그날의 나은 선택인 된장찌개를 먹으러 함께 사무실에서 일어설 수 있다. 즉, 최상위 계층에 있는 사람이 원래부터 올바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상명하복 구조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의견일치에 도달하는 데에는 상당히 적은 시간이 걸린다. 그 이유도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다. 회장이 사장 세 명을 설득하고, 사장 세 명이 각각 자신의 아랫사람인 부장을 설득하고, 부장은 이어서 과장을, 그리고 과장은 사원을 설득하는 과정을 생각하자. 각자는 자신의 하위 계층에 있는 사람 딱 세 명만 설득하면 되니, 계층의 수인 L=5보다 한 단계 적은 4단계면 모든 사람이 회장의 올바른 의견을 전달받게 된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모든 사람의 설득에 필요한 논의의 단계의 수는 전체 구성원 숫자의 로그함수 꼴을 따른다)

그럼 상명하복 구조가 어떨 때 문제가 되는지도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당연히 최상위 계층에 있는 회장이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를 잘못 알고 있을 경우다. 극단적인 ‘까라면 까’의 구조에서는 회장 딱 한 명만 짜장면을 먹고 싶고, 다른 모든 사람은 된장찌개를 먹고 싶은 경우, 그리고 또 사실 된장찌개가 더 나은 선택인 경우라도(즉 e>0), 결국은 회사 전체의 사람들이 빨리 짜장면을 먹는 쪽으로 합의하게 된다는 거다. 짜장면과 된장찌개 중 더 나은 선택인 된장찌개를 눈앞에 두고도, 둘 중 좋지 않은 선택인 짜장면에 합의하게 되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구에 사용된 모형에서 p가 충분히 커서 많은 사람이 계층을 넘나들고 가로지르며 서로 활발한 의견교환을 할 수 있게 되면 최상위 계층의 회장이 짜장면을 먹고 싶어 해도 결국 사람들 다수는 된장찌개를 선택한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설득의 과정을 거쳐 어떨 때는 짜장면, 어떨 때는 된장찌개로 수시로 마음을 바꾸다가 결국은 올바른 해결책을 찾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알고 보면 답은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던 거다. 모든 사람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많은 사람과 만나 넓게 얘기하면 결국은 올바른 의견을 찾아가게 돼 있다. 이러한 민주적인 의견합일 과정은 사실 어두운 면도 있다. 바로 의견일치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거다. “빨리빨리”의 효율성은 민주적인 토론을 통한 올바른 선택과는 함께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지도자가 아무리 짜장면을 좋아하더라도, 그리고 된장찌개보다 짜장면이 더 좋다고 정말로 확신하더라도 일단 많은 사람의 의견을 구할 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90%가 된장찌개가 더 좋다고 하는 경우, 내가 믿는 짜장면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라면, 사회 전체가 올바른 의견합일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을 효율적으로 줄일 수도 있다.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을 경계하라.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말이다. 자신의 말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계층구조를 따르는 조직의 최상층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올바른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필자는 지도자가 귀가 얇았으면 좋겠다. (문화일보 10월 14일자 6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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