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태형 프로야구 두산 감독이 지난 6일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문화일보에서 야구 방망이를 들고 2015 타이어뱅크 KBO 한국시리즈 우승 소감을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부임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 김태형 두산 감독
김태형(48) 프로야구 두산 감독은 행복한 사령탑이다. 지휘봉을 잡은 첫해에 4년 연속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에 빛나는 류중일 삼성 감독을 꺾고 2015 타이어뱅크 KBO 한국시리즈 패권을 차지했다. 프로야구 감독 데뷔 시즌에 우승한 것은 1983년 김응용 전 해태 감독, 2005년 선동열 전 삼성 감독, 2011년 류중일 삼성 감독에 이어 김태형 감독이 역대 4번째다. 특히 김태형 감독은 10개 구단 감독 중 최저 연봉(2억 원)이면서도 정상에 올랐다.
김 감독이 행운아인 이유는 또 있다. 두산은 전신인 OB를 포함해 한국시리즈에서 4차례 우승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과 1995년, 2001년, 그리고 올해다. 그런데 1990년 데뷔한 김 감독은 이 가운데 3차례나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1995년엔 선수로, 2001년엔 플레잉코치(선수 겸 코치)로, 이번엔 감독으로 샴페인을 터뜨렸다. 같은 팀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정상에 오른 것은 프로야구 사상 처음.
김 감독은 지난 6일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문화일보를 찾아 “믿기지 않는 세 번의 우승을 팀과 함께했기에 너무 기쁘고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수로 우승한 것과 감독으로 우승한 것 중 어떤 게 더 기쁠까. 김 감독은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당연히 지금이 좋지”라며 “올해는 김태형 개인이 아닌 두산이라는 팀 전체를 생각하며 1년을 지냈기에 훨씬 감회가 깊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지인 소개로 만난 부인과 2000년 결혼했다. 교제 1년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기에 “사랑이 확 불타올랐나 보다”고 물었다. 그랬더니 김 감독은 “불타긴 뭘 불타. 만나자마자 전지훈련을 떠났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못 만났는데 무슨 불타는 사랑을 했겠느냐”며 특유의 유머를 섞어 말했다. 김 감독은 5년 연하인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아들 동진(15) 군은 현재 중학교 3학년인데, 취미로 학교에서 야구 동아리 활동을 한다. 프로 선수를 거쳐 감독까지 올랐으니 아들도 야구를 시킬 의향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선수 시킬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내 야구에 신경 쓰기도 바빠 죽겠는데 아들 야구까지 어떻게 신경을 써”라며 “그런데 원하는 걸 안 시켜줘서 조금 미안한 건 있지”라고 털어놓았다.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이나 이병훈 스포TV 해설위원처럼 아들이 프로 선수가 된 선배·동기의 모습을 보며 부럽진 않을까 싶어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도 허를 찌르는 대답. 김 감독은 “2세가 자유계약선수(FA) 대박을 터뜨리면 몰라도 야구선수 됐다고 부러울 게 뭐 있냐”고 말했다.
김 감독의 걸쭉한, 톡톡 튀는 입담은 포스트시즌 때도 빛을 발했다.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류중일 감독이 “김 감독이 골프를 잘 친다던데 야구인 골프 대회에서 실력을 겨뤄보고 싶다”고 말을 꺼내자 김 감독은 “야구는 이기고 골프는 져 드리겠다”고 받아쳤다. 김 감독은 탁월한 언변의 비결에 대해 “타고났다”며 “어릴 적부터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았고, 그래서 대장 노릇을 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서울화계초교 5학년 때 야구부에 들어가면서 야구인생을 시작했다. 야구 명문 신일중-신일고를 거쳤다. 그런데 우승을 맛본 것은 프로에 들어온 뒤 1995년이 처음이었다. 김 감독은 “명문이라고 계속 잘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멋쩍어했다. 단국대를 졸업한 김 감독은 원래 경희대 선수가 될 뻔했다. 김 감독은 “대학 측과 얘기가 돼 있었는데, 대한야구협회 착오로 체육특기생이 안 되면서 입학이 취소돼 무척 난감했다”고 설명했다. 다급해진 김 감독은 일단 야구부가 있는 인천전문대에 입학했다. 거기서 눈에 띄어 대표팀에 발탁됐고, 1988년 이탈리아 야구월드컵과 서울올림픽에 출전했다. 대표팀 경력 덕에 단국대에 편입했고, OB에도 입단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은 편입을 도와준 강문길 전 단국대 감독을 은사로 꼽는다.
선수 김태형의 프로 성적은 A급으로 보기는 힘들다. 1990년 프로에 데뷔, 2001년까지 12시즌 동안 827게임에 출전해 통산 타율 0.235에 그쳤다. 전형적인 수비형 포수. 프로 통산 홈런이 9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김 감독의 장점은 따로 있었다. 일찌감치 군기반장으로서 카리스마 리더십을 펼쳤다. 키 173㎝, 몸무게 76㎏으로 체구는 작았지만 한 번 화를 내면 후배들이 벌벌 떨었다. 특히 외국인 선수 타이론 우즈(은퇴)까지 쥐락펴락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김 감독은 1998∼2000년 주장을 맡았다. 우즈는 1998∼2002년 두산에서 활약했다. 경기 수훈 선수로 뽑히면 구단에서 상품권 등을 주는데, 두산에는 출전 기회가 적은 선수들도 상품권을 받을 수 있게 선수들끼리 나눠 갖는 전통이 있다. 그런데 우즈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발했다. 또 한 번은 우즈가 자기 기분이 좋지 않다고 장난을 거는 동료에게 버럭 화를 냈다. 당시 주장이던 김 감독은 우즈를 ‘커튼 뒤’로 조용히 불러서 혼을 냈고, 이후로 우즈는 두산 분위기에 적응했다.
김 감독은 ‘두산맨’이다. 현역 시절 한 차례도 팀을 옮기지 않았다. 은퇴 후에도 두산 코치로 남았다. 2011년 시즌 뒤 SK 코치로 옮겼지만, 지난해 10월 두산 감독이 돼 돌아왔다. 두산은 “두산의 허슬 플레이(몸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를 살릴 수 있는 지도자”라고 김 감독 선임 배경을 밝혔다. 김 감독의 두산 색깔 회복 프로젝트는 스프링캠프에서부터 곧바로 시작됐다. 땅볼이나 평범한 뜬 공을 친 뒤에도 1루까지 열심히 달리지 않으면 “야구 그만하고 싶냐”고 호통을 쳤다. 팀을 위해 개인감정도 드러내지 말라고 주문했다. 방망이가 안 맞는다고 인상을 구기고 있으면 동료들의 분위기까지 망친다는 것. 김 감독은 선수단의 투지를 되살린 비결에 대해 “선수로서의 기본을 강조했다”며 “항상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하고 열정을 가지도록 선수들에게 주문했고, 개인이 아닌 팀을 생각하게 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의 입버릇은 ‘어차피’다. 개별 경기의 순간순간보다 시즌 전체의 흐름을 중시하기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확고한 주관을 갖고 자신의 구상을 밀고 나가는 지도 스타일이라 ‘뚝심 리더십’으로 평가받는다. 두산은 김인식 대표팀 감독부터 김경문 NC 감독을 거쳐 김 감독으로 사령탑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7이닝을 던진 더스틴 니퍼트를 승부처라고 판단한 5차전에 구원 등판시켜 우승을 확정지었다. 다른 용병 투수 앤서니 스와잭의 경우 “팀을 위해 던지려는 의지가 없기에 더는 볼 일이 없을 것”이라며 과감히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김 감독 자신도 김인식, 김경문 감독을 롤 모델로 꼽는다. 김 감독은 “초등학교 때부터 포지션이 포수여서 선수 시절엔 대스타였던 이만수 전 SK 감독이 롤 모델이었다”며 “하지만 감독이 된 후에는 김인식 감독과 김경문 감독이 롤 모델이 됐고, 두 분의 장점을 배우려고 했던 게 감독 부임 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인식 감독은 1995∼2003년 OB 및 두산 감독을 역임했고, 김경문 감독은 1998∼2003년 코치를 거쳐 2011년 6월까지 두산 사령탑을 맡았다. 이 기간 김 감독은 선수와 코치로서 두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젊은 김 감독만의 특별한 장점이 하나 더 있다. 선수들에게 큰형처럼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 탁월한 말주변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 선수단과 소통한다. 정규리그에서 18승(다승 2위)을 따낸 두산 유희관은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4이닝 3실점, NC와의 플레이오프에서도 2.2이닝 4실점으로 부진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유희관이 못 던져서 계속 시리즈를 이겼다. 또 못 던지면 좋겠다”는 우스갯소리로 유희관을 다독였다. 유희관은 한국시리즈 5차전 6이닝 2실점 호투로 보답했다.
뚝심 리더십이라고 작전 야구를 못하는 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포수 마스크를 썼던 김 감독은 그라운드의 야전사령관으로 불리는 포수 포지션을 소화하며 게임을 읽는 능력을 키웠다. 한국시리즈 1차전 패배 후 라인업에 변화를 줘 반격에 성공, 승기를 잡아갔다.
한국시리즈 우승 뒤 김 감독에게는 ‘곰탈 여우(곰의 탈을 쓴 여우)’라는 별명이 추가됐다. 김 감독은 “과분한 별명”이라고 했지만, 인터뷰 말미에 “우승 다음날 바로 마무리 훈련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물론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지만, 1년을 해 보니 수비 포메이션이나 벤치의 작전 등 세밀한 부분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여우의 면모를 내비쳤다.
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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