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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5년 11월 20일(金)
‘나의 앎’ 고집땐 분열뿐… 지혜를 못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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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 / 아비탈 로넬 지음, 강우성 옮김 / 문학동네

앎의 반대는 무지(無知)다. 그렇다면 ‘어리석음’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무지는 흔히 어둠으로 표상된다. 이성의 망치로 때려 깨뜨리고, 빛을 던져 밝힘으로써 앎의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리석음은 안개와 같다. 한밤은 물론이고, 대낮에도 종종 출현한다. 빛으로도 쫓아낼 수 없고, 망치로도 때릴 수 없다. 존재하기는 하나 실체를 잡지 못하는 ‘무엇’이어서, 오직 퇴마의 부적으로만 물리칠 수 있다.

그러나 이성의 놀음에 어찌 부적을 쓰랴. 부적은 마법의 도구이고, 마법은 그 자체로 비이성의 상징이요 어리석음의 일종이다. 따라서 ‘어리석음’은 이성의 진퇴양난, 이성의 불가능성 또는 불완전성의 상징이다. 쫓아내고 싶지만 기어이 되돌아와서 들러붙어 있는 유령과도 같다.

‘드디어’ 아비탈 로넬(사진)의 책이 출간되었다. ‘어리석음’이다. ‘드디어’라고 말하는 것은 아비탈의 지적 작업에 대한 호기심이 한국의 지적 생태계에 ‘이미’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다. ‘데리다 이후의 데리다’라고 이야기할 만한, 데리다 스스로도 “내 인생의 형이상학”이라고 불렀던 이 철학자는 ‘해체 철학의 가장 충실한 계승자’ 중 한 사람이다.

국내에는 ‘데리다의 미국 번역자’로 먼저 이름이 알려졌고, 강의실 속 철학자들을 거리로 불러내어 철학적 사유의 의미를 물은 애스트라 테일러의 지적 다큐멘터리 ‘불온한 산책자’(이후)를 통해 관심을 끌었으며, 이후 여러 지면에서 그 지적 작업의 중요성이 조금씩 소개되면서 인문학 마니아들 사이에서 호기심이 커져 갔다.

해체 특유의 까다로운 문체, 전화번호부 형태의 책을 펴내는 등 파격적 형식 실험, 문사철을 순간적으로 넘나드는 방대한 내용 탓에 번역이 나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외우(畏友) 강우성 교수의 다섯 해 가까운 고생 끝에 ‘드디어’ 한국어판이 나오게 되었다.

로넬의 관심은 정말 박람하다. 문학 전공자답게 괴테, 실러, 무질, 횔덜린, 워즈워스, 도스토옙스키, 플로베르, 프루스트, 베케트 등의 작품이 줄줄이 불려 나오는가 하면, 파스칼,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니체, 하이데거, 벤야민, 들뢰즈, 푸코, 데리다 등이 한 웅덩이에서 헤엄치도록 만든다. 거기에 마약, 전화, 텔레비전, 에이즈, 전쟁 등 철학 탐구의 대상으로서는 낯선 주제들을 슬며시 끼워넣기도 한다.

로넬은 대화를 구조화해서 견고히 배치하는 대신 사유가 우연히 흘러나온 곁말에 홀리도록, 떠오르는 생각들을 좇아가도록 흔히 방치한다. 집약이 아니라 산포를 선택함으로써, 명석함이 아니라 어떤 추세, 흔적, 경향을 따라감으로써 그녀는 사유에 자유를, 즉 흐릿한 사태를 보는 눈을, 희미한 소리를 듣는 귀를 되돌려준다.

‘어리석음’은 서양 지식 전통의 끝없는 실패를 다룬다. 이 책을 읽더라도 우리는 어리석음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오히려 이 책은 “무엇이 어리석은 것인지 정체를 밝히는 일”을 하려 했고, “어리석음을 고발하는 임무”를 떠안은 (근대) 이성의 실패를 가혹하게 폭로한다.

무언가를, 어떤 것을, 누군가를 ‘어리석음’의 범주로 분류함으로써 동시에 작동하는 배제와 폭력과 억압을 드러낸다. “나는 (진리를) 알고 너는 (진리에) 어둡다”라는, 로넬의 말에 따르면, “안다고 가정된 주체”는 사실상 ‘아무것도 알지 못함’ 없이는 성립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알지 못함’을 “오류”로 호명하여 억압함으로써 비로소 성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브의 예가 보여주듯이, 알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음을 초래하는 행위이다. “이브는 최초의 지식 추구자였다. 알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그녀는 어리석은 인물로 밝혀지는데, 그녀의 남편과 창조주에 의해 앎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앎은 ‘어리석음’을 이미 배태하고 있다. 또는 잘못된 앎의 욕구, 즉 남편과 창조주의 ‘진짜’ 앎으로부터 벗어난 일탈은 언제나 여성적 표상으로 나타나며, 이는 여성의 사유에 ‘어리석음’의 굴레를 까닭 없이 씌운다.

따라서 어리석음은 “사회정치적 문제”이다. “어리석음의 문제는 언제나 공동체를 향해 발언되지, 결코 개인에게 고립되어 있지 않다.” 여성, 어린이, 장애인, 광인, 병자, 노인, 이주민 등은 ‘어리석음’의 표상으로 ‘비시민’의 지위로 밀려나고 사회적 발언권을 박탈당한다. ‘어리석음’에서 로넬은 ‘앎’의 이름으로 ‘어리석음’을 향해 저질러 온 폭력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그로부터 진정한 앎은 “타자 앞에서 나는 어리석다”라는 사실을 수용하는 지혜에서 비롯함을 보여준다. ‘역사적 진실’에 대해 ‘나만 앎’을 고집함으로써 현재 한국 사회는 분열로 치닫는 중이다.

하지만 지혜를 얻으려면 ‘어리석음’을 먼저 고백해야 한다. 아비탈 로넬의 역작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환기할 훌륭한 기회를 제공한다.

장은수 순천향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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