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김정은 집권 뒤 불안은 착각… 北 권력체제 굳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의 통일론은 특이하다. 그는 남과 북의 동질성 회복을 추구하는 ‘통일(統一)’에 앞서 이질성의 공존과 소통을 꾀하는 ‘통이(通異)’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 교수가 지난 9일 서강대 교정에서 문화일보와의 파워 인터뷰 도중 경색국면의 남북관계 해법과 통일론에 대해 말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김영수 서강대 교수 민주평통 통일정책위원장

기자가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게 된 데에는 그의 영향이 컸다. 계열별 모집에 따라 대학에 입학했던 기자는 전공 선택을 앞두고 개최된 학과별 설명회에 참석했다가 당시 대학원 조교 신분이었던 그를 만났다. 그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즐거움을 전해줬다. 그는 지(知)적이었고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나는 주저 없이 정치외교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지난 9일 서강대 캠퍼스에서 마주한 김영수 교수는 여전히 논리적이면서도 따뜻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젊었고 활기차 보였다. 북한 파워 엘리트의 부침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통치술, 급변사태 전망과 북핵 해법 등에 대한 장시간의 인터뷰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축자영감(逐字靈感) 식으로 쏟아내는 답변 속에 예지와 통찰이 빛났다.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에게 통일론은 영원한 테마다. 남과 북이 ‘동질성의 회복’을 추구하는 ‘통일(統一)’에 앞서 ‘이질성의 공존’을 꾀하는 ‘통이(通異)’가 돼야 한다는 그의 말 속에 평생 북한정치를 연구해온 분단시대를 사는 지식인의 고뇌가 엿보였다.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 북한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김정은 체제를 다들 잘못 봤습니다. 정권이 불안할 거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었는데 집권 4년 차로 들어가 보니 그게 맞지 않아요. 인사정책에 있어 사람을 자꾸 바꾸니 불안하다고 평가하는데 오히려 김정은이 ‘내 사람을 쓰겠다’는 의지를 갖고 고르고 있기 때문에 유일영도(唯一領導) 체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사람을 고르고 있다고 나는 봅니다. 자주 바뀌니까 불안하다고 보지만 난 그렇게 보지 않아요. 인사정책으로 체제가 불안정하다는 분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김정은 체제가 안정됐다는 얘기죠.

“김정은은 남쪽 언론을 활용해 어떻게 플레이할지도 잘 알고, 북한의 민심도 활용할 줄 알고, 감각이 있습니다. 만만한 지도자가 아닙니다. 1984년생으로 만 31세인데, 젊어서 불안하다고 하지만 이미 4년 차에 접어들었고요. 지난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70주년 기념행사 때 보여줬잖아요. 중국에서 온 류윈산(劉雲山)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옆에 앉혀놓고 북·중 관계가 긴밀하다는 걸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지금 북·중 관계가 삐걱거린다는 얘기는 아무도 안 해요. 올해 안에 김정은 방중이 있다, 나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정치 멘토는 누구입니까.

“기본적으로는 고모부 장성택 처형을 논의했던 백두산 삼지연회의에 모였던 6∼7명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도 부침이 있습니다. 이너서클이 있는데 우리가 읽어내지는 못하고 있죠.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도 그중 하나일 것이고 황병서 총정치국장도 틀림없고, 조연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도 이너서클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김정은에 훈수를 두는 이너서클 멤버가 5명에서 7명은 될 거라고 봅니다.”

―그 이너서클이 집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구조인가요, 아니면 김정은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시스템인가요.

“김정은은 교회 첨탑 위의 피뢰침과 같습니다. 굳건한 이너서클 위에 혼자 올라가 있는 형국입니다. 지금 김정은의 당면과제는 ‘김정은 유일영도 체계 확립’입니다. 10월 10일이 유일영도 체계 확립의 시작이었고, 내년 5월의 제7차 당 대회가 이를 제도화시키는 때가 될 겁니다. 내년 당 대회 때에는 많은 게 달라질 겁니다. 일단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라는 자신의 직책을 바꿀 수도 있어요. 할아버지 김일성은 영원한 ‘주석’이고, 아버지 김정일은 영원한 ‘국방위원장’인데 자기만 ‘제1위원장’이라는 걸 받아들이겠습니까.”

김 교수는 머지않아 김 제1위원장의 새 직책이 나오고 거기에 맞춰 헌법도 수정될 거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내년 당 대회까지는 핵 보유국임을 보여주는 카드를 쓸 것이라고 점쳤다. 유일영도 체계를 갖추고 핵무기도 보유해 통치체제를 완전히 구축하게 될 거라고 그는 예측했다. 김 교수는 또 북한 내 파워 엘리트가 김정은의 통치술에 완전히 종속돼 있다고 봤다.

―북한 당·군·정 3대 엘리트 집단 간 힘의 균형은 어떻습니까.

“끼리끼리 권력갈등은 있지만 김정은은 그걸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군이 강하면 당을 키우고 당이 강하면 내각으로 권한을 옮기고…. 제일 중요한 것은 누구도 2인자의 자리에는 가지 않도록 한다는 거죠. 북한에 2인자는 없습니다.”

―김정은이 젊은 게 핸디캡일 수 있지 않을까요.

“김정은이 제일 싫어하는 게 부하들이 자신을 어리게 보는 눈빛입니다.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 육체적인 나이로 평가하려는 사람은 내칩니다. 처형당한 현영철의 경우 ‘젊은 사람(김정은)이 의욕이 좀 과해서 그런데…’는 식으로 얘기했다가 칼을 맞은 겁니다. 김정은이 ‘젊어서 어떻다는 거야, 지는 회의 때 졸기만 하면서’ 이렇게 반응했다고 합니다. 김정은은 자신을 ‘수령님의 손자’이자 ‘장군님의 아들’이며 인민의 지도자로 봐주기를 원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김정은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요.

“남쪽에서는 김정은이 인기가 없다는 평가가 있는데 북한 내부 소식을 들어보면 생각보다 인기가 높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젊다는 게 굉장한 매력이기도 하죠. 왕성하게 현지지도를 나가고 평양 시민에게 사과 나눠주라고 지시하고, 군부대에 가면 내무반 담요 밑으로 손 넣어 추운지를 물어보고, 이런 것들이 감성을 자극하는 거죠. 김정은은 민심을 얻는 방법을 잘 아는 것 같습니다.”

―북한 경제상황은 어떻습니까. 지난 리을설 장례 때 내각 총리인 박봉주가 김정은, 김영남, 황병서에 이어 4번째로 이름을 올렸는데, 경제가 잘되어서 그런 건지….

“올해 북한 체제를 사자성어로 말하면 ‘과잉동원’이 될 겁니다. 단기적 성과는 드러났는데 내년부터 나타날 후유증을 지켜봐야 할 상황이죠. 올해 경제 수치는 좋은 편인데, 숨어있던 통계가 과잉동원으로 드러난 겁니다. 예전에는 식량을 많이 생산해도 당국이 많이 가져가니까 숨겼지만 요새는 국가에 바칠 것을 빼면 자율 처분할 수 있으니까 많이 생산했다고 신고합니다. 오히려 생산량이 줄면 혼납니다. 최근 북한 통계는 늘 긍정적인 것만 나오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과잉동원 상태가 가라앉으면 후유증이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은 체제는 올해 가장 거품이 많은 해라고도 볼 수 있죠.”

―지금 신규 탈북자들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것도 경제 호전과 연관된 것일까요.

“또 다른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탈북 후 재입북한 이들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남조선에 가도 삶이 별로 나아질 것 없다고 한 것이 알려졌고요, 접경지역에 초소를 많이 세우고 중국에서 조직적으로 탈북자를 집단 재송환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최근 고위탈북자 보도가 있지 않았나요.

“단언컨대 최근에는 없습니다. 보도된 인물은 예전에 들어왔다가 이제야 밝혀진 경우라고 봐야죠. 그것도 평양에서 나온 사람은 거의 없고, 양강도나 자강도 접경지역 혹은 해외에서 외화벌이했던 사람들입니다. 제2의 황장엽은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고위 탈북자들이 남쪽으로 오기 전에 중국에 먼저 흡수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의 북·중 관계를 진단하면.

“밀수출이나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회복세로 돌아선 거죠. 정치적으로도 지난 10월 10일을 기점으로 바뀐 게 느껴집니다. 김정은은 ‘중국 지도자들이 이제 만날 수 있는 상대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봅니다.”

―북한에서 ‘레짐 체인지(체제 변동)’가 일어날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김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해 “지금은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했다. 대북정책이 지금과 같은 한 레짐 체인지는 없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북핵 제재의 역할을 떠넘기고 한국은 6자회담만 쳐다보는 상황에서 북 체제 변동의 요인이 생길 수 없다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6자회담 한 번 열리는 데 몇 년 걸리고 6자가 모여서 합의하는데 또 몇 년 걸립니다. 이달 초 서울에서 개최한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을 대안이라고 내놨지만 선언일 뿐이었죠. 북핵 해결을 위한 강대국 레짐이 작동안하는 겁니다. 6자회담이 현재로서는 쓸모가 없는 거죠. 후속 조치가 없는 한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북의 레짐 체인지가 일어난다면 어떤 형태가 바람직할까요.

“김정은만 바뀐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시스템이 바뀌어야 해요. 상부만 바뀌면 김정은보다 더 (위험)한 지도자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갑자기 레짐 체인지가 일어날 때 한국이 감당할 능력이 있느냐는 것도 문제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북한의 체제 변동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저는 봅니다. 무엇보다 북한 체제의 안정화를 기할 능력이 부족하고요, 주변 강대국이 이를 허용하지 않을 거고요, 또 국제법 차원에서도 우리의 북한 연고권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북의 레짐 체인지가 자칫 강대국의 개입을 부를 수도 있겠군요.

“물론이죠. 중국은 주한미국의 동향을 지켜볼 거고요, 또 통일된 한국이 국가이익에 미칠 유불리를 계산할 겁니다. 중국은 틀림없이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개입할 거로 봅니다. 이때 최대 명분으로 작용하는 게 북핵이겠죠. 미국과 중국은 대량파괴무기(WMD)를 해결하려고 개입하게 될 겁니다.”

―미·중의 개입을 피하고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현재로는 방안이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 스스로 핵이 이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지도자에게 핵을 선택하지 않도록 만드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인데, 그럴 가능성은 지금으로는 ‘제로’입니다.”

―그러면 큰일 아닌가요. 내년 북한이 당 대회를 기점으로 핵보유국임을 공식 천명하고 핵의 실전 배치를 과시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될 텐데요.

“그러면 핵 보유 도미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서두르겠지만 북한이 남쪽 바다로 와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로 이를 무력화할 거고 그러면 남한 내에는 핵 보유 주장이 일어날 거고요, 미국은 핵우산을 접고 한·미 관계는 틀어지겠죠. 중국으로서는 한·미·일 삼각관계에서 한국을 떼어내는 좋은 기회가 될 거고요. 그러면 일본도 핵무장을 들고 나오고 동북아는 병 속의 전갈처럼 핵을 갖고 꼬리를 물면서 뱅뱅 도는 상황이 옵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북핵의 근본적인 해법은 뭘까요.

“강조하건대 가장 좋은 해법은 북 당국이 제일 싫어하는 방법입니다. 북핵 주민들이 의식화돼서 ‘핵을 갖는 게 우리 체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게 하고 핵 보유를 외치는 지도자를 택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려 북의 핵 보유는 결국 올 것 같습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비극적인 결론을 궁극적으로 타개하기 위해, 또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북한 주민 안에 우리랑 얘기가 통하는 세력들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통일 전 서독이 추구했던 ‘접촉을 통한 변화’인 셈이다. 그에 따르면 북한도 이제 침투 공간이 많아졌다. 북한 주민의 휴대전화 소유가 370만 대나 되고 폐쇄성의 강도도 많이 약해졌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런 공간을 이용해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는 노력을 하고 남북이 서로 우리 문제를 우리가 해결해야겠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다른 국가들이 개입할 여지가 줄어든다고 그는 역설했다.

―교수님은 남북 교류 확대론자시죠. 교류의 원칙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북한이 ‘공식적으로’ 무엇을 달라고 요청할 때 우리가 줍니다. 둘째 반드시 대가를 요구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희토류를 요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셋째 우리가 북에 뭔가를 줬다는 사실을 남북 전체가, 특히 북한 당국이 알아야 합니다. 문화일보 지면에 ‘오늘의 대북지원현황판’ 같은 걸 만들어 누구는 얼마 보냈다는 것을 알려주면 어떨까요. 북 당국이 당연히 알게 될 거고, 중간에서 가로채는 사람도 없어지겠죠.”

―독일의 통일이 남북 통일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동독과 서독은 바닷물과 민물을 합치는 작업이었죠. 하지만 남과 북은 물과 기름을 합치는 작업입니다. 독일 통일에서 잘못 얻은 교훈 중 하나는 경제통합만 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군사통합이 되지 않으면 도루묵입니다. 북한에는 120만 정규군과 주민 4명당 한 명꼴로 준군사조직이 있습니다. 890만 정이나 되는 소총이 있어요. 통일 후 동독 측이 무기 신고를 받았는데 단 한 정도 부족한 게 없었던 것은 동질성을 바탕으로 군사통합이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동질성 회복이 돼 있지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 군사통합 없이 경제통합만 추진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김 교수의 통일론은 ‘동질성의 회복’보다는 ‘이질성의 공존’을 먼저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통일론과 크게 다르다. 서로 다른 두 개가 소통하는 ‘통이(通異)’, 통일(統一)에 앞서 ‘통이’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논지다. 독일 통일이 우리의 모델이 되기 힘들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독일은 통일되기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국민이 오갔다. 동독 전체 인구 1600만 명 가운데 4분의 1인 400만 명이 서독을 방문했거나 서독인들의 방문을 받았다. 이는 몇 년에 한 번 극소수의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하는 우리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김 교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통일 담론”이라고 말했다.

―5·24 대북제재 조치 존폐를 놓고도 논란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5·24 조치를 내놓은 지 5년이 지났습니다. 환경이 변했으니 선언의 의미가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폐기냐 유지냐’는 이분법적 고민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치’를 하는 게 좋다는 생각입니다. 분단 후 지난 70년 동안 이뤄진 정부의 대북 조치에 의해 다음 조치가 영향을 받은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독자적 상황에서 독자적인 새 조치를 만들었습니다. 5·24는 지난 정부의 조치였습니다. 새로운 조치를 내놓으면 통일대박론을 외친 박근혜 대통령의 부담도 덜게 되지 않을까요.”

―통상 진보와 보수를 구분할 때 북한 관련 3대 이슈에 대한 견해를 봅니다. 권력 세습, 핵, 인권문제입니다.

“세습은 물론 비판하지만 그게 현실이라는 점 또한 알아야 합니다. 그게 나쁘다고 해서 북 체제를 무조건 비난해봤자 남는 게 없어요. 북핵은 우리에게는 재앙입니다. 안보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벌써 해결했어야 했습니다. 인권은 국제사회의 잣대를 들이대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잣대로 들이대는 게 중요합니다. 역대 정부가 보편적인 잣대로 인권문제를 재단해왔지만 단 하나도 개선된 게 없지 않습니까.”

―교수님은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통일정책위원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혹은 통일대박론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박 대통령이 출범 때 4대 국정 기조 중 하나로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내세운 건 대단히 고무적입니다. 다른 국정 기조는 모두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등 네 글자로 이뤄졌는데 이 부분만 여덟 글자로 채워졌어요. 그걸 유심히 봤습니다. 임기 내에 큰 욕심 안내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통치철학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통일대박론 얘기하고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었을 때까지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 얘기가 너무 급격하게 미래로 옮겨갔습니다. ‘담론 형성’이 필요한 시점에 바로 ‘통일 용역’으로 가면서 지금은 통일논의가 실종된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김 교수는 “지금이라도 당국과 통일준비위원회가 현실적인 통일담론을 만들어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일 논의는 남과 북이 처한 현실에 천착해서, 차근차근 끈질기게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김 교수의 말 속에 절망의 동산에서 희망의 광석을 캐내려는 근기(根氣)가 느껴졌다.

인터뷰 = 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