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국토개발, 평양·나진 KTX 연결될 ‘통일 이후’ 내다봐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막중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이 지난 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를 거닐며 국토와 도시개발에도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최막중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

대한민국에서 국토와 도시개발을 이야기하면 ‘난개발’이 떠오른다. 지난 1960년대 이후 고농축 산업화로 경제 발전을 이뤄 오면서 국토와 도시개발은 치밀한 사전계획을 통한 단계적인 접근보다는 ‘실용(효율)’이 강조된 ‘선(先)개발 후(後)수습’이 많았다. 효율적인 산업화를 통한 국가 발전이 시대 정신이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수출주도형 국가 건설을 위한 공단과 항만 배치, 고속도로 건설은 속전속결이었고,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인한 도시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는 주택수급 계획 없는 주택정책을 초래했다. 오늘날 신공항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둘러싼 갈등, 세종시와 혁신도시 논란, 비효율적인 도시개발에 의한 주택문제 등은 산업화 초기부터 잉태됐던 셈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과거의 축적된 국토와 도시개발 경험을 토대로 ‘개발 패러다임’을 혁신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국토 개조보다 국토 보존, 도시개발보다 지속가능한 도시 만들기에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물론 남북통일을 전제로 한 국토·도시계획도 언제나 화두가 돼야 한다. 지난 7일 관악산 기슭 서울대 캠퍼스에서 만난 최막중(55·서울대 환경대학원장)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은 “이제 우리나라 국토·도시계획은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며 “남북통일이 됐을 때 북한 땅을 어떻게 보존·개발·관리할 것인가를 미리 준비해 놓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통일 이후 국토개발의 전제로 북한 주민들이 납득할 만한 토지문제 해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북한 인프라 개발 이전에 북한 주민들이 만족할 만한 토지·주택 등 부동산 문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며 “북한 부동산에 대해 실향민 등 남한의 입장이 있겠지만, 북한 주민들이 반대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3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최 회장은 통일시대 국토개발과 북한 부동산 문제, 메트로폴리탄 서울과 수도권 도시문제, 부동산 시장과 집값, 해외 도시 수출, 건축 안전, 도시 건물들의 건축학적 문제 등에 대해 스스럼없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은 현재 ‘섬 아닌 섬’이라며 남북관계를 개선, 북한 인프라 구축을 통해 ‘대륙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대박론과 국토개발 문제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나라(남한)는 지금 섬입니다. 분단된 한국은 인구 구조로 보나 지정학적 위치로 보나 굉장히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지요.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 통일을 통해 북한 인프라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통일을 통해 ‘섬’을 ‘대륙’으로 연결시켜야 국가가 융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문제를 감성적으로 활용하기 이전에 북한 국토개발과 부동산 문제에 대해 지향점을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토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선결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북한 주민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합의점을 찾아야겠지요. 실향민 등 남한의 입장이 있지만 이를 내세우기보다 북한 주민이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합의점을 도출해야 통일의 걸림돌이 해소됩니다. 북한 부동산 연고권을 주장하는 남한 주민은 다른 방법으로 보상하는 방안을 찾으면 됩니다. 북한 인프라 개발은 이와 같은 북한의 부동산 문제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추진이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국토개발을 통일과 연계했을 때 향후 남한의 국토개발계획, 북한 인프라 개발은 어떤 형태와 방향으로 가야 하고, 통일시기에 가장 중요한 도시는 어디라고 봅니까.

“우리는 미리 통일 이후까지를 내다본 국토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통일 후 부산과 목포, 그리고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KTX가 평양과 신의주, 원산과 나진·선봉에 각각 도달하려면 서울과 수도권을 어떻게 통과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의 안목을 갖고 국토·도시공간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죠. 당장 서울역, 수서역과 삼성역 등의 기능과 공간 개발도 통일 후 KTX의 남북한 연계를 염두에 두고 구상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서울과 평양을 잇는 약 200㎞의 축을 한반도의 중심축으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정도 거리라면 KTX로 1시간 이내에 오갈 수 있으므로 서울∼평양을 하나의 거대한 경제권으로 키울 수 있을 겁니다.”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는 지난 시대 우리나라 국토와 도시계획·개발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학회는 앞으로 남북통일 시대를 아우르는 국토 장단기 개발의 첨병 역할을 할 것이다. 회원 6000여 명의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를 이끌고 있는 최 회장은 애초 서울대 건축학과 출신 건축학도였지만 민간 건설사에 잠시 몸담은 이후 대학원에서 도시계획을 전공,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래서 그는 건축은 물론 도시개발, 부동산 문제에 대해 해박한 식견을 갖고 있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다양한 위원회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근혜정부 들어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와 저금리 기조로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주택 공급과잉 문제가 불거지며 주춤하고 있는데요.

“서승환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방향 설정이 괜찮았습니다. 신도시 개발을 중단하는 등 과거와 같은 물량목표 위주의 공급정책을 지양하고, 수요자 위주의 정책, 중산층 대상의 임대주택 공급 등 메뉴를 다양화한 접근법이 효과를 나타낸 것이죠.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안정될 것입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주택시장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부동산 시장은 이제 정부가 규제나 공급 정책 등으로 빠르게 개입하기보다는 자율적인 조정 과정을 거치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는 조정자 역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죠.”

―역대 정부마다 중산층 서민을 위한 주택정책이 바뀌어 왔습니다. 국민 입장에서는 다 똑같은데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새로운 주택정책이 나오는 것처럼 포장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라고 봅니까.

“정부 정책을 너무 경쟁적으로 브랜드화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주택정책도 일관성, 예측가능성이 중요한데, 유사한 내용에 새로운 브랜드를 입혀 ‘보여주기’에 급급한 측면이 있습니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해 ‘국민’ ‘보금자리’ ‘행복’ 등 너무 다양한 이름이 붙었다 사라졌다 하고 있습니다. 이미 봐왔듯이 ‘뉴타운’이라는 브랜드는 사실상 폐기됐습니다. 정권마다 추구하는 주택정책의 브랜드화는 지속성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동산 시장은 특정 브랜드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을 만큼 거대하기 때문에 주택정책의 브랜드화는 단지 보조적·보완적 역할만 해야 합니다.”

―지난 5월인가 박근혜정부의 부동산 정책 평가와 과제 세미나를 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평가한다면…. 또 향후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제 부동산 시장은 한마디로 ‘과열이다, 과잉 공급이다’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역별로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곳은 주택 청약경쟁률이 수백대 1이지만 다른 곳은 미분양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전국적으로 동일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지역별로 모니터링을 하되 인내를 갖고 개입하는 수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죠. 정부는 가능한 한 시장 자율에 맡기면서 과도한 면은 견제하고 모자란 면은 지원하되 단기적 시각의 냉·온탕적인 주택정책은 지양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주택정책에 관한 한 정부 역할이 너무 큽니다. 공공이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부작용도 있는 만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정부가 주택문제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중산층 주택문제 등은 과감하게 민간에 맡기되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역할만 하면 되고, 최하위계층 주택문제(주거급여 등)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의 세금이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저소득층 공공임대주택 등에 국가가 얼마나 부담하는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지요.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는 돈을 공기업에 숨길 이유가 없습니다. 사회복지 차원에서 들어가는 비용인 만큼 솔직해질 필요가 있지요. 정부는 앞으로 1가구 다주택자에 대한 과세 형평성, 고령 유주택자의 건강보험료 문제 등에 대한 정책도 내놔야 합니다. 특히 1가구 다주택자를 투기혐의자로 보지 말고 임대주택 공급자로서 역할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전세주택 시장이 소멸단계에 접어든 만큼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뿐만 아니라 주택 리츠를 활용한 임대주택 공급, 그리고 1가구 다주택자에 의한 민간임대주택 공급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동산 관련 세금에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중복과세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중복과세 여지가 많은 부분입니다. 원칙적으로 재산세는 ‘응익(應益)의 원칙(국가·공공 등의 혜택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 종합부동산세는 ‘응능(應能)의 원칙(낼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부과하는 것)’에 의한 과세여야 하는데, 이러한 과세 원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2개의 세금을 내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을 과다하게 가진 이들에게 세금을 중과하겠다면 정직하게 가야 합니다. 부유세로 가려면 아예 그렇게 하겠다고 표방해야 한다는 것이죠.”

최 회장은 서울 출신이다. 초·중학교는 물론 고교(용문고)도 강북권에서 다닌 서울 토박이다. 할아버지가 4대문안(중구)에서 사업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서울이라는 도시의 발전과 도시계획 등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높다. 서울시와 각 구의 도시 관련 사안에 대한 자문도 꾸준히 하고 있다.

―서울은 물론 지방도시도 도시계획, 낙후지역 개발, 기존 도심재생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도시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까.

“서울은 이미 도시재생을 위한 여러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방도시, 특히 기존 지방 맹주도시와 산업화를 이끌었던 도시들입니다. 대구, 광주, 전주, 청주 등 기존 맹주도시들은 지방의 중심 기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KTX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역의 허브도시 역할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죠. 이런 도시들은 보다 광역적인 도시계획을 통해 주변 도시들과 네트워크로 연계된 도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울산, 포항, 창원, 거제 등 산업화 도시들도 급격히 노후화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를 먹여 살린 도시이지만, 이제는 중국 등과의 경쟁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위기의 도시로 가고 있습니다. 이들 도시도 혁신전략을 통해 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도시재생이 한창인 서울시의 발전방향에 대한 견해는 무엇입니까.

“세계화 추세에 따라 도시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서울은 세계 도시로서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일본 도쿄(東京), 중국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등과 겨뤄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견인해야 할 임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런던이 전 세계 핀테크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상하이가 자유무역구를 통해 전 세계 자본을 끌어들이고, 도쿄가 2020년 올림픽을 통해 재도약을 모색하고 있는 등 세계 경쟁도시들이 탈바꿈하는 시기에 서울은 상대적으로 정체돼 있습니다. 서울은 상주인구에만 의존하는 도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 아시아를 선도하는 국제도시가 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서울은 강남의 국제업무 기능을 확실하게 확충해 나가는 한편, 종로·중구의 옛 한양도성의 보존과 복원을 통해 역사문화가 살아 숨 쉬는 전통도시의 면모도 과시해야 합니다. 특히 서울을 세계 모든 기업의 테스트마케팅시티(시제품 출시 도시)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한국전력 부지 개발을 둘러싼 서울시와 강남구의 갈등을 비롯, 전국 곳곳에서 지역개발을 둘러싸고 반목과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느 지역이나 지역민이든 소지역주의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전체가 먹을 수 있도록 파이를 키워야지, 지나치게 자기들의 주장만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특히 세계화·개방화 시대에 중국, 일본 등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좁은 국토에서 지역 이기주의의 확산은 ‘제로섬 게임’이 아닌 ‘마이너스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단 지역 이기주의뿐만 아니라 중앙 부처 간 이기주의, 분파주의도 시급히 없어져야 할 악폐입니다.”

―지난해인가 ‘장사 잘되는 서울’이라는 표현으로 기고를 한 적이 있지요. 도시계획 전문가인데 도시를 장사와 연관시킨 것에 약간 생소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도시계획이 규제를 통해 땅값을 낮춘다거나 장사를 못 하게 한다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오히려 도시계획의 목표는 지역사회 전체의 토지 부가가치를 높이고 비즈니스를 활성화하는 데 있습니다. 관건은 지역사회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특정 개인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도시계획을 통해 차도의 폭을 줄이고 보행로를 넓히는 경우 자동차 운전자에게는 불편함을 초래하겠지만, 보행환경을 보다 안전하고 쾌적하게 만듦으로 해서 지역상인들의 장사에는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도시계획과 장사는 상호보완적입니다.”

―노후도시 개량을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들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도시정비 방안이 있는데 ‘종(주거지역 분류 기준) 상향’, 용적률 거래를 허용하는 ‘결합건축제’ 등 어떤 방법이 효율적이라고 봅니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최근 도시재생이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시재생은 지난날과 같은 물리적인 개발과 정비수법만으로는 쇠퇴한 지역을 활성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당장 재개발 과정에서 용적률을 높여 종전 가구수보다 많은 주택을 건설하더라도 이 주택들이 분양되지 않을 위험성이 있다면 재개발은 제대로 추진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종전보다 더 크고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그 지역만이 갖는 독특한 매력을 살려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때로는 옛길을 보존하거나, 오래된 건물들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거나, 지역청년들의 스타트업을 위한 공동작업공간을 만들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노력이 경주돼야 합니다. 이러한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해당 계획구역에 맞는 개발방향을 설정하고 필요시 용적률을 올려 주거나 종을 상향해 주는 것도 개발 부담을 덜어 주는 방안입니다.”

최 회장은 도시계획 전문가답게 수시로 논문 등을 통해 국토와 도시개발 문제점과 방향을 제시한다. 대표적으로 ‘재건축 규제의 허와 실’이라는 책자에서는 재개발·재건축의 경제논리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그에 근거해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과 제도의 문제점을 파헤쳐 호평을 받았다. 또 도시계획 분야의 교재로 널리 사용되는 토지이용계획론, 도시개발론 등에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은 효용성을 다했다고 봅니까. 아니면 여전히 기존대로 존치해야 한다고 보나요.

“그린벨트 문제는 그동안 존치와 폐지의 양비론적 논리가 지배해 왔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린벨트 실태와 공과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그린벨트는 상당 부분 ‘비닐벨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 실태가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분당 등 5대 신도시는 그린벨트 바깥에 세워졌는데 그러고서는 판교신도시, 위례신도시를 비롯해 보금자리주택 등이 그린벨트를 야금야금 잠식했습니다. 이제 ‘그린’의 실태가 어떻고 ‘벨트’는 계속 필요한지 등에 대해 충분히 평가 토론해서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국토계획 전문가로서 최근 확정된 제주2공항과 제2경부고속도로 문제에 대해 평가해 주십시오.

“제주도의 경우 한국을 넘어 세계의 자연문화유산이 될 만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개발할 곳과 보존할 곳을 확실하게 구분해 제주의 독특한 환경을 보전하면서도 가능한 한 많은 방문객이 찾아와 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제주2공항 계획은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지요. 기존 경부고속도로 중 수도권 구간은 이미 포화 상태이므로 제2경부고속도로에 대한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습니다. 이번에 이 문제를 서울∼세종시 연결이라는 문제와 함께 엮은 것은 잘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경부고속도로의 교통 분산과 세종시로의 직접 접속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으니까요.”

―우리나라 국가발전, 국토개발은 선진국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을 개도국에 나눌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모델이 선진국과 차별되는 고유한 모델로 정립돼 있듯이, 우리의 국토개발 경험도 ‘K-시티’ 등 세계가 주목하는 K-모델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불과 약 40년 만에 전 인구의 90%가량을 수용하는 도시들을 만들어 토지, 주택과 도로, 상하수도 등 인프라의 절대 부족 문제를 해결해낸 우리나라의 성과는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귀중한 사례이고, 특히 개도국에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례입니다. 이런 경험을 제대로 정리해 이론으로 만들어 개도국에 전수하고, 통일 이후 북한 개발에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도시 및 부동산 개발의 트렌드 혹은 개발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도시 및 부동산 개발의 트렌드는 대량생산이 아닌 다품종·소량생산 방식으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똑같거나 유사한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것, 나아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골목길 벽화가 유행이라고 해서 또 다른 골목길 벽화를 만들면 영원히 ‘짝퉁’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부여하는 희소성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 도시 및 부동산 개발도 좀 더 소프트해지고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주택정책은 공급자 위주였으며 수요자 맞춤형 주택정책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득계층별로 차별화된 주택정책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주택정책은 최하 소득계층에서부터 중산층은 물론 최고 소득계층까지를 모두 겨냥한 전방위적인 정책이었습니다. 저소득계층의 주거복지 문제는 시장에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당연히 정부가 개입해야 할 몫이었지만 최고 가격의 주택까지 사회적으로 문제 삼으며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징벌적 정책을 쏟아낼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정부가 분명하게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저소득층, 간접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중산층,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할 고소득층을 구분해 주택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국토교통부 미래국토포럼에 참여한 것으로 아는데 미래 우리나라는 어떻게 가야 합니까.

“미래 국토를 생각할 때 가장 큰 위협요인 중 하나는 저출산·고령화로 대표되는 수요 및 구매력 감소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상주인구가 아닌 유동인구의 관점에서 해법을 모색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국경을 초월한 개방형 국토전략을 펼쳐야 합니다. 요우커(중국인 관광객)가 명동 바닥을 훑고 지나가면 상권이 되살아나듯이,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대도시들을 세계인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펼칠 수 있는 구조로 탈바꿈시켜야 합니다. 축소도시 또는 과소도시가 우려되는 지방 중소도시들은 오히려 인구가 적어 방문객들에게 번잡하지 않고 쾌적한 힐링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역발상이 필요합니다.”

인터뷰 = 김순환 차장(경제산업부) s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