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금강산관광, 안전보장 없인 제재 풀어도 아무도 안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 장관실에서 2시간여 진행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북정책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 “핵을 포기하는 것이 북한 안보에도 도움 된다는 메시지를 계속 주면서 끌고 갈 수밖에 없다. 왕도가 없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홍용표통일부 장관

홍용표(51) 통일부 장관은 자칭 ‘올빼미파’다. 비둘기파도, 매파도 아니라는 의미다. 왜 홍 장관은 스스로 올빼미가 돼야 했을까. 힌트는 홍 장관이 처한 현실적 위치에 있다. 통일부의 존재감, 나아가 통일부 역할과 관련돼 있기도 하다. 박근혜정부의 외교안보팀에서 차지하는 위상,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북한의 카운터파트로서 뭔가를 만들어 내야 하는 고뇌, 미국과 중국 간 패권 충돌을 조정(aligning)해야 하는 부담감이 한꺼번에 녹아 있다. “올빼미는 지혜의 상징으로 통해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올빼미파라고 할 때 전략적 상징 의미도 크죠. 비둘기도, 매도 아니고 균형감각을 갖고 정책을 펴나가겠다는 의미입니다.”

홍 장관이 지난 1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강조한 말이다. 좋게 말하면 솔로몬의 지혜 찾기를 지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런데 홍 장관 특유의 ‘올빼미론’을 들으면서 통일부의 처지가 오버랩되는 이유는 뭘까. 이때 말하는 지혜는 보통 ‘센 자’와는 상관관계가 떨어진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강자들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살아남기 전략 성격이 더 강하다. 실제 통일부는 한때 정부조직 개편에서 부처가 없어질 뻔한 적도 있다. 요즘처럼, 아니 정부 출범 이래 3년이 다 되도록 통일부 주 업무인 남북교류·협력에서 큰 진전이 없으니 존재감에 대한 밖의 눈총은 더 따가웠다. 업무와 관련해서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에, 외교부, 국방부에 치이는 경우가 적잖이 들려온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나 외교안보관계장관회의 때는 다양한 방법론과 노선이 충돌한다. 저마다의 통일론을 지닌 국민들 사이에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에 기초한 남남갈등도 잦다.

그러니 홍 장관이 장관으로서의 소임과 통일부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올빼미는 피할 수 없는 선택지라는 느낌도 들었다. 굳이 한마디 수식어를 붙이자면 ‘공세적’ 올빼미다. 생존을 넘어 적극적으로 꼬인 실타래와 최대 난제를 풀어 국가현안 해결사로 자리매김하려는 의지가 강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정부서울청사 장관실에서 2시간여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랬다.

―오랜만에 통일부의 존재감을 과시할 만한 남북행사가 있었는데 결국 실패했다. 남북 차관급 회담(11∼12일, 개성) 성과로 8·25 고위급 합의를 이어가고 새로운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 마련을 기대했을 텐데 성과 없이 끝났는데.

“이번 당국회담에서 당장은 합의 없이 결렬됐지만, 앞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서 의도한 것과 8·25 합의 사항을 계속 이끌어가는 게 중요하다. 북한을 설득하고 새로운 남북 관계로 가는데 사실 왕도는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속 일관성을 갖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이번 회담에서도 좀 더 얘기하면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그렇게 가야 한다. 이번에 어쨌든 결론을 못 내렸는데, 북한이 그만큼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강하게 제기한 것은 그들에게 필요한 측면이 있어서다. 그렇다면 우리가 요구하는 조건들, 특히 관광을 재개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야 할 걸로 본다. 굉장히 어려움이 많겠지만, 중요한 것은 의지라고 본다. 8·25 합의로 8월 위기도 뚫고 나왔지 않나.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다. 우리가 막무가내로 무릎 꿇으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남북 관계를 제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를 하라는 거니까 북한이 의지가 있다면 다음번 기회에 또 얘기해볼 수 있다.”

홍 장관은 이 대목에서 ‘현 정부 들어 통일부가 거둔 성과가 없다’는 평가가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성과 자랑을 이어갔다. 장관 부임 전에도 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맡아 관련 정책에 깊이 관여해온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는 현 정부의 남북관계를 8·25 이전과 이후로 나눠 평가했다. 유감스럽게도 8·25 동력을 이어갈 묘안에 대해 홍 장관은 속 시원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사실 8·25 합의는 나름대로 성과다. 물론 8·25 이전에 성과가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과가 없었다고 통일부가 아무 역할도 안 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남북 관계가 전부터 많이 꼬여있기 때문에 실타래를 어떻게 하나하나 풀어 가느냐가 중요하다. 통일부 존재감이 없다는 평가가 왜 나오는지 이해가 가지만 실제 장관이 돼서 일해 보니까 통일부가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업무는 전략 짜기부터 실질적 대화 준비까지 모든 것을 하더라. 38대 장관에 이르기까지 쌓인 북한과의 협상 노하우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밖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해 실패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지속해왔고, 앞으로도 지속할 정책이다. 교류협력이 안 되고 있다는 점만 보고 실패냐 성공이냐 평가하는데 신뢰프로세스는 단순한 교류협력뿐 아니라 북한이 잘못된 행동을 못하도록 하는 게 출발점이다. 과거 평화프로세스는 많았다. 그러나 실제로 도발로 평화가 깨진 것은 결국 신뢰가 부족해서였다. 신뢰를 쌓으려면 북한이 우선 잘못된 행동을 해서는 안 되고, 했을 때는 단호한 대응이 뒤따른다는 점을 초기 2년 동안 끊임없이 경고한 결과가 8·25 합의로 이어졌다. 단순히 대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인식에 기반을 둬 대화를 이끌어 가야 긍정적 의미의 신뢰가 쌓인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이 중단됐을 때도 북한의 일방조치가 잘못됐다고 확실히 말하되 대화로 푼다는 원칙을 갖고 대화를 계속 제의했고, 결국 대화를 통해 해결했다. 이산가족 문제와 금강산 관광문제를 그냥 맞교환하는 식으로 합의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이산가족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원칙까지 훼손할 수는 없지 않으냐.”

―8·25 합의를 실질적인 결과물로 만들어내기까지 동력이 약해 보이는데.

“상황 악화 방지와 현상 유지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8·25 합의는 여러 가지가 결합돼 나왔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민들이 이전과 다르게 북한이 잘못됐다고 말해줬고 여야도 같은 목소리를 냈으며 협상 과정에서도 북한에 이런 점을 많이 말하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는 평화 지키기와 평화 만들기를 같이 해나가겠다는 투트랙이다.”

홍 장관은 이번 차관급 회담 결렬이 완전히 판이 깨진 것으로 간주하고 싶지는 않은 눈치였다. 모처럼 만들어진 기회가 사라질까 봐 아쉬움이 큰 듯했다.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해온 홍 장관은 남북문제의 근본적 해결까지 지루하고 길게 이어지는 과정의 한 고비일 뿐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곳곳에서 원칙의 후퇴는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융통성 발휘의 수준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당장 결렬된 이유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인데 해결 가능성이 있나.

“북한은 일단 관광 재개에 합의하라고 하지만, 우리 국민이 사망한 사건이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없으면 하지 않는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책임 있는 조치에는 사과·재발방지·신변안전보장이 포함된다. 북한은 일단 재개에 합의하라고만 얘기하는데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절충점이 없어 보인다. 북한 설득 논리가 뭐냐.

“무엇보다 북한에 이 점을 특히 강조했다. 지금 재개한다고 해도 안전하다는 인식이 없으면 한국에서는 아무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부모들이 수학여행을 보내겠느냐. 우리 집부터 안전이 걱정돼 보내지 않는다. 그러면 관광 재개는 됐지만 북한이 원하는 바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 회담에서도 신변안전보장, 재발방지 등에 대한 실무회담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아무 대책 없이 금강산을 열면 대화야 한 번 더 하겠지만, 아무도 관광을 가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고 여러 비판만 많아지면 남북 관계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현 정권 내에 조건이 충족 안 되면 안 하는 건가.

“할 수가 없다. 어렵다고 눈 감고 가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짚어가는 게 필요하다. 원인이 해결 안 됐는데 넘어갈 수는 없다. 북한이 우리가 원하는 재발 방지책에 응해오도록 전략적 접근은 시도해볼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넘어가기 위해 사탕을 주는 방식은 아니다. 한반도 평화통일 목표로 가기 위해 풀어가야 할 부분을 어떻게 균형 있게 풀어가느냐가 중요하다.”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사과 문제와 5·24 제재 해제 문제도 같이 걸려 있다. 물밑대화 등을 통해 진전된 내용이 있는가.

“거기까지 논의 진전을 못 했다. 남북관계가 다 연결돼있기 때문에 당연히 얘기해야 하는데 북한이 대화를 진전시킬 의도가 별로 없었다. 어떻든 남북이 만나서 같이 얘기할 부분이다. 정부에서도 5·24 조치는 만나 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가장 큰 조건은 수많은 우리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기에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해 책임 있는 조치 등 이 문제 역시 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5·24도 만나서 이야기하고, 북한이 실제로 조치를 취하도록 만들어야지, 미리 전략을 얘기할 단계는 아니다.”

―5·24 조치와 관련해 나진·하산 프로젝트와 같은 북·중·러 합작사업, 개성공단 국제화 추진처럼 더 큰 틀에서 발전적으로 ‘덮어씌우기 해법’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논의도 있던데. 정부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내심 5·24 조치의 해제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

“5·24 조치를 했을 때도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은 예외로 했다. 현 정부 들어와서도 민간교류를 확대하면서 여러 가지 방북단이나 교류협력 사업을 하고 있다. 엄격히는 5·24 조치에 위배되는 부분이 있으나 진행하고 있다. 이건 은근슬쩍 덮어쓰기 하는 게 아니고 남북 관계에 있어 협력과 접촉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민족 동질성 회복이나 북한 주민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협력은 하겠다는 입장에서다. 개성공단 국제화 방안도 5·24에서 제외된다. 다만 개성공단이 북측 맘대로 일방적 조치를 취하면 닫혀 버리는 상황을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국제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외국 기업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제는 이메일·인터넷이 안 되고 통행·통관도 석기시대 같은 방법이라서 이를 풀기 위해 3통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문제가 해결돼야 차근차근 될 것이다.”

홍 장관은 5·24 조치에 대해 보통 알려진 것과는 다른 해석, 특히 북한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공들여 설명했다.

“5·24 조치는 교류협력을 가로막기 위한 게 아니다. 잘못해온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남북 관계를 가로막는 게 아니고 오히려 잘 관리해서 장기적으로 더 잘 가게 하는 조치다. 5·24를 해제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하지만, (별개의 트랙에서) 평화통일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한 조치를 할 수도 있다. 5·24 때문에 남북 관계가 안 되는 게 아니다. 북한의 소극적 태도 때문이다. 5·24 조치 아래서도 여러 교류협력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마치 5·24만 풀면 남북 관계가 좋아질 것으로 오해하는데 그런 개념이 아니다.”

―정부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어디까지인가.

“어디까지 된다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게 없다. 그 자체가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패를 노출하는 게 되고, 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민간교류 좀 한다고 하면 너무 ‘5·24 해제냐, 아니냐’라거나 ‘정부 입장이 바뀌었다, 안 바뀌었다’는 논란이 발생한다.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5·24를 대체할 덮어씌우기 방식의 해법을 얘기하고 있고, 솔직히 가능한 방법 중 하나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사과 문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이건 이전 정부의 문제냐, 현 정부의 문제냐가 아니고 대한민국의 문제다. 국민이 피해를 본 건데 어떻게 정권이 바뀐다고 넘어가느냐. 어렵겠지만 정공법으로 풀 수밖에 없다.”

홍 장관은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북한 모란봉악단의 중국 베이징(北京) 공연 취소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수소폭탄’ 발언 때문에 중국이 화가 난 때문인지, 이로 인해 중국이 공연 관람 인사의 격을 낮춘 데 대해 김 제1위원장이 몽니를 부린 건지 관측만 무성하다.

―진실은 뭘로 파악됐는가.

“솔직히 아직 모른다. 여러 설이 있고, 뭐가 유력하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서로 뿔이 났다면, 북·중 관계가 더 나빠지고, 남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이런 사건들이 북·중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 있는데 보다 오랜 역사 속 변화를 같이 봐야 한다. 북·러는 등락 폭이 컸지만, 북·중 관계는 서서히 높아졌다, 낮아졌다를 반복해왔다. 북·중은 2000년대 들어와 혈맹이 없어지면서 좀 다운됐다. 큰 흐름을 보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체제 이후 중국이 (북한을) 혈맹보다는 보통국가 관계로 생각하는 측면이 분명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러다 다시 올라가는 시점에 10월 류윈산(劉雲山) 당정치국 상무위원이 방북했다. 약간 개선 방향으로 가는 상황에서 이 사건이 터져 북·중 관계를 조금 끌어내릴 수는 있다. 하지만 큰 흐름을 보자면 확 나빠지지 않을 수 있다. 단기적 영향이다. 남북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중국 쪽이 막히면, 아무래도 북한의 전반적 대외정책이 소극적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의 4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시험 가능성은 더 높아진 것 아닌가.

“예단해서 말하기 어렵다. 남북, 한·중, 북·중 관계나 한반도 상황을 볼 때 여러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비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우리가 좀 더 선제적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 주도할 부분이 있다. 도발하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만약 북한이 핵실험을 다시 한다든지 도발한다면 중국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제재나 국제사회의 비핵화 협력에 중국이 더 적극 나서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라는 언급을 자주 한 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런 언급이 4년 동안 전혀 없다. 김정일보다 김정은이 훨씬 더 위험해 보이는데.

“그런 부분이 김정은 시기 들어와 커진 게 사실이다. 비핵화는 포기할 수 없는 부분으로 압박도 하지만 미래도 보여주고 대화도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국제사회를 다니면서 호소하는 내용도 이거다. 더 이상 도발하지 않게 막으면서 국제사회와 같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핵을 포기하는 것이 북한 안보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메시지를 계속 주고 끌고 갈 수밖에 없다.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고 고민이 많았지만 왕도가 없다.”

―미국 내에서는 북한을 핵보유국은 아니지만, ‘핵무기를 가진 나라’로 인정하고 협상해야 한다는 기류가 있는데.

“그런 측면은 있어 보이는데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한·미 간 협력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북한의 핵 고도화를 막고 비핵화로 가는 방향에서 한·미는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중 간 균형외교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처음에는 (청와대 참모들 논의 과정에서) 균형외교로 표현하지 않았다. 균형은 밸런싱(balancing)의 의미인데 우리는 원래 ‘조정·조율’이라는 의미에서 얼라이닝(aligning)이라는 말을 썼다. 밸런싱이 그냥 중간에 서서 ‘너도 맞고, 상대도 맞다’고 하는 느낌이라면 얼라이닝은 ‘둘 다 맞다’고 하는 게 아니고 우리 목표에 맞게 각각 다른 시각들을 잘 조율해서 끌고 간다는 개념이다. 얼라이닝을 통해 다 같이 도움되는 균형의 관계, 이런 게 목표였다. 또 밸런싱이 수동적 느낌이라면 얼라이닝은 능동적이다. 그런데 대외적으로 잘 설명이 안 되면서 잊어졌다. 일반적 균형이 아닌 다른 균형을 설명한다면서 말이 복잡해지니까 잘 사용이 안 됐다. 이는 균형외교의 오해를 낳은 아쉬운 대목이다. 어떻든 한·미, 한·중 관계는 잘 가고 있다고 본다. 한·미 동맹관계가 잘 유지되고 있고 한·중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좋다.”

홍 장관은 외교나 안보 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그 분야는 제가 하는 게 아니라서 말하기가 좀…”이라거나 “관련 부처에서 잘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특별하게 드릴 말씀이 없다”며 조심스러워했다. “대답하기 어렵다”는 대답이 많았다. 그래서 물었다. ‘통일부 장관으로서 NSC나 국무회의나, 외교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본인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홍 장관의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장관에 취임하면서 기자실에 가서 처음 얘기한 게 앞으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평가해달라는 것이었다. 대북 정책, 대화 전략을 통일부에서 다 만들고 있고 남북 관계를 끌고 나가는 과정에서 한 번도 다른 부처에 치인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통일준비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과 겹친다고 하는데 역할이 완전히 다르다. 통일 문제를 풀어가면서 안보, 군사, 외교적 측면, 국내 정치적 측면 등 여러 면이 있기 때문에 이를 잘 고려해서 빨리 어떤 안을 내고 왜 그 안이 필요한지 설명하지 않으면 여러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한 발짝 빠르게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자고 직원들에게 얘기를 많이 했다. 제가 목소리를 내는 측면에서 아무 문제가 없다. 북핵 문제는 중요한 이슈이고, 남북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같이 풀어갈 문제라는 인식에 차이가 없다.”

홍 장관은 전공분야인 북한 문제가 나오자 다시 표현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김정은 체제가 5년차에 접어드는 2016년에는 무엇에 집중할 걸로 보나.

“지난 4년 동안 김정은의 정책 방향은 대내 정치 쪽에 중점을 뒀다. 권력을 잡은 직후에는 공고화해야 하니 당연한 것이다. 특히 김정은의 경우 후계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권력을 공고화했으니 앞으로는 대외정책으로 나가지 않을까 싶다. 이미 대외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년 5월 7차 당대회 추진 발표도 있었다. 당대회는 보통 경제정책, 남북관계의 방향이 제시된다. 경제 계획을 말하기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대외협력관계가 필요한 때라고 판단할 수 있다. 물론 도발 가능성이 있고, 어디로 갈지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일반적 권력 속성을 볼 때 그런 쪽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는 유화적 움직임을 보인다는 의미인데 북한이 갈 길을 정치·경제·군사 측면에서 보자.

“김정은으로서는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를 열고 싶을 거다. 자기의 어젠다와 정치구호를 내세우고 싶어할 때다. 지난 10월 당 창건일 행사에서 1차 다지기를 했고, 내년 당대회를 통해서는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의 공식 선포가 이뤄지는 것이다. 아무래도 긴장이나 적대적인 관계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주변 환경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핵·경제 병진노선은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다. 당 조직이나 경제 쪽에서 세대교체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다만 경제전망에 대해서는 이중적 해석이 다 가능하다. 외형상 수치와 평양은 분명 좋아 보이는데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는 말도 있다. 자본 측면도 돈이 많이 돈다는 분석과 부족하다는 분석이 다 있다. 어쨌든 김정은으로서는 내년에는 경제 분야에서 주민에게 뭔가를 제시할 필요성이 크다. 먹고 살아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남북 관계도 개선 가능성이 높은가. 정상회담 가능성은.

“섣불리 기대하기는 어렵다. 김정은이 워낙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분위기를 좋게 하면서 관계개선을 유도할 때도 있지만, 남북 관계를 확 막고 벼랑 끝 전술을 카드로 활용해 풀어나가려는 전략도 보였다. 주변국과 협력해 우리가 더 원하는 방향으로 나오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남북 정상회담은 기본적으로 열려 있다. 분단의 아픔을 해소하고 평화를 이끌어가기 위한 실질적 논의를 할 수 있는 정상회담은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임기 내에 꼭 한 번 해야 하지 않느냐는 정치적 고려에 따라 검토하지는 않을 거다. 지금 정상회담을 얘기할 필요는 없다.”

―역대 대통령마다 나름의 통일론이 있는데 박 대통령은 아직 제시된 게 없다. 있는가.

“통일문제는 대통령 어젠다임에 분명하다. 박근혜정부의 4대 국정기조 가운데 통일 관련 표현은 ‘평화통일 기반구축’으로 돼 있는데 의미를 잘 볼 필요가 있다. 다른 국정기조는 다 네 글자인데 통일은 여덟 글자다. 굉장히 상징적 의미가 있다. 실제로 대통령직인수위에 있을 때 논란이 있었다. 디자인·홍보 쪽에서는 네 글자로 끊어버리자고 했다. 운율도 안 맞고 디자인도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도 왜 여덟 글자냐. 박 대통령은 평화통일은 당장 할 수 없는 거고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그래서 유지됐다. 통일은 꼭 해야 하는 것이지만, 성급히 나가서는 안 되고, 실제 지금 되지도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기초로 통일로 나가려는 것이다. 단순히 남북 관계 관리에 그치는 게 아니라 통일의 초석을 만들자는 의미다. 박 대통령은 3년차, 4년차라고 뭔가를 서둘러 한다, 임기 내에 뭘 한다, 골든타임이니 해야 한다가 아니고, 정부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상을 좇다가 허상을 좇는 게 아니라 현실의 한계를 냉철하게 인식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 제일 많이 통일 얘기를 하고 있다.”

인터뷰 = 김상협 차장 (정치부) jupit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