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사이언스>시속 150㎞ ‘빙판의 F1’… 내년 독자모델 ‘국산 1호’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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봅슬레이

봅슬레이는 ‘빙판의 포뮬러원(F1)’으로 불린다. 보통 130㎞ 이상의 스피드로 트랙을 질주하기 때문이다. 봅슬레이의 최고 속도는 150㎞에 달한다. 방향을 조종할 수 있는 작은 자동차처럼 생긴 차체에 몸을 싣고 꾸불꾸불하며 가파른 트랙을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온다. 그래서 봅슬레이 제작엔 첨단 과학기술이 동원된다. 유명 자동차 업체인 BMW, 맥라렌, 페라리 등은 봅슬레이를 제작한다. 유체역학을 고려해 스피드를 올리면서도, 최대한 안전하고 빠른 장비를 만드는 것은 자동차 기술 발달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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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는 100년 전부터 봅슬레이를 제작해 왔다. 영국 봅슬레이 대표팀은 슈퍼카 제작업체인 맥라렌이, 이탈리아 대표팀은 자국 자동차 업체인 페라리가 봅슬레이를 제작해 준다. 첨단 과학의 집결체이기에 대당 1억 원을 훌쩍 넘길 만큼 비싸다. 국내에선 봅슬레이가 만들어진 적이 없다. 봅슬레이 썰매는 크게 보디(차체), 섀시(골조), 그리고 러너(썰매날)로 구분된다. 보디는 다시 본체와 자동차의 보닛에 해당하는 카울링(후드)으로 구분된다.

지난해 10월 현대자동차가 봅슬레이 보디와 섀시 제작에 뛰어들었다. 한국 국가대표팀 전용 썰매를 만들기 위해서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메달 획득이란 기적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선수들이 새 썰매와 트랙에 적응하는 데는 1년 정도 걸린다.

한국의 1호 봅슬레이 제작 과정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현대자동차 봅슬레이 개발팀의 한 관계자는 “국가대표팀 전용 봅슬레이 제작은 모두 보안 사항”이라며 말을 아꼈다. 현대자동차뿐만이 아니다. BMW, 맥라렌, 페라리 등 오랫동안 봅슬레이를 제작해온 업체들도 지금까지 봅슬레이 기술을 공유한 적이 없다. 현대자동차가 지난 10월 대표팀에 기증한 썰매는 시험용일 뿐, 완제품은 아니다.

현대자동차는 국가대표의 체형에 최적화된 썰매를 만들고 있다. 현대자동차 개발팀 관계자는 “100가지 이상의 외형(보디)을 디자인했고, 시뮬레이션 횟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고 귀띔했다.

보디 규정은 매우 까다롭다. 봅슬레이는 F1과 마찬가지로 차체 공기역학적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돌기를 만들거나 핀을 부착하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러나 규정 안에서 최대한 스피드를 낼 수 있도록 연구를 거듭했고, 최근엔 F1 자동차처럼 전면부에 날개를 단 썰매가 등장했다. 맥라렌이나 BMW 등은 봅슬레이 제작을 위해 ‘윈드터널’까지 동원해 실험한다. 지름 6∼7m의 거대한 팬(선풍기)으로 바람을 일으켜 공기가 썰매를 타고 어떻게 흐르는지를 전산유체역학적으로 수치화해 실험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개발팀은 봅슬레이 보디의 소재로 SK케미칼과 공동으로 개발한 국산 탄소섬유를 사용한다. 탄소섬유는 일반적으로 로켓이나 슈퍼카 등의 외형을 제작할 때 사용된다. 일반 봅슬레이 제작에 사용되는 유리섬유(파이버글라스)보다 인장강도와 탄성계수가 높다. 현대자동차와 SK케미칼이 개발한 탄소섬유는 무게는 가볍고 강도는 더 튼튼하다. 이 때문에 강하게 부딪혀도 깨지지 않아 선수를 보호할 수 있다. 보디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게 아니고 수제작을 해야 한다. 공기의 저항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이음새 하나 없는 일체형으로 설계, 제작된다.

가장 중요한 건 평창동계올림픽의 트랙이다. 코스 형태, 트랙 주변의 날씨 등에 따라 레이스 환경이 변한다. 따라서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썰매를 만들기 위해선 먼저 트랙이 완성돼야 한다. 이 관계자는 “봅슬레이 보디 제작을 위한 큰 그림은 그려 놨다”면서 “트랙이 완성돼야 트랙에 어울리는 맞춤형 썰매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보디 길이가 길수록 직선 구간에서 유리하고, 반대로 곡선 구간에선 짧은 게 유리하다. 선수나 트랙 특성에 따라 보디 길이도 조금씩 달라진다. 평창의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는 2016년 10월 완공될 예정이다.

썰매의 무게중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썰매의 골조인 섀시는 변형이 덜 되도록 강철로 제작되며 썰매의 무게중심을 ‘제어’한다. 무게중심이 낮을수록 선수들은 안정감을 느낀다. 그런데 코너를 돌 땐 무게중심이 위에 있는 게 유리하다.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 트랙에 직선 코스가 많다면 길고 무게중심이 낮은 썰매가 유리하고, 곡선 구간이 많다면 무게중심은 좀 높고 짧은 썰매가 알맞다. 이 때문에 트랙이 완성된 뒤 구조를 파악하고 선수들의 체형을 고려해 최적의 무게중심을 찾아야 한다.

러너는 자동차의 타이어와 같은 역할을 한다. 러너는 얇으면서도 최대 630㎏이나 되는 썰매 무게를 4기압이 넘는 악조건에서 견뎌야 한다. 러너는 강철로 만들어진다. 러너의 온도는 얼음을 녹이거나 트랙 변형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4도를 유지해야 한다. 얇은 날의 러너가 스피드를 내는 데 유리하지만, 날씨가 영상으로 올라가 트랙 표면의 얼음이 녹으면 얇은 날은 미끄러지지 않고 트랙에 박혀 버리기 때문에 속도가 오히려 줄어든다. 이 때문에 날씨에 따라 다양한 두께의 러너가 사용된다. 캐나다, 독일, 미국 등 봅슬레이 강국은 날씨나 트랙 환경에 따라 굵기가 다른 날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미국과 독일 봅슬레이 대표팀은 최소 50종류 이상의 러너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너 1개당 가격은 2000만 원이 넘고, 봅슬레이 1대당 최소 4개의 러너가 필요하다.

한편 봅슬레이 종목은 1884년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처음 열렸고, 1902년엔 같은 장소에 최초의 전용 트랙이 설치됐다. 1924년 제1회 샤모니동계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1880년대 봅슬레이 썰매는 나무로 제작됐으며, 1892년부터 금속 썰매가 동원됐다. 1950년대 이후 4인승과 2인승 경기로 나뉘었다. 규정에 따르면 4인승 썰매는 무게가 210㎏, 2인승은 170㎏ 이하여야 한다. 사람이 탑승했을 경우의 무게도 4인승 630㎏과 2인승 390㎏(여자 340㎏)을 넘을 수 없다. 썰매의 폭은 0.67m이며 길이는 4인승 3.8m, 2인승 2.7m 이내여야 한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