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부모 ‘친권 상실’ 선고 느는데 … “부모로서의 의무까지 ‘면책’ 우려”

“친권, 부모 권리·의무 다 포함”
새 친권자·후견인 지정되면
소송 등 법적 절차 거쳐야만
학대부모로부터 양육비 받아

친권상실해도 친자관계 남아
아이가 부양의무 지게될수도

최근 충격적인 아동 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는 가운데 학대한 부모에게 ‘친권 상실’을 선고하는 경우도 늘고 있지만, 오히려 친권 상실이 학대 부모들에게 ‘면책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2014년 9월 아동학대특례법 시행 이후 검찰 등이 학대 부모에 대한 친권 상실을 법원에 의무적으로 청구하게 되면서 친권 상실이나 친권 정지를 선고하는 경우가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 4일 인천지법은 5세 된 딸에게 뜨거운 물을 붓고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는 엄마 A(28) 씨에게 친권 상실을 선고했다. 11세 된 딸을 감금하고 학대한 아버지 B(32) 씨에 대해서도 검찰 측은 지난해 12월 29일 법원에 친권 상실을 청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친권 상실이 부모로서의 ‘의무’까지도 면책시켜 줄 수 있는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진녕 변호사는 “친권은 부모로서의 권리와 부모로서 해야 하는 의무가 같이 들어 있는 이중적인 용어”라며 “사실상 친권 상실은 아이에 대한 법적 권리를 포기한다는 의미보다는,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부모의 의무가 상실되는 부분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최근까지 법원에서 친권 상실을 쉽게 선고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학대 아동에게 새로운 친권자나 후견인이 지정될 경우 친권 상실된 학대 부모로부터 양육비 등을 받기 위해서는 소송을 제기하는 등 따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소송으로 양육비가 정해지지 않으면 사실상 아이에 대한 경제적 의무가 학대 부모에게는 없어지는 셈이 된다.

서울의 한 가사사건 전문 변호사는 “친권이 상실됐다 하더라도 아이에 대해 의무를 져야 하는 부모인 것은 맞기 때문에 경제적 책임도 져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경제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모호한 규정이기 때문에, 친권이 상실된 상태에서 학대받은 아이 측이 돈을 요구하지 않거나 양육비를 청구하지 않는다면 학대한 부모 입장에서는 따로 아이에게 돈을 지급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친권 상실이 친자 관계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나중에 아이가 성년이 됐을 경우 학대 부모에 대한 부양 의무를 지게 될 수도 있다. 차미경 변호사는 “친권을 상실했다 하더라도 친자 관계는 남아 있기 때문에 여전히 이 사이에서는 상속과 피상속이 인정된다”며 “아이가 친양자입양이 되어 친자 관계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법적으로는 상호 간의 부양 의무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친권 상실 제도와 더불어 제도의 허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아동보호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아동보호 상담센터 관계자는 “학대 부모에게 친권 상실을 선고하면 마치 큰 처벌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거나, 학대 부모의 친권이 사라지면 아이의 복지가 아주 좋아질 것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최근 많이 생긴 것 같다”며 “하지만 친권 상실 이후에도 아이가 겪어야 하는, 혹은 겪을 수도 있는 많은 어려운 일들에 대한 법적·사회적 보호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