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합작로펌, 외국 지분·변호사數 한국보다 많으면 안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 18일 여의도 법사위원장실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외국법자문사법과 관련해 면담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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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합작로펌 허용’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 논란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법률시장이 단계적으로 개방되고 있는 가운데 관련 내용을 규정하는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등이 자국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서한을 보낸 것에 대해서는 내정간섭 논란까지 불거졌다. 쟁점이 되고 있는 법 개정안 내용 등을 문답을 통해 알아본다.

1 외국법자문사법 내용과 연혁

FTA에 법률시장 개방이 포함되면서 외국법자문사법은 지난 2009년 제정됐다. 법률시장 개방으로 국내에 진출하는 외국 변호사들을 관리·감독하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제정 당시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3년 이상 법률 사무에 종사한 경력이 있는 법률가들에게 외국법자문사 자격을 인정하도록 했다. 외국 로펌들의 국내 사무소 설립을 허용했고, 국내 변호사들과의 제휴 및 동업은 금지됐다. 법률시장이 개방됐지만, 일반 재판 업무 등에는 외국 변호사는 아직 참여할 수 없고 자문 및 중재재판 대리 등만 할 수 있다. 한·유럽연합(EU) FTA, 한·미 FTA에 따라 올해 하반기부터 외국 로펌과 국내 로펌의 합작회사 설립 등이 가능해지는 3단계 법률시장 개방이 예정돼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2 한·EU, 한·미 FTA상 개방 내용

2011년 한·EU, 2012년 한·미 FTA로 국내 법률시장은 각각 협정 타결 5년 내에 3단계에 걸쳐 개방된다. 협정 발효 시 적용되는 1단계 개방의 경우 등록된 외국 변호사의 국내 활동과 외국 로펌의 한국지사 개설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발효 후 2년 내 시행되는 2단계 개방은 외국 로펌과 국내 로펌 간 사안별 협력 및 사건 공동처리를 허용하며 발효 5년 내 3단계 개방은 외국 로펌과 국내 로펌 간 합작투자기업 설립을 허가한다. 최근 논란이 된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은 한·EU, 한·미 FTA 발효에 따른 법률시장 3단계 개방을 이행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8월 제출한 법안이다. 특히 외국 로펌의 지분율과 의결권을 49%로 제한하는 내용을 두고 일부 FTA 체결 당사국 주한 외교사절들은 “지나친 자국 기업 보호조치”라며 수정을 요구하는가 하면 반대 측에서는 “주권을 침해하는 내정 간섭 행위”라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3 법무부 제출 법 개정안 내용

법무부가 지난해 8월 국회에 제출한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에 따르면 외국 로펌의 합작법인 지분율은 49%로 제한되고, 합작법인에서는 외국 파트너변호사(로펌의 주주격) 수가 한국 파트너변호사 수를 넘을 수 없다. 송무 및 대정부기관 업무, 공증, 노무, 지식재산권 등 등기·등록 관련 업무와 친족·상속 등의 국내법 업무도 합작 법무법인의 업무 범위에서 제외해 원칙적으로 관련 사건을 수임할 수 없도록 했다. 다만 이들 사건을 합작 법무법인에 참여한 국내 로펌이 단독으로 수임해 처리하는 것은 허용했다. 외국 변호사가 한국 변호사에게 업무 지시를 하는 것도 금지된다. 국내 법률시장을 보호한다는 취지다. 연간 외형거래액 100억 원 이상의 합작법인에는 고위공직자의 취업을 제한했다. 법률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합작에 참여한 국내외 로펌은 무한책임을 지도록 했다.

4 개정안 어떻게 만들어졌나

법무부는 3단계 개방을 위해 2014년 5월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위원회’(위원장 신희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발족하고 논의를 진행해왔다. 위원회에는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대한상공회의소, 법원, 법무부, 대한변호사협회 등이 참여했다. 위원회는 3단계 개방에 필요한 내용을 조문화하는 작업을 전담했다. 지난해 3월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 공청회’를 열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같은 해 4월 법무부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는 입법예고된 개정안 3개 조항에 대해 수정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합작 참여 국내외 로펌의 업무경력 요건이 5년에서 3년으로 줄었고 합작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의 경력 요건도 7년 이상에서 5년 이상으로 낮춰졌다. 또 합작 법무법인의 파트너급 변호사를 외국 로펌 측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한 조항도, 한국 파트너 변호사가 일신상의 이유로 퇴사했을 때 이 비율을 맞추기 위해 파트너급 외국법자문사가 강제로 물러나야 하는 사태 등을 방지하기 위해 3개월의 경과 규정을 뒀다.

5 개정안에 대한 미국 등의 입장은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에 대해 미국과 영국·호주·EU 측은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개정안 내용 중 합작 로펌 설립 시 외국인 참여자의 지분율과 의결권을 49%로 제한한 것과 합작참여자는 설립 후 3년 이상 운영 경력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에 대해 미국 등은 “한국 로펌들의 이익만 보호하는 규정으로 FTA의 개방정신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송무 업무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한 것도 개방 정신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방문해 자신들의 입장을 담은 서한을 공식 전달했다.

6 국내 법조계의 반응은

법무부는 개정안이 FTA 협정문에 위배되지 않고, 합작법인 외국 지분율 제한 등은 앞서 법률시장을 개방한 싱가포르와 일본 등의 선례를 따랐다고 밝히고 있다. 국내 변호사 업계는 법무부 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대한변호사협회는 18일 성명을 통해 “3단계 법률시장 개방의 차질 없는 이행을 위해 오랜 기간 각계 의견 수렴과 정당한 입법 절차를 통해 마련한 이번 개정안을 국회가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법조계에서는 법무부의 개정안은 지나치게 개방 수준을 낮췄고, 국내 대형 로펌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했다는 지적도 있다.

7 국내 해외 로펌 현황은

법무부에 따르면 2015년 12월 기준으로 영국계 로펌 클리퍼드 찬스(Clifford chance)와 미국계 로펌 밀뱅크 트위드 해들리 앤드 매클로이(Milbank, Tweed, Hadley&McCloy) 등 총 27개의 해외 로펌이 국내에 진출해 활동하고 있다. 특히 클리퍼드 찬스의 경우 외국계 로펌으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국내 법률시장에서 연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외 로펌은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거나 해외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경우, 해외에서의 소송 등과 관련한 법률 컨설팅 서비스를 주로 제공한다. 현재까지 국내에 진출한 해외 로펌은 규모가 작은 편이다. 소속 외국법자문사가 5명이 넘는 곳은 7곳에 불과하며, 1명인 로펌도 10곳에 달한다.

8 해외 법률시장 개방 사례

1998년 법률시장을 개방한 독일은 외국계 로펌에 의해 시장이 잠식된 상태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법률시장 규모를 가진 독일은 5대 로펌 중 자국 로펌이 1곳에 불과하며, 상위 10개 로펌 중 8개가 외국계 로펌에 합병됐다. 프랑스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법률시장을 개방하자마자 영국과 미국계 로펌이 진출해 자국 로펌을 잠식한 사례로 꼽힌다. 이에 반해 1987년 법률시장을 개방한 일본은 해외 로펌의 자국 진출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10대 로펌 중 외국계 로펌에 합병된 비율은 약 30%에 불과하다. 이는 첫 문을 연 1987년부터 2004년 지분 제한 철폐까지 17년간 점진적으로 법률시장을 개방하며 자국 로펌의 주력 분야를 키우고 보호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싱가포르도 2000년 법률시장 첫 개방 이후 지금까지도 자국에 있는 외국 로펌이 사건을 수임하고 수익을 배분할 때 자국 로펌에 유리한 규정을 두고 있다.

9 통상 마찰 가능성은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 중 미국 영국·호주·EU 등 외국 대사들이 문제로 삼고 있는 부분은 합작 로펌에 참여하는 국내외 로펌의 업력(業歷)을 3년 이상으로 제한한 부분이다. 법사위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애초 정부 입법예고안에서는 로펌 업력 요건으로 ‘5년 이상’을 요구했으나 심사과정을 거쳐 ‘3년 이상’으로 완화된 바 있다. 법률시장이 최종(3차) 개방돼 합작법인 설립이 가능해지면 한국 로펌에서 빠져나간 인력이 따로 로펌을 차린 뒤 외국 로펌과 합칠 수 있으므로 이런 ‘인력 유출’을 막자는 게 이 조항의 취지다. 하지만 외국 대사들은 ‘업력 요건’을 더 완화하거나 아예 없애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한국 로펌들의 이익만 보호하려는 반칙 안이며 FTA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외국 로펌 지분율을 49%로 제한토록 한 규정도 논란거리다. FTA에 역진방지(레칫) 조항이 있어 한꺼번에 개방하기보다 시행 경과를 보고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국내에 진출한 외국 로펌 등이 그동안 지분율 제한 철폐 문제를 지속해서 제기해온 내용이다.

10 법안 국회 통과 전망

외국법자문사법의 1월 임시국회 내 처리는 힘들 전망이다. 국회 법사위는 지난 7일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정부가 제출한 원안을 대부분 수용한 법안을 처리했지만 당일 오후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등으로부터 법안에 대한 문제 제기 입장을 전달받은 뒤,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하지 않은 상태다. 외국법자문사법 처리의 키를 쥐고 있는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우리 정부가 미국·호주 등 관련 국가들과 마찰이 예상되는 부분을 조정한 이후, 법안을 전체회의에 상정한다는 방침이다. 이 법사위원장은 “오는 6월 이후에 효력이 발생하는 협정이니 1월 국회 때 한 달 정도는 여유가 있다”고 말해 당장 법안 처리에 나서지 않을 뜻임을 밝혔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