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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재양의 우리말 뿌리를 찾아서 게재 일자 : 2016년 02월 01일(月)
개판 5분 전, 혼란 상태…‘개(犬)판·開板·改版’ 세가지 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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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 5분 전이었어.”

지난 1월 23일 제주공항의 북새통을 겪은 지인의 말이다. 32년 만의 폭설과 폭풍으로 항공편, 배편이 끊겨 발이 묶인 6만여 명의 관광객들이 공항 대기실에서 앉을 자리와 덮을 것, 먹을 것도 부족한 상태로 수십 시간을 견딘 것이니 이런 말을 할 만하다.

흔히 무질서하고 난잡하며 혼란스러워 통제할 수 없는 상태를 우리는 북새통, 전쟁통, 생지옥, 아수라장, 야단법석, 개판 5분 전 등으로 표현한다. 북새통은 북쪽에서 세찬 눈보라가 몰아쳐 정신마저 얼게 만드는 상태를 말하며, 전쟁통은 말 그대로 전쟁이 벌어진 판국을, 생지옥은 현세의 지옥이라는 뜻이다. 아수라장과 야단법석은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 아수라가 물고 뜯고 싸우는 처참한 곳이라는 말이 아수라장이며, 야단법석은 큰스님이 야외에 대형 부처님 걸개그림을 걸어놓고 임시로 단(무대)을 마련하여 설법하는 자리를 일컫는 것인데 이때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혼란스럽기 때문에 이런 의미가 생겼다는 것이다.

가장 속된 느낌이 드는 ‘개판 5분 전’의 유래는 세 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온 동네 개들이 고깃덩어리 하나를 두고 다투는 상태에서 유래했다고 흔히들 생각하는 것이 그 첫째다.

“사변 직후 아냐? 껌팔이 하던 놈, 양담배 장수하던 놈, 하다못해 뚜쟁이 하던 놈까지 있었으니까. 한마디로 개판이었지 뭐….”(박완서의 ‘살아있는 날의 시작’ 중)

이렇게 ‘개판’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개(犬)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5분 전’이 붙으면 뜻이 달라지니 올바른 유래는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개판 5분 전’에서 ‘개판’만을 떼어 사용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둘째는 6·25전쟁 중 부산으로 많은 피란민이 모여들었을 때 밥을 배급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밥솥 뚜껑을 열기 전에 “개판 5분 전”이라고 외쳤다는데 이때 ‘개판’이란 동물 개(犬)가 아닌 뚜껑을 여는 것을 뜻하는 개판(開板)을 말한다. ‘개판 5분 전’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혼란한 상태가 된 것에서 지금의 뜻이 생겼다는 것이다.

셋째는 인쇄에 관계된 유래다. 활자가 귀하던 옛날에는 출판할 때 일정 부수 출판 후 원판(原版)을 고쳐 판을 다시 짰는데 이를 개판(改版)이라고 했다. 판(版)을 고친다(改)는 뜻이다. 또 판(版)을 연다(開)는 뜻으로 개판(開版)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목판인쇄(木版印刷) 시대에 쓰던 말로 출판물을 처음으로 찍어내는 것을 뜻한다. ‘개판(改版)’ 전이든 ‘개판(開版)’ 전이든 출판 관계자들이 분주히 의견을 교환하고 마지막 점검을 하느라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개판 직전의 분주함과 시끌벅적함은 시간을 늦출 수 없는 신문 인쇄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신문 활판 인쇄를 하던 시절 ‘개판 5분 전’은 개판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치열한 상태였을 것이다.

이번 제주도의 경우처럼 천재지변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개판 5분 전’의 상황을 겪어야 하는 억울한 경우도 있지만, 허기를 채우지 못하는 아귀처럼 돈 되는 곳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개판 5분 전’을 연출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담산언어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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