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상엽의 인문학 건강론>스트레스는 ‘내 몸’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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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인 10명 중 9명 이상이 평소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결과가 있다. 특히 성인 중 40% 정도는 평소 보통 이상의 심한 또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스트레스’라는 바이러스가 마치 전염병처럼 한국에 창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자살률에서 압도적인 1위를, 스스로 건강하다고 여기는 비율은 가장 낮다는 통계 역시 위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스트레스는 압력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안팎으로 쏟아지는 압력을 견디고 있다. 물리학자들이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근원적인 4가지 힘이라고 말하는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 또한 태초의 스트레스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셈이다.

모든 물건들은 수많은 압력 속에서도 구조적인 힘의 분산과 기능적인 힘의 순환을 통해 생명을 영위한다. 이렇게 정상적으로 처리되어야 하는 압력이 어느 순간 일정량 이상의 중압과 압박으로 느껴지기 시작할 때 이것을 보통 스트레스라고 한다.

즉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스스로의 생리체계 내에서 정상적으로 처리되지 못하는 압력인 것이지, 압력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요컨대 스트레스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신체가 있을 뿐, 스트레스가 없는 인생이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한 명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어떤 신체조건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가?’가 되어야 마땅하다. 몇 가지 호르몬의 분비 유무와 다소의 문제를 가지고 신체의 스트레스 현상을 분석하는 질병학적 관점이나, 사회현상의 불안정요인을 중심으로 개인의 스트레스 상황을 규정하는 거시적 관점 이전에, 우리는 가장 먼저 인체에서 중압감은 어디로 전달되고 압박감은 어떻게 느껴지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는 심장(心臟)의 생리체계를 학습하는 문제이다.

동의학에서 심장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주한혈맥(主汗血脈)’이라고 한다. 심장이 땀(汗)과 혈액(血)과 맥동(脈)을 일관되게 조절(主)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표현된 땀이란 체내에서 체액의 삼투압현상을 말한다. 이를 생활상에서는 간섭(干涉)이라고 한다. 우리 삶 역시 끊임없는 삼투압 현상 속에 있다. 타인의 행위가 내 생활에 간섭하기도 하고, 내 행위가 상대를 간섭하기도 한다. 나 하나만 두고 보아도 몸과 마음이 서로 끊임없이 간섭한다. 이러한 무차별적 간섭행위를 신체적으로는 땀이라 하고, 이 관계방식을 신체가 습득(習得)하는 행위를 혈맥(血脈)이라고 한다.

주변의 간섭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학습을 통해 심장은 신명출언(神明出焉)한다. 그다음(神)을 긍정(明)할 줄 알고, 관계를 예측할 줄 아는 것이다. 신명이 나면 개규어설(開竅於舌)한다. 혀 구멍이 열린다는 것은 미각(味覺)이 뚜렷해진다는 것이고, 이는 체험의 밀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자각한다는 것이다. 결국 스트레스란 나 스스로의 정직한 체험을 통해 자기중심을 얼마나 잘 잡아가는가(君主之官) 하는 문제인 것이다.

카페방하 디렉터 lee_sy@egone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