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선종 2년 전인 2007년 10월 직접 그린 자화상 ‘바보야’ 앞에 선 85세의 김수환 추기경. 그는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 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라며 겸손해했다. 김영사 제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51년 9월 15일 대구대성당(현 계산성당)에서 사제 서품식을 마친 뒤 찍은 가족사진. 김수환 추기경 오른쪽이 어머니.
아, 김수환 추기경 / 이충렬 지음, 조광 감수 / 김영사
“만약 우리 정치가들이 이 예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국민을 업신여기고 자신들의 총칼의 힘만 믿는다면,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성경 말씀대로 그들 스스로의 칼로써 스스로의 죽음을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1987년 3월 8일, 김수환 추기경은 ‘민주화와 회개를 위한 9일 기도회’ 강론에서 작심한 듯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해 1월 발생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등으로 전두환 정권의 강압 정치가 민낯을 드러내던 때였다.
종교지도자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큰 어른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김 추기경은 이처럼 역사의 굴곡진 어귀마다 어김없이 존재를 드러냈다. 1971년 KBS가 생중계한 성탄절 미사 강론에서, 대통령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하는 유신 전초 작업에 대해 “오늘날 우리 겨레는 아무도 어떠한 의미의 독재를 원치 않는다”며 배포된 원고에 없는 내용을 말해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방송 중단 지시를 내린 일화는 유명하다.
순교자 집안으로 가난한 옹기장이의 아들이었던 그는 본래 신부로서의 삶에 회의를 품던 소년이었다. 2005년 소신학교 시절을 회상한 그의 일기는 “내 마음은 결혼하고 처자식과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사는 것이 꿈이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1953년 교황청 산하 가톨릭통신사인 피데스(Fides)의 대구교구 통신원으로 임명되면서 김 추기경은 깨기 시작했다. 그는 ‘가톨릭 액션’이라는 세계적 흐름을 일찍 접했다.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그리스도교 사회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 뮌스터대로 떠났다. 이때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를 유럽 한복판에서 맞았다. 공의회는 교회가 사회 정의에 대한 참여, 정치·사회·경제적 피압박 계층의 자유 회복 등에 대한 관심을 가질 것을 호소했다.
김 추기경이 귀국해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이때의 선행학습을 기반으로 한다. 가톨릭시보사 사장으로 관련 소식을 앞장서 알렸고, 귀국한 지 4년 만에 주교, 대주교로 임명되는 고속 ‘승진’을 했다. 그는 서울대교구장에 오르며 “교회는 모든 것을 사회에 다 바쳐서 봉사하는 세상 속의 교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교황청은 그를 세계 최연소 추기경으로 임명하면서 역할에 힘을 실어줬다. 1970∼1980년대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상징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먼저 밟고 가라”며 경찰을 막아선 김 추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각에서는 교회가 정치적 문제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김 추기경은 박정희 대통령과의 면담에서도 “사회가 윤리·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정부패로 썩어가는 데도 교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관만 하고 있다면 직무유기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라며 뜻을 분명히 했다. 훗날 그가 국가보안법 폐지가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청년들의 좌경화를 우려하는 등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변했다는 비판도 받지만, 민주화 이후 국면에서 그는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한 보루로 남으려 했다. 선종 직전에는 각막 기증을 약속하고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시대적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책은 2009년 2월 선종한 김 추기경의 7주기를 맞아 출간된 평전으로,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인정한 첫 공식 전기다.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등을 쓴 전기작가 이충렬 씨가 썼고,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의 권위자인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가 감수했다. 작가는 집필을 위해 일기에서부터 일간지와 잡지 등을 훑고 김 추기경의 선후배 신부와 지인을 찾아가 육성도 들었다. 책에 실린 360여 장의 사진 중 100여 장이 처음 공개되는 사진이다.
출생부터 박정희 정권 때까지를 담은 1권 ‘신을 향하여’와 그 이후를 담은 2권 ‘인간을 향하여’는 1100여 쪽에 걸쳐 김 추기경의 일대기를 샅샅이 풀어낸다. 김 추기경의 이름을 본래 김순한으로 지었으나 출생신고를 할 때 호적계 서기의 오기로 ‘수환’으로 바뀐 일화, 일제강점기에 일본 천황의 칙유를 들은 황국신민의 소감을 쓰라는 시험 문제에 ‘나는 황국신민이 아니므로 소감이 없다’고 썼다가 소신학교 교장이었던 장면 전 총리로부터 뺨을 맞은 일화 등도 소개된다. 책은 ‘왜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 무엇을 위해 사느냐’에 대한 질문이 절실한 오늘, 그 답을 담고 있는 한 인간의 이야기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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