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불편한 ‘소녀 등급제’, 누구를 위한 줄세우기입니까?

학창시절, 우열반이 있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끼리 모아 더 나은 결과를 내겠다는 복안이었죠. 학급 문 앞에 ‘우반’ ‘열반’이라고 붙여놓지는 않았지만 학생들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의 벽과 계급이 생기곤 했습니다.

케이블채널 Mnet ‘프로듀스 101’의 풍경은 이와 비슷합니다. 시청자들이 직접 뽑는 ‘국민 걸그룹’을 만들겠다는 미명 아래 46개 기획사에서 출전한 101명의 출연자 중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11인조 걸그룹을 선발하는 것이 목적이죠. 인지도가 낮은 101명을 평가하는 기준은 실력과 인기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순위를 매기는 건 당연한 과정이죠. 하지만 방식이 꽤 잔인합니다.

각 출연자는 A∼F등급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각 등급이 큼직하게 새겨진 옷을 입죠. 또 등급별로 입는 옷 색깔이 다르고 그들이 서는 무대의 높낮이까지 다릅니다. 일각에서는 이 과정을 쇠고기 등급 판정 과정에 비유하기도 하죠.

제작진은 ‘시청자들의 선택’이라며 은근히 그 책임을 떠넘깁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제작진이 보여주는 것만을 봅니다. 출연 분량이 많은 멤버의 인지도는 상승하고 투표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죠. 반면 ‘악마의 편집’의 희생양이 돼 ‘미운털’이 박히면 회생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과연 시청자가 뽑는 것일까요?

좀 더 냉정히 생각해 봅시다. ‘프로듀스 101’은 한국을 대표하는 걸그룹을 뽑겠다고 하지만 탄탄한 트레이닝 시스템과 양질의 연습생을 보유한 SM, YG, FNC엔터테인먼트는 참여하지 않았죠. 타 유력 기획사 역시 ‘즉시 전력감’은 출연시키지 않았다는 것이 가요계 관계자들의 중론입니다.

최종 선발된 11명은 CJ E&M과 손잡고 향후 10개월간 활동합니다. 하지만 ‘프로듀스 101’ 출신이라는 이유로 지상파 출연이 어려운 걸그룹이 한국에서 기반을 갖추지 못한 채 10개월 만에 한국을 대표하는 걸그룹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닐까요? 성공하더라도 10개월 후에는 회사별로 이해관계가 엇갈릴 가능성이 크죠.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는 이들에게, 유력 기획사에 속하지 못한 연습생에게 ‘프로듀스 101’은 분명 걸그룹의 일원이 되고 이름을 알릴 큰 기회일 겁니다. 하지만 몇몇은 이를 위해 의욕을 드러냈다가 이기적인 인물로 찍히기도 하고, ‘절박함’이 ‘집착’으로 매도되기도 하죠. 게다가 출연자들은 별도의 출연료를 받지 않고, 의도된 편집의 희생양이 돼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걸그룹이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열정 페이’에 만족하는 그들을 위해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편집해주길 기대하는 건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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