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 아니고 대기면성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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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수 울산대교수 저서‘노자’서 주장
“큰 그릇(道)은 정해진 꼴이 없다” 의미

“‘대기만성’(大器晩成)이 아니라 ‘대기면성’(大器免成)이 맞다.”

우리가 흔히 쓰는 ‘대기만성’(大器晩成). ‘지금은 어렵더라도 낙심 않고 노력하면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격려할 때 자주 사용하는 고사성어다. 중국의 성현 노자(老子)에서 유래한 이 말이 ‘대기면성’(大器免成)으로 보아야 옳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끈다.

박삼수(사진) 울산대 중문학과 교수는 최근 펴낸 ‘노자’ 역주·해설서 ‘쉽고 바르게 읽는 노자’(지혜의바다)에서 기존의 노자 번역에 오류가 적지 않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박 교수는 기존 노자 주해서들에서 “‘대기만성’을 대개가 익히 알고 있듯이 ‘큰 그릇은 더디 이뤄진다’는 뜻으로 옮기고 있다”며 “이는 앞뒤 문맥의 일관성에 맞지 않고, 게다가 여기서 ‘대기’(大器)는 바로 ‘도’(道)를 비유한다는 점에서 더욱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관건은 ‘만’(晩)자이다. 박 교수는 ‘노자’가 쓰인 2500년 전 ‘만’(晩)자는 ‘면’(免)자의 가차자(假借字·어떤 뜻을 나타내는 한자가 없을 때 뜻은 다르나 음이 같은 글자를 빌려 쓰는 것)로, 무(無)의 뜻이며, ‘대기면성’은 “큰 그릇(道)은 오히려 정해진 꼴이 없다”는 의미라는 것. 그래야 노자 41장 중에서 그 앞 구절 ‘대방무우’(大方無隅·큰 사각형은 오히려 모서리가 없고)와, 그 뒤 구절인 ‘대음희성’(大音希聲·한없이 큰 소리는 오히려 들을 수 없고)과 문맥상(∼없고, ∼없고) 맞는다. ‘대방’‘대기’‘대음’이 모두 도(道)를 의미하고, ‘무’‘면’‘희’가 모두 ‘없다’라는 뜻으로 일관성을 갖게 된다.

기존 ‘대기만성’으로 해석하면 맥락이 엉뚱해진다. 박 교수는 노자 연구의 대가인 중국학자 첸쭈(陳柱)도 ‘노자’의 두 번째 오래된 판본인 ‘백서을본’(帛書乙本)에 ‘大器免成’으로 표기돼 있음을 들어 기존 해석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대기만성’의 이전 의미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박 교수는 “단장취의(斷章取義), 기존의 글 중에서 그 맥락의 뜻과는 상관없이 필요한 부분만을 따서 다르게 쓰며 일반화된 경우로, 적비성시(積非成是), 잘못된 것이 계속되면서 이미 옳은 것처럼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주역 제6장의 ‘곡신불사’(谷神不死)에 대해 기존에는 ‘곡신’을 하나의 단어로 보아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로 옮기고 있으나, 제 39장에서 ‘신(神)은 도를 얻어서 영험해졌고, 골짜기(강)는 도를 얻어서 물로 가득차게 되었다(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신득일이영 곡득일이영)고 했듯이, ‘곡’과 ‘신’을 도(道)의 특성으로 각기 형용한 ‘골짜기처럼 공허 청정하면서도 신처럼 신묘하기 그지없는 도는 영원불멸하도다’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번 책에서 이외에도 잘못된 기존 노자 해석 부분을 적지 않게 지적해 학계에서 학문적 논쟁이 기대된다.

엄주엽 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