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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6년 03월 09일(水)
‘들쭉날쭉’ 해안선, 길이도 ‘들쑥날쑥’… 초미세 잣대로 잰다면 ‘∞’로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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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차원이 아니라 다차원의 기하학적인 프랙털 구조를 가진 것으로 분석되는 잭슨 폴록의 1947년 작품 ‘연금술(Alchemy)’.

김범준의 과학 이야기 - ⑪ 우리나라 해안선 길이는?

한반도는 북쪽을 제외한 동, 서, 남, 세 방향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해안선의 길이가 참 길다. 동해 바다에 면한 한반도의 북동쪽 끝에서 도보 여행을 시작해,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를 거쳐 경상도를 향해 남으로 내려오자. 다음에는 들쑥날쑥한 남해 다도해의 해안을 따라 경상도와 전라도를 돌아 다시 북으로 올라가자. 충청도와 경기도를 지나 여행을 계속해 한반도의 북서쪽 끝까지 해변을 따라 걷는다고 해보자. 한반도를 빙 둘러 타박타박 걸으면서 잰 전체 해안선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이, 전체 해안선의 길이는 누가 재든 다른 값이 나올 리는 없으니 답이 하나로 딱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문제에는 놀랍게도 정답이 없다.

만약 국토 순례의 이 상상(아직은)의 대장정에서 길이가 1㎞인 곧은 막대 모양의 잣대를 이용했다면, 이 잣대로는 100m의 폭으로 육지에서 바다로 튀어나온 곶의 굽은 해안선은 잴 수 없다. 이 곶 둘레의 해안선도 돌아가며 재려고 잣대를 100m로 줄이면 해안선의 길이가 1㎞ 잣대로 쟀을 때 보다 늘어나면서 좀 더 정확해지겠지만, 여전히 10m 정도 작은 규모로 굽어진 해안선은 또 잴 수 없다. 그럼, 잣대를 점점 줄여 아주 작게 해야 해안선 전체의 길이를 정확히 잴 수 있을까. 문제가 있다. 잣대가 줄어 10㎝가 되면 이제 바닷가 작은 바위의 둘레도 재게 되고, 더 줄여 1㎝가 되면 이젠 조약돌까지도 잰다. 더 줄여 1㎜가 되면 이제 모래 한 알도. 더 줄이면 모래를 구성하는 원자까지도 구불구불 잣대를 움직이며 재야 한다. 이처럼 잣대의 길이를 0으로 점점 줄여 가면서(수학에서는 가능하지만 물리학에서는 불가능하다) 더 작은 규모까지도 정확하게 측정하려 하면, 결국 “우리나라 해안선의 길이는 무한대”라는 답을 얻게 된다. 해안선과 같이, 구불구불한 모양이 크고 작은 다양한 규모(작은 모래알에서 수㎞의 곶까지)에서 되풀이되는 경우에는 전체의 길이는 놀랍게도 답이 하나로 주어져 있지 않다. 누가 우리나라 해안선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물으면, 답하기 전에 먼저 잣대의 길이를 되물어봐야 한다는 뜻이다. 해안선뿐이 아니다. 이처럼 잣대를 바꾸면 전체의 길이나 면적이 변하는 것들이 자연에는 참 많다. 이런 기하학적인 구조를 ‘프랙털(fractal, 혹은 쪽거리)’이라 한다. 프랙털은 유한(땅의 면적) 안에 무한(해안선의 길이)을 구현한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이 아니라, 만약 한 줄로 쭉 뻗은 곧은 직선 도로라면 당연히 재기 쉽다. 곧게 뻗은 직진 구간 1㎞의 도로는, 만약 우리가 정확히 도로가 난 방향을 따라 잰다면, 100m잣대로 재든, 10m나 1m 길이의 잣대로 재든 전체 도로의 길이는 항상 같다(1㎞는 100m 잣대로는 10개, 10m잣대로는 100개에 해당하지만 전체 길이는 100m×10 = 10m×100 = 1000m로 어떤 잣대로 재도 전체 도로의 길이가 같다). 필자는 물리학자다. 과학자들은 이런 쉬운 얘기도 수식으로 적어 일반화된 꼴로 나타내는 것을 더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자, 도로의 길이를 재는 잣대 하나의 길이를 a라 하고, 주어진 도로가 잣대 몇 개에 해당하는지를 N으로 적어보자. 100m잣대 10개(a=100, N=10)나 10m잣대 100개(a=10, N=100)나 둘 모두 a와 N을 곱하면 1000으로 값이 일정하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처럼 곧게 뻗은 도로의 길이는, 잣대가 얼마나 긴지와 상관없이 항상 a와 N을 곱한 값이 일정해서 ‘a×N = 상수’가 된다. 이식의 왼쪽에 a의 제곱(a2)이나 a의 세제곱(a3)이 아니라 그냥 a(=a1)가 등장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곧은 길이 1차원인 이유는 이 식의 왼쪽을 adN의 꼴로 적으면 d=1이기 때문이다.

책상 위에 놓인 종이처럼 2차원의 물체를 생각하자. 이 종이를 모두 덮으려면 가로세로가 각각 a인 정사각형이 몇 개가 필요할까. 작은 정사각형 하나의 면적은 가로 곱하기 세로이니 a×a = a2이라서, 정사각형 N개의 전체 면적은 a2N이고 이 값이 종이 전체의 면적과 같아 일정(a2N = 상수 = adN)하므로, d=2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책상 위 종이는 2차원이다. 책상 위에 놓인 정육면체 모양의 치즈 덩어리라면 또 마찬가지로 계산하면 ‘a3N = 상수’이므로 치즈 덩어리는 3차원 물체다. 앞에서 이야기한 우리나라의 해안선은 잣대의 길이를 줄이면 전체 해안선을 덮는 잣대의 개수가 1/a보다 더 빨리 증가해 해안선의 차원은 1보다는 큰 값이다. 그렇다고 해서 해안선이 2차원의 평면을 가득 채우는 그런 구조는 아니다. 해안선의 차원은 1과 2사이일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처럼 프랙털은 정수가 아닌 실수의 차원을 가진다. 해안선이 복잡하지 않은 동해안보다 해안선이 들쑥날쑥 구불구불 복잡한 남해안이 아마도 더 큰 프랙털 차원을 가질 것으로 예상할 수도 있다.

2002년 목포해양대학교의 김상훈 교수가 한국물리학회에서 발간하는 우리말 학술지인 ‘새물리’에 출판한 흥미로운 논문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다도해 지역 여기저기의 여러 섬의 프랙털 차원이 얼마인지 살핀 논문이다. 섬들이 모두 한 덩어리로 다닥다닥 서로 이어서 빈틈없이 붙어있다면 당연히 2차원이 될 테고, 크고 작은 섬들이 만약 한 줄로만 죽 늘어서 있다면 1차원이 될 테지만, 당연히 지도를 보면 다도해의 크고 작은 많은 섬은 여기저기 넓은 영역에 흩뿌려져 있는 형태로 있다. 김 교수가 사용한 방법은 아주 흥미롭다. 위에서 이야기한 잣대의 역할을 할 도구로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크기가 다른 네 개의 동전(500원, 100원, 50원, 10원)을 이용한 거다. 지도를 펼쳐놓고 남해의 섬들을 남김없이 모두 덮으려면 몇 개의 동전이 필요한지를 500원, 100원, 50원, 10원으로 동전을 바꿔가면서 세어 본 거다. 각 동전의 지름을 재서 이를 a로 이용하고, 각각의 동전이 섬들을 모두 덮기 위해 몇 개가 필요한지를 세어 N을 얻었다. 이렇게 해서 ‘adN = 상수’에서 d를 얻어보니, 우리나라 다도해의 섬들이 1.63차원의 프랙털 모양으로 흩뿌려져 있다는 것을 보였다. 지도와 동전,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따라 구해볼 수 있는 우리나라 다도해의 프랙털 차원이다.

학술지 네이처에 1999년에 출판된, 추상화가 잭슨 폴록의 그림을 위에 설명한 김상훈 교수와 비슷한 방법으로 분석한 논문이 있다. 잭슨 폴록의 초기 그림의 차원은 1차원에 가깝지만 그의 후기 그림으로 갈수록 차원이 늘어나 1.72 정도의 값을 가진다는 결론이 소개되었다.(잭슨 폴록의 그림이 정말로 프랙털의 구조를 가지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긴 했다.) 즉 초기에는 직선들이 주로 보이는 구조에서 시작해, 시간이 흐르면서 화폭을 더 촘촘히 채워갔다는 뜻이다. 2015년 카이스트 물리학과의 정하웅 교수는 서양 미술사의 다양한 사조의 많은 그림의 색채를 RGB공간 안에서 표현하고 이 삼차원 색채 공간 안에서의 프랙털 차원을 계산해 서양 미술사를 물리학의 방법을 이용해 정리 요약하기도 했다.

해안선은 유한한 국토 면적 안에 무한한 길이를 가진다. 이는 나무가 왜 나무 모양(tree structure)인지와도 관련된다. 여름에 나무가 가지를 드리워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 것이 그 아래에서 쉬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은 유치원생에게나 통한다.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자연은 사람에게 무심하다. 당연히 그늘은 우리 사람이 아니라 나무 자신을 위한 거다. 단 한 줄기의 햇빛도 아래로 지나쳐 보내지 않고, 가능한 한 모든 햇빛을 자기의 잎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나무에는 당연히 유리하다. 유한한 부피를 가지는 전체 가지를 이용해서 가능한 한 가장 넓은 면적을 만드는 것이 나무의 진화 방향이었을 것은 자명하다. 나무의 뿌리도 마찬가지로 뒤집어진 나무 모양이다. 가능한 한 적은 부피의 뿌리를 이용해 가능한 한 넓은 면적의 땅에 접촉해 양분과 물을 흡수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사람 몸 안의 허파 안에는 또 많은 공기가 통하는 관들이 있다. 이런 굵고 가는 기관들의 구조가 또 나무 모양이어서 전체 면적을 구하면 테니스장의 면적과 비슷할 정도로 크다. 나뭇가지, 나무뿌리나 허파 안의 기관 그리고 사람 몸에 퍼져있는 혈관의 구조, 모두 다 프랙털이다.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는 나무가 산다. (문화일보 2016년 2월 3일자 24면 10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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