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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Her Story 게재 일자 : 2016년 03월 09일(水)
“노총각이 애 셋 딸린 이혼녀인 내게 접근할 때 ‘바람둥인가’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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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메릴랜드주의 퍼스트레이디인 유미 호건 여사는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지난 2월 25일 아나폴리스 메릴랜드 주지사 관저에서 인터뷰할 때 그는 한순간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항상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왔다는 긍정의 마인드가 그의 삶은 물론 표정마저 바꿔 놓은 것 같았다. 메릴랜드 주지사실 제공

한국계 첫 美주지사 부인 유미 호건

철문 앞에서 인터폰을 눌렀다. 기자의 신분을 확인한 경호원이 정문 앞까지 걸어 나왔다. 현관문까지는 겨우 30m 남짓. 하지만 초대받지 못한 자는 절대 들어설 수 없는 공간이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2월 25일 방문한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의 주지사 관저는 미국인이라도 아무 때나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주 정부 청사와 달리 관저가 사적인 영역이기도 하지만, 주지사는 차기 대통령 후보 출마 가능성이 높은 미국 정치계의 핵심 자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메릴랜드는 인구는 597만 명이지만 1634년부터 유럽 이주민들이 정착할 정도로 역사가 깊은 주로, 미국의 수도 워싱턴과 인접한 만큼 정치적 영향력도 상당하다. 이런 메릴랜드 주지사 관저의 안방을 한국계 이민 1세대 여성이 꿰차고 있다. 2004년 래리 호건(60) 주지사와 결혼한 유미 호건(57·한국명 김유미) 여사. “20대에 이민을 와서인지 한국보다 미국 문화에 더 익숙하다”지만, 유미 여사의 남편 뒷바라지는 전형적인 한국형 ‘내조’에 가까웠다. 2014년 선거 캠페인 당시 유권자가 2명이라도 모여 있으면 득달같이 달려가서 지지를 호소했던 가녀린 체구의 유미 여사는 지난해 호건 주지사의 암 투병 당시에도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남편을 극진히 간호했다. 목표도 거창한 프로젝트보다는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소외된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했다. 김치냉장고를 들여다 놓고 한국 음식을 직접 만드는 것도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호건 주지사와의 첫 데이트에서 자신을 “딸 셋이 딸린 이혼녀”라고 소개하면서 ‘돌직구’를 날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 신조”라고 강조하는 유미 여사에게서는 상당한 강단이 느껴졌다. 이민과 이혼, 재혼, 남편의 암 투병까지 하나하나가 절대 쉽지 않았을 인생 역정을 거쳐 ‘한인 최초 주지사 영부인’에까지 오른 ‘여장부’다웠다. 기자는 커피·쿠키와 함께 ‘정부 관저’라는 금박 글씨가 박힌 냅킨이 정갈하게 깔린 탁자를 앞에 두고 유미 여사와 50분 동안 만났다.

―주지사 영부인이라는 직함을 달고 관저에 입주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주지사 관저에 입주한 것 자체가 영광이죠. 동시에 부담이 많아요. 메릴랜드의 어머니 역할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큰지 몰라요. 그래도 지난해 1월 남편이 주지사가 된 뒤 1년이 좀 지나니 뭘 해야 할지 윤곽은 잡혀요. 뒤에서 돕는 것이 제 일이죠. 제가 수묵 화가인 데다, 학교에서 강의도 하니까 아무래도 미술과 관련된 공동체를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내조를 하고 있어요.”

―미국 정치인의 부인들은 ‘내조’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던데요.

“미국 대통령이나 주지사 영부인들은 나름대로 특정 프로젝트를 정해 놓고 하는 편이지만, 전 그렇지는 않아요. 어려운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려고 해요. 그리고 남편이 바빠서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분은 제가 주로 맡죠. 예를 들면 아시아계 인구에 대한 정책 등은 거의 100% 제가 담당해요.”

문득 궁금해졌다. 유미 여사는 2000년 처음 호건 주지사를 만났을 때 미래의 주지사 영부인이 되리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질문은 자연스럽게 정치 명문가 자제인 호건 주지사와의 만남, 연애, 결혼에 이르는 과정으로 넘어갔다. ‘이혼녀-노총각’의 결혼이 분명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았다.

―주지사와 처음 만났을 때 ‘이 사람이 정치를 하겠구나’라는 예감이 들던가요.

“전혀 아니죠. 처음 만났을 때 남편 직업이 한국말로 하면 ‘복덕방업자’, 즉 부동산업자였죠. 저도 단순하게 부동산업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언제 남편이 정치를 본격적으로 하겠다고 하셨나요.

“사실 딱 특별한 시점이 있는 게 아니에요. 시아버님이 연방 하원의원을 3번이나 하시면서 남편은 어릴 때부터 정치에 익숙했죠. 아홉 살 때에는 시아버님 손잡고 백악관도 들락날락했대요. 아무래도 장남이니까 더욱 그런 듯해요. 밥 얼리히 전 메릴랜드 주지사가 시아버님 선거사무소에서 인턴을 했는데, 그때 남편과 친구가 됐죠. 그 이후로 얼리히 주지사 정부에서 총무처 장관도 했고요. 하지만 저희가 만났을 때에는 정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죠. 그런데 약혼을 한다고 하니까 남편 친구들이 ‘정치를 할 것이냐’고 묻더군요.”

▲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가 지난 2015년 5월 방한 당시 경복궁에서 부인 유미 여사와 함께 한복을 입고 한국 전통차 체험을 한 뒤 관계자로부터 감사장을 받고 있다.

―호건 주지사는 어떻게 만나신 건가요.

“미술 전시회를 하고 있는데, 명함을 주면서 연락하라고 하더라고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니까 연락을 안 했죠. 바람둥이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딸들이 ‘엄마도 이제 재혼할 때가 됐다’고 말하기 시작하고, 그래서 애들에게 먼저 승낙을 받았죠. 그러고 1년 뒤 같은 전시회에서 또 만났어요. 나 보고 ‘왜 전화 안 했느냐’고 하길래 솔직하게 제 생각을 말했더니 ‘커피나 한잔 사라’고 해서 만났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이 괜찮더라고요. 제 이상형에 거의 들어맞았어요. 당연히 이혼했거나 부인과 사별했거니 생각했는데 결혼도 한 번 안 한 노총각이었어요. 나이도 적당하고, 직장도 확실하게 가지고 있고. 게다가 얼굴이 이웃집 아저씨처럼 착해 보였는데, 실제로도 착했어요.”

―호건 주지사는 어디가 맘에 들었다고 하시던가요.

“저를 상당히 어리게 봤더라고요. 처음 만난 날 ‘애가 셋 있고, 여자나 꼬시는 남자랑은 연애하지 않겠다. 딸들이 인정하는 남자와 만나겠다’고 했더니 덥석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더군요. 나중에 들어보니 혼자 애를 셋이나 키운 저에게 상당히 감동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남편도 부모가 이혼한 것도 있고 해서 그렇게 느꼈나 봐요. 처음 우리 집에 초대받아 왔을 때 평생 처음으로 한국 음식을 먹는데, 하필 매운 돼지 불고기였죠. 제게 점수를 따려고 두 접시나 먹더니만, 얼마나 매웠는지 물을 5컵은 마시더군요.”

―당연히 정식 청혼도 받으신 거죠.

“2년 반 정도 사귀었을 때 야자수가 있는 달빛 아래에서. 친구 부부와 같이 저녁 식사를 하다가 따로 산책하자고 하더니만 갑자기 무릎을 꿇었어요. 제가 답을 안 하니까 ‘빨리 예스(Yes)해라’고 해서 답했죠. 저야 그냥 한국처럼 반지만 주면 끝나는 줄 알았지 답을 해야 하는 줄은 몰랐죠 뭐. 남편이 엄청 멋쩍어했어요.”

결혼 12년째인 호건 주지사 내외에게 지난해 최대 시련이 닥쳤다. 2014년 11월 당선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해 6월 호건 주지사가 암의 일종인 비(非)호지킨 림프종 투병을 시작했던 것.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지난해 호건 주지사의 암 발병 소식에 많이 놀라셨죠.

“많이 놀랐죠. 6개월간 항암 치료를 받는데, 13일에 한 번씩 5일간 입원해야 했어요. 남편 암이 3∼4기 정도여서 매우 독하게 치료하다 보니 아무것도 못 먹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허니, 뭐든지 꼭 먹어야 한다’면서 옆에서 계속 먹였어요. 그랬더니 투병 전보다 살이 더 쪘어요. 물론 주지사로 당선될 때는 언제고, 왜 이런 고난이 있나 하면서 종교적으로 잠깐 의심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죠. 하지만 바로 마음을 바꾸고 열심히 기도했죠. 주지사로 당선될 때도 한국 분들은 메릴랜드는 민주당 텃밭이니 남편은 절대 당선 안 된다고 했어요. 제가 그때 선거운동하면서 목소리가 지금처럼 변해 버렸어요. 2명이라도 앉아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거든요. 하루에 차를 얼마나 달렸는지 몰라요. 우리 남편이 메릴랜드 역사상 공화당 출신으로는 3번째 주지사입니다. 그만큼 어려웠죠. ‘민주·공화가 무슨 소용이냐, 우리는 한국인’이라고 목이 쉴 정도로 이야기했죠. 같은 한국인인데도 어떤 분은 선거 유세 전단을 건네면 ‘거기 놓고 가세요’ 할 정도로 차가웠죠. 그럴 때에는 돌아서면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분들을 원망하지 않아요. 반대로 또 많은 한국 분들이 정말로 많이 도와주셨고, 그 은혜를 절대 잊지 않고 있어요.”

―아무래도 이민자이다 보니 반이민 정책이 많은 공화당에 부정적인 게 아닐까요.

“그게 잘못된 인식이에요. 이민 1세대 때는 민주당이 이민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기는 했지만, 공화당에는 기독교인이 많죠. 여기 한국인들도 기독교인이 많고요. 또 한국 분들은 다 사업을 하고 세금을 낸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쩌면 공화당에 더 가까워요.”

한인 사회의 지지를 받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유미 여사는 ‘한국 문화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결혼 당시에도 한국식 폐백을 하고, 남편에게 두루마기까지 다 갖춰 입힐 정도였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직접 한국 요리를 지금도 만들고 있다. 이 덕분에 정치적으로 한인의 목소리도 커졌다. 메릴랜드주 역사상 처음으로 소수계 장관에 한인인 지미 리가 임명됐고, 올해 1월 13일에는 ‘미주 한인의 날’이 공식 선포됐다. 4월 5일에는 ‘메릴랜드 태권도의 날’도 지정될 예정이다.

―한국을 떠난 지 37년째인데, 지금 이 자리까지 오리라고 예상이나 하셨나요.

“전혀 못 했죠. 한국에서 어릴 때 학교만 다니다가 이민 와서 한국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그동안 한국이 많이 발전하기도 했고요. 2005년 결혼 뒤에 한 번 가고, 지난해 주지사에 당선된 뒤에도 한 번 갔어요. 결혼할 때도 서양식으로 한 번 하고, 한국식으로 폐백도 했어요. 당시 남편이 ‘모자가 밀짚모자 같다’면서 안 하겠다는 것을 제가 ‘한국 문화를 자랑하고 싶다’고 우겨서 했죠. 한국에서 두루마기까지 치수 재서 맞춰 가지고 왔어요. 결혼 다음 날 한국인 분들께 인사하러 가는데 남편이 ‘옷이 매우 편하다’고 하더라고요. 지난해 경복궁에 갔을 때에도 한복을 같이 입었어요.”

―호건 주지사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요리를 꼽는다면요.

“갈비찜이죠. 그리고 생애 처음 먹은 한국 음식인 돼지 불고기요. 참 제가 오늘도 요리를 했는데, 관저 직원이 여기 온 지 40년 됐다길래 기념할 겸 해서 불고기랑 잡채 등을 직접 만들어 직원들과 같이 먹었어요. 관저에 김치냉장고도 있어요.”

―사실 인생이 순탄하지는 않았는데, 힘든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한 번도 부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고, 항상 희망을 갖고 살려고 노력해요. 애들에게도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라’고 늘 이야기했죠. 한 번도 화장 안 한 흐트러진 모습을 안 보이니까 사람들은 ‘고생 안 하나 보다’ 했대요. 하지만 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제가 8남매 중 유일하게 이혼한 자식이다 보니 많이 가슴 아파 하셨죠. 저도 몇 년간 이혼 사실을 얘기 못 했어요. 어머니 마음 아프실까 봐요. 그런데 지금 이 자리까지 오니 이게 다 하나님의 뜻인가 해요. 미국으로 오게 한 것도 그렇고요.”

―한국이나 미국에 있는 한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제 한인 사회도 이민 2세대가 자리 잡을 수 있게 독려해야 해요. 우리가 뿌리를 내리려면 2세들이 자리를 잡아야죠. 그러려면 이민 1세대가 유권자 등록을 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메릴랜드에 한국인들이 많이 산다고 하지만 투표율은 낮아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투표를 해야 대우를 받아요. 이제 한국도 세계 경제 10위권 국가잖아요. 그만큼 한국인들도, 미국의 한인들도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죠. 이민자 분들도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면 꼭 기회가 옵니다. 미국은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는 사회예요. 저는 이민 온 분들께 ‘세상에 늦은 것은 없습니다. 항상 꿈을 가지세요(Never too late, always have a dream)’라고 말해요. 열심히 살다 보면 기회가 꼭 와요.”

마지막으로 최근 인기가 급등하고 있는 호건 주지사의 차기 행보를 물었다. 어쩌면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한국계 부인을 가진 첫 대선 후보가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유미 여사는 “그 문제는 ‘노 코멘트’예요. 주지사 임기가 아직 3년 더 남았고, 남편에게도 현재에 충실하라고 이야기해요. 그저 전 아침저녁으로 남편이 ‘솔로몬의 지혜와 다윗의 정직함을 갖춰 국민이 원하는 정치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어딘가 여운이 묻어나는 답변이었다.

인터뷰 = 신보영 워싱턴 특파원
아나폴리스=boyoung22@munhwa.com

◇유미 호건(57) 메릴랜드 주지사 영부인 △전남 나주 출생 △미국 하와이 이민 △메릴랜드로 이주 △메릴랜드예술대학(MICA) 졸업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와 결혼 △아메리칸대 미술대 석사 △MICA 강사 △메릴랜드 주지사 영부인
e-mail 신보영 기자 / 국제부 / 차장 신보영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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