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 Story >이병철 회장, 가야금관 보며 일과 시작 ‘남다른 애착’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종선 전 호암미술관 부관장은 소신과 철학이 없으면 컬렉션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보 수집 뒷이야기

이종선 전 호암미술관 부관장은 삼성에서 총 150건이 넘는 국보급 문화재를 수집했다. 현재 서울의 리움미술관과 용인의 호암미술관에는 국보 37건과 보물 115건, 총 152건이 전시· 보관돼 있다. 명품들이 거친 풍파와 숨은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는 그에게서 국보 수집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고구려 반가상(국보 제 118호)= 골동품상 김동현은 천신만고 끝에 유일한 고구려 반가상을 지켜낸 인물이다. 1940년대 기와집 세 채 값이 넘는 거금 6000원을 주고 고구려 반가상을 손에 넣은 그는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가 기와집 250채 값인 5만 원을 제시해도 대꾸도 하지 않았다. 호암미술관 학예실장으로 내가 찾아갔을 때 그는 쓰러져 가는 적산가옥의 허름한 방에서 종지에 담긴 간장을 유일한 반찬으로 살고 있었다. 그는 오로지 반가상의 가치를 알아주고 자신보다 더 아껴줄 곳이 필요했다. 안심하고 맡길 수 있어 고맙다는 그는 젊은 나에게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청화백자매죽문호(국보 219호)= 지금은 국보로 지정돼 대접받고 있지만 이건희 회장의 수중에 들어간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항아리로는 큰 편에 속하는 높이 41㎝ 조선 초 청화 백자 명품이 세상에 나왔는데 주변에서는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진위 문제는 1876년 종로구 관철동 부근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비슷한 모양의 백자 어깨 부부 파편이 출토되면서 의외로 쉽게 풀렸다. 결국 1984년 국보로 지정됐다.

△가야금관(국보 258호)= 이병철 회장은 하루 첫 일과로 가야금관의 소재를 파악해야 직성이 풀릴 만큼 애착이 컸다. 도굴과 도난 우려가 큰 유물로 국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수집품으로 공개 후 경비가 대폭 강화됐다. 이 회장의 애착은 금관이 겪은 모진 수모에 대한 연민과 도난에 대한 걱정으로 점점 더 커졌는데 이는 이 회장에게 금관을 소개한 이의 과장된 수사의 영향이 컸다. 금관의 실제 연대는 5~6세기였지만 그는 수백 년 앞선 최초의 금관이라며 치켜세웠다. 하지만 누구도 이 회장 앞에서 금관의 실제 연대를 밝히지 못했다.

최현미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