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파산 심각>기초연금 받아 병원비 충당… 자녀들도 대부분 저소득층

노인빈곤층 실태

자식들 보증 섰다가
‘부부파산’도 증가세

올해 1월 파산 신청을 낸 A(73) 씨는 1997년 외환위기 사태 당시 다니던 회사가 파산한 뒤 정기적인 벌이 없이 막노동판 일터나 배달업소 등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전전하며 살아왔다. A 씨는 2001년 각종 신용카드를 만들어 소위 ‘돌려막기’ 식으로 소비를 충당하기 시작했고, 결국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카드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자식들은 A 씨를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파산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파산 신청을 미뤘던 A 씨는 결국 지난해 말 결심을 굳혔다.

80대 초반 남성 B 씨는 빚 600만 원을 갚지 못해 파산을 신청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였던 B 씨는 나라에서 최소 생계비 등을 지원해줬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다달이 들어가는 병원비조차 제대로 충당할 수 없었다. B 씨의 자녀들도 모두 월수입 100만 원 이하의 저소득층으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기에도 벅찼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며 노인 파산 신청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소속 파산관재인인 왕미양 변호사는 “대다수의 파산 신청자들이 ‘나이 먹고 이대로는 못 살겠으니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히 살겠다’ ‘자식들에게 빚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이유로 파산을 신청한다”며 “또 기본적으로 자식들이라도 잘살고 있다면 빚을 자식이 떠안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양할 가족이 대부분 다 같이 어렵게 살아 빚 청산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노인층의 ‘부부 파산’도 증가하고 있으며, 불과 몇 백만 원을 갚지 못해 파산을 신청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보증을 섰다가 빚을 같이 떠안아 파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후연·김기윤·김수민 기자 leewho@munhwa.com